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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메르스 혼란 속에 벌어지는 슬픈 촌극
[시론] 메르스 혼란 속에 벌어지는 슬픈 촌극
  • 의사신문
  • 승인 2015.06.18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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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진 의사평론가 명이비인후과의원장 전 의료윤리연구회장

MERS (Middle East Respiratory syndome 중동호흡기증후군 코로나바이러스)가 대한민국을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 여러가지 원인이 종합적으로 서로 연관되어 피해를 입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가족과 격리되고 직장에 나가지 못하고 있다. 감염자들을 치료하기 위해 많은 의사와 간호사, 의료진들이 방호복을 입고 혼신의 힘을 다해 환자 치료에 임하고 있다. 어려운 상황을 국민 모두의 힘과 정신력으로 이겨내야 할 때이다.

하지만 이런 급박하고 어려운 상황 속에 우리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일들도 벌어지고 있다. 경솔하고 무책임한 박원순 시장의 발언과 한방으로 메르스를 치료하겠다는 황당한 주장, 격리시설을 무단으로 이탈하여 도망간 사건, 의료인의 자녀들을 등교하지 못 하게 하는 비교육적인 행동들이다.
첨단 과학시대와 문명화된 시대에 살면서 이해하기 힘든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역사적으로 기록된 최초의 감염병은 BC 430년에 아테네 인구의 30%를 죽음으로 이끌었던 '아테네 역병'이다. 메르스처럼 외부에서 유입된 전염병이다. 이 전염병은 이디오피아에서 시작하여 이집트를 거쳐 아테네로 유입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람들은 고열과 재채기, 목구멍에 피가 맺히고, 피부가 따갑고 아파서 거리로 뛰쳐나와 거리나 사원, 우물 속에서 죽어갔다. 의사나 남녀노소, 군대 장군과 병사 가릴 것 없이 죽어나갔다. 죽은 시체를 뜯어 먹은 새와 개들도 죽어갔다.

극한 상황은 아테네의 막강한 군사력을 무너뜨렸을 뿐 아니라 시민 사회의 도덕과 질서까지도 무너뜨렸다. 죽은 자의 재물을 훔쳤고 한 번에 재산을 탕진했다. 살인과 도적질, 방종이 일어났지만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았다. 심지어 재판 때까지 살아 있을 것이라고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회해체 현상이 일어났다.

1693년 아프리카에서 유행하던 황열병( yellow fever)이 미국에 번져온 후 필라델피아 지역에서만 5,000명 이상 희생자를 발생시켰다. 이 당시 엄습했던 공포상황은 악수를 하던 오랜 습관이 사라졌고 많은 사람들이 손만 내밀어도 모욕을 당했다고 생각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1918년 인플루엔자로 뉴욕시에서 일주일에 9,000명이나 죽어나갈 때 돌팔이와 민간요법이 성행했다. 나무연기를 들이마시거나, 이불에 황을 불어넣거나, 이를 뽑는 등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전염병에서 고통 받는 사람들을 구하고 싶은 선의가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은 되지만 인간의 공포심이 만들어낸 어처구니 없는 일들이다.

한방으로 메르스를 치료하겠다고 주장을 하는 분들이 있다고 한다, 그 분들의 선의는 충분히 이해가 간다. 하지만 아닌 것은 아닌 것이다. 능력이 뒷받침되지 않고 과학적 근거도 없이 나서서는 안 될 일이다. 너무 위험하고 무책임해 보인다. 이러한 무모한 선의의 행동은 이미 다시는 재현되지 말아야 할 일로 역사책에 기록되어 있다.

얼마 전 말레이항공기가 바다에 추락했을 때 점쟁이들이 나서서 비행기의 위치를 찾아내겠다고 설쳐댔다고 하는데 점쟁이들의 선의와 다를 바 없어 보인다. 국민의 걱정과 삶을 지켜야 할 시장이 정확한 의학지식이나 정황을 파악하지도 않고 국민들을 공포분위기로 몰아넣었다. 1,500명이 넘는 시민을 격리시키고 대한민국 경제를 꽁꽁 얼어붙게 만들었다. 심지어 의료인의 자녀들을 등교하지 말라는 황당한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첨단과학시대에 벌어지는 슬픈 촌극이다.

이미 광우병사태를 통해 사회 질서가 무너지고 사회해체 직전까지 갈 뻔 했던 뼈아픈 기억이 있다. 집단 공포심을 자극하는 선동이 빚어낸 일이었다. 대한민국은 언제 계몽되고 개화될 것인지 이성과 지성이 정말 존재할 수없는 환경인 것 같다는 절망감까지 몰려온다. 하지만 지금도 병상에서 메르스와 싸우고 있는 헌신적인 의료진과 살아있는 지성인들이 남아 있기에 이 모든 역경을 잘 이겨내리라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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