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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산성에서 만난 매월당
상당산성에서 만난 매월당
  • 의사신문
  • 승인 2015.07.27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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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이 있는 정담 〈139〉

지난 4월 초 찾아갔던 청주 상당산성의 공남문 아래 잔디광장 입구의 매월당 김시습 시비.
청주의 상당산성은 둘레가 4.4 킬로미터 정도이니 서울의 북한산성과 비교하면 매우 작은 산성입니다. 그러나 계곡을 품고 있는 산 능성을 따라 성곽을 축조함으로써 군사적으로는 방어에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영조 때의 기록에는 238명의 군사가 주둔하고 양곡 5000석을 비축하고 있었다고 하니 유사시에는 큰 싸움 없이 그저 버티기만 해도 적을 물리칠 수 있을 만큼 천혜의 요새라 할 만 합니다.

한 때는 군사적 요충지였지만 지금 상당산성은 사람들이 때로 찾아와 걷고 쉴 수 있는 곳이 되었습니다. 성곽 길은 잘 다듬어져 있어 사방의 경치를 감상하기에 좋고 성안에는 숲이 잘 발달해 있으니 걷다가 힘들면 그늘에 들어 누워도 그만입니다. 게다가 연못이 있고 많은 음식점들이 있어 어느 때고 가서 편안히 쉬고 오기에 안성맞춤인 곳입니다.

산성길 걷기는 통상 상당산성의 정문이라 할 공남문에서부터 시작합니다. 공남문 근처에 주차장이 있고 공남문이 올려다 보이는 넓은 잔디광장이 있어 걸음을 시작하면서 가슴이 후련해집니다.

잔디광장 입구 왼쪽에 매월당 시비가 서 있습니다. 온 나라를 떠돌던 그가 이 상당산성에 와서 남긴 遊山城(유산성)이라는 시입니다.

 풀 향기 짚신에 스며드는데 
 비 갠 풍경은 맑기만 하여라
 들꽃에 앉은 벌은 꽃술에 입 맞추고
 살진 고사리는 내린 비에 향기 더 하네
 멀리 바라보니 산하가 웅장하고
 높이 오르니 의기가 드높구나
 저물도록 보고 또 본다네
 내일이면 남방을 떠돌 것이니

그 때가 오월이었습니다. 엊그제 비가 내린 뒤라 돌아서기가 무섭게 풀들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풀잎이 부딪칠 때마다 풀 향기가 코끝을 맴 돌았고 벌들은 부지런히 몇 되지 않는 꽃들을 찾아다니고 있었습니다. 서쪽 들을 바라보고 동쪽의 산을 바라보고 그렇게 하루가 저물어갑니다. 상당산성에서 바라보는 산과 들이 아름다운들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저 바라보고 눈에 담으면 그 뿐입니다. 매월당은 이곳이 그가 머물 곳이 아님을 압니다.

그는 유명한 신동이었습니다. 그 소문이 세종에게까지 알려져 5살 적 그 앞에서 가지고 태어난 총기를 드러낸 일도 있었습니다. 그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는 컸습니다. 그런데 열다섯부터 불행이 찾아들었습니다. 그해 어머니를 여의고 자신을 돌보아주던 외숙모마저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어 아버지는 병석에 눕게 됩니다. 그리고 열아홉에는 과거시험에 낙방함으로써 큰 충격을 받게 됩니다. 약관의 나이까지도 그는 과거 공부에 열중했고 장차 세상에 나가 배우고 익힌 바를 펼치며 좋은 세상을 만들어보겠다는 포부를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일이 생겼습니다. 삼촌이 조카의 왕위를 빼앗고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의 나이 스물한 살 때입니다. 이 소식을 듣고 그간 붙들고 있던 끈을 놓아버렸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적은 글에 그가 3일 동안 통곡을 하고 그동안 읽던 책을 모두 불 사른 뒤 스스로 머리를 깎고 중이 되었다 합니다.

사람들은 그 이후의 매월당이 보인 행적에 대해 `고독한 지식인', `비운의 천재', `백세의 스승', `색은행괴', `지조와 광기' 등 많은 수식어를 사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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