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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이 된 기부천사 
전설이 된 기부천사 
  • 의사신문
  • 승인 2015.07.27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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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기의 마로니에 단상 〈19〉

모든 인간이 이 세상에서 한정된 기간만 존재하다가 없어지고, 또 이 사실을 우리가 인식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은 기막힌 모순이다. 우리는 이 한 번의 생을 어떻게 살지 방황하고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내가 역사나 전설에 기록되어 후세가 기억하기를 바란다. 모두가 역사 흐름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없으나, 생각과 행동이 뛰어나면 세월이 지나도 전설로 남을 수 있다.

전설이 되려면 생각이나 행적이 남과 달라야 한다. 또 시간의 여과를 거쳐 살아남은 것만 전승된다. 과거에는 군주나 대신, 장군 같은 집권층이 전설의 주인공이었지만 미시적 역사관에서는 일반 서민이 얼마든지 전설의 당사자가 될 수 있다.

한 사람이 전설적 인물이 되는 과정에는 몇 가지 공통적인 절차가 있는 듯하다. 먼저 여건이 불우한 상황에서 시작한다. 주인공은 좌절 속에서 방황하다가 어떤 계기로 좋은 일을 하기 시작한다. 이를 방해하는 역경을 굳은 의지로 극복하면서 양성 피드백이 작동해 훌륭한 업적을 이루게 된다. 이를 선전하고 이용하려는 보통 사람과는 달리 숨기거나 겸손한 태도를 보여 오히려 전설의 증폭제가 된다. 가족과 주위사람들도 감화되어 적극 동참한다. 마지막으로 초심을 잃지 않고 일관성 있는 생애를 살면서 사회적 보답을 거부해 그 업적은 전설로 견고해 진다. 내 주위에서는 장기려 박사가 이런 전설적 인물이었고, 현존하는 사람으로는 간담도외과의 명의 이승규 교수와 야구의 신이라 불리는 김성근 감독이 대표적인 경우라고 생각한다.

내가 이런 안목에서 전설로 추천하는 사연을 하나 소개하겠다.
올해로 53세인 그는 전남 장성에서 가난한 소작농의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네 살 때 아버지를 여위고 살 길을 찾아 가족 모두가 서울로 올라왔다.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초등학교 만 졸업하고는 일식집의 주방보조로 취직해서 요리를 배우게 됐다.

그는 어려서 생긴 화농성 축농증을 치료하지 못해 건강이 좋지 않았다. 여기에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하는 식당생활이 처음에는 견디기 어려워 자살까지 생각 했다. 그러나 어느 날 그를 위해 밤늦게 간절히 기도하는 어머니를 보고 각성을 했다. “어머니에게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살아보겠다.” 또 어른이 되면 자기처럼 힘들고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며 살겠다고 다짐을 했다.

성실하게 일하는 그를 주위에서 점차 인정하기 시작했다. 주방보조에서 벗어나 직접 요리를 하게 됐고 단골손님도 생겼다. 그를 눈여겨본 일식집 `어도' 주인은 외상으로 가게를 넘겨줬다. 신선한 생선과 해물에 정성어린 음식과 넉넉한 인심에 손님이 늘어났다. 6개월 만에 가게를 정식으로 인수하고 사업은 일취월장했다.

여유가 생기자마자 그는 다짐을 실천에 옮겼다. 동네 노인정에 무료식사를 제공하고 장애인 시설 다섯 곳에 음식재료를 보냈다. 고향의 5개 고등학교에 매년 장학금을 후원하고 대학에도 장학금을 기부하고 있다. 서울대학교병원 김석화 교수와 정희원 교수와의 만남을 계기로 형편이 어려운 어린이 환자에 대한 후원도 하게 됐다. 매출의 일부를 모아 매년 1억원 씩 13년을 거르지 않고 기부하고 있다. 병원에서도 감사의 뜻으로 홍보대사로 초빙해 기부천사로 명명했다.

식당 개업 초기에는 수입금 일부만 기부해 왔으나 지금은 식당의 수익 전액을 병원·학교·자선단체에 후원하고 있다. 그동안 후원 액이 50억원이 넘어 대통령 표창을 2번 받았고, 2011년엔 초대 국민추천포상을 받았다.

그는 “기부를 시작했던 날이 내 삶의 터닝 포인트가 됐다.”고 회상한다. 음식점의 모든 수익을 기부하므로, 이를 위해 일 년중 하루도 쉬지 않고 열심히 일한다. 베풀수록 삶이 더 풍요해지고, 행복한 기운을 얻게 되어 “능력이 되는 한 더 많은 기부와 봉사를 하겠다.”고 말했다.

이미 유명인사가 되었지만 아직도 부지런하고 겸손하다. 연중무휴로 일식집을 운영하는 이유는 오로지 후원금을 조금이라도 더 벌기 위해서이다! 기부 중독자가 된 그는 휴일에 일해도 즐겁기만 하다. 그는 오늘도 음식점 부장 명찰에 생선과 기름에 전 낡은 조리복을 입고 일한다. 일식당 대표 보다는 주방장으로 일한다는 초심을 유지하고 자기를 낮추는 성숙한 자세이다.

어머니는 그에게 깊은 영향을 끼쳤다. 남편을 잃고 홀로 6남매를 키우면서도 이웃을 도와주는 나눔의 선행을 보고 자란 것이 그 좋은 인연의 출발점이 됐다. 좌절하던 청소년기의 위기도 어머니의 울음 섞인 기도에 감화되어 눈 녹듯이 없어졌다. 어머니에게 받은 충분한 사랑이 그를 다른 사람에게 베풀도록 했다.

요즘 같이 배금사상이 만연한 시대에 가족과 친지들의 동의와 도움이 없으면 당초부터 불가능한 일이다. 아마도 수입의 전액을 기부한다고 하였을 때 가족이나 직원들은 반대했을 것이다. 이를 주변사람들과 함께 이해시켜 공동의 목표로 공식화했다. 그는 “기부는 혼자의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 직원 그리고 식당 손님들 까지 함께 밀어주고 끌어주어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현명하면서도 후덕한 부인은 남편의 마음과 주변 상황을 잘 파악해 조화시키고 있다.

옛 전설의 주인공이 아닌 옆에 있는 전설적 기부천사의 말은 더 설득력이 있다. 유한한 인생길에서 방황하는 우리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암시하고 있다. “나의 작은 나눔으로 어려운 사람이 보다 나은 삶을 살게 되고, 다음에는 이들도 기부를 하게 되어 더 좋은 세상이 되는 미래를 꿈꾼다. 조그마한 후원이라도 시작하면 자기의 삶이 더 의미 있고 윤택해지는 것을 느낀다. 이런 기부 문화가 바이러스처럼 확산돼 우리 모두가 함께 행복해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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