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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길에서 만난 선생님 
꿈길에서 만난 선생님 
  • 의사신문
  • 승인 2015.08.17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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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기의 마로니에 단상 〈20〉

    꿈길 밖에 길이 없어 꿈길로 가니
 그 임은 나를 찾아 길 떠나셨네
 이 뒤엘랑 밤마다 어긋나는 꿈
 같이 떠나 노(路) 중에서 만나를 지고
   꿈길 / 황진이 시

2015년 8월 6일 오늘은 고창순 선생님이 돌아 가신지 3주기가 되는 날이다. 선생님은 우리나라에서 핵의학과 갑상선학을 시작한 선구자로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로 있으면서 제자를 기르고 학문의 토대를 만들었다. 또한 80년 평생 동안 3가지 암을 극복하고 이겨 낸 의지의 투병 경력으로도 유명하다. 우리 은사님은 긍정적이면서도 포용력과 따뜻한 인간미가 있어 많은 제자들이 진심으로 따랐다. 내 졸저 〈소소한 일상 속 한줄기 위안〉에 자세한 내용이 있다.

1주기 때는 선생님의 회고록 〈도전과 화합으로 걸어온 삶〉을 발간하고 추모하는 모임을 가졌었다. 이영학 조각가가 만든 고 선생님 흉상이 있는 핵의학과 의국에서 제자뿐만 아니라 친척과 친구들이 모여 선생님과의 인연을 회상했다. 선생님 생전의 모습을 동영상으로 만나고, 삼보컴퓨터의 이용태 회장님은 서로의 우정을 만가輓歌로 소개하기도 했다.

작년 8월 초 어느 날 밤 내 꿈에 고 선생님이 나타나셨다. 선생님은 사망하지 않고 살아있다며, 그 당시 담당 의사가 착각했다고 주장하시는 것이 아닌가! 나는 살아 계시면 물론 좋지만 그 때의 의학적 상황으로 보아 받아들이기에 무리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꿈이지만 인정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같이 오신 사모님을 구석으로 모시고 가 상의하니 나와 같은 생각이었다. 내가 고 선생님께 돌아가신 거라고 말하니 섭섭해 하셨다.

아침에 일어나 생각하니 선생님을 꿈에서 처음 뵙고 내용도 기이했으나 일과에 바쁘게 지내고 있는데 그날 오후에 치과병원에서 의료정보학을 맡아 선생님을 따르던 김 교수가 연락을 해왔다. 모레가 기일 날인데 이번에는 특별한 행사가 없느냐고? 그제야 나는 2주기가 된 것을 깨달았다.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나에게 고 선생님이 직접 찾아 온 것이다. 사모님께 전화해 날짜를 잊은 것을 사죄하고 꿈 이야기를 하니 웃으시면서 보고 싶은 사모님 꿈에는 왜 안 오냐고 했다. 나는 은사님이 살아 있다고 한 꿈의 내용이 이해되지 않았다. 단지 2주기를 알게 하려고 나타나셨나?

알다시피 꿈의 내용은 심리학, 정신과학에서 아주 중요하다. 프로이드는 꿈은 정신활동의 일부로 그 내용이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정신활동과 연결된 사슬고리여서 그 무엇을 꿈으로 대체하려고 한다. 때로는 상징적으로 현실의 바람을 투사하고, 걱정을 반영하기도 한다. 이런 복잡성 때문에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꿈의 해석에도 해당된다. 또 전문가들은 꿈이 현실 파악과 예지의 능력도 있다고 인정한다.

나도 이런 경험이 있다. 2009년 내가 대한의학회에서 주관하는 바이엘쉐링 임상의학상 수상자로 선정되기 전날, 19년 전에 돌아가신 우리 아버지가 처음으로 꿈에 나타나셨다. 아무 말씀도 없고 잠시 만났지만 나는 일이 잘 될 것을 직감했다. 또 고등학교 3학년 때, 고향에서 잠시 올라온 고모할머니가 옆방에서 주무시다가 탐스러운 돼지새끼들이 우리 집 대문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었다. 선잠에서 깨어보니 내 공부방에 불이 켜져 있어 이와 연결시켜 원하는 대학에 합격할 것을 예상했단다(사실 그 시각에 나는 책을 보다가 졸고 있었다).

일년이 지난 오늘에야 나는 선생님 꿈의 의미를 알 것 같다. 졸저 〈참 좋은 인연〉 수필집에 고창순 교수님을 회상하며 쓴 다음 구절이 있다.

“짚단으로 만든 횃불이 살아서 넘어가면 짚은 재가 되어도 불길은 계속 살아있다. 고 선생님의 핵의학, 갑상선학을 우리 제자들이 대를 이어 전수받았다. 이 불길을 더 키워서 환하게 세상을 밝게 하는 것이 우리 몫이다. 이것은 선생님의 삶과 생명이 대를 이어 오랫동안 지속되는 길이기도 하다.”

선생님은 신체적이 아니라 학문적으로 영원히 살기를 원하고 계신 게 아닐까?

선생님이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지 3년이 되는 오늘 그리움과 함께 새롭게 다짐한다. 선생님의 학문적 유전자인 핵의학과 갑상선학에 한층 열중하여 발전시키겠다고. 더 바란다면 우리가 이 업적으로 상을 받게 되면 그 희소식을 알려주려고 선생님이 다시 꿈속에 찾아 오고, 서로 반갑게 만나 뵙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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