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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의사산악회, 지난 봄, 한라산에 오르다 〈하〉
서울시의사산악회, 지난 봄, 한라산에 오르다 〈하〉
  • 의사신문
  • 승인 2015.05.18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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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쌓인 백록담, 맑은 하늘 반사돼 더욱 `찬란'

양 종 욱 마포 양이비인후과의원장
내려오는 사람들과도 가끔 마주치는데, 경상도 말, 전라도 말, 충청도 말이 귀에 들어온다. 전국 각지에서 한라산을 즐겨 찾는 것 같다.
 한 걸음 한 걸음 뚜벅뿌벅 올라가고 쉬고를 반복한다. 바람이 불어 시원하다. 초봄이 아닌 것 같다.
 한라산 정상이 점점 가까워지고 백록담이 조금씩 조금씩 크게 눈에 들어온다. 약 30분 정도 지나니 전망대가 있고 올라왔던 길을 조망해 본다. 한 폭의 그림을 보는 것 같다. 속된 말로 제주여행 경비 본전은 뽑았다 .

 그림에 소질이 있으면 앉아서 그림 그리는 여유도 갖고 싶지만 재주가 전혀 없으니 정상 부위로 발길을 돌린다.
 지금부터는 백록담 주위의 둘레길이다.
 제주 동부지역을 계속 조망하면서 천천히 걸어간다. 함덕해수욕장 근처도 보이고, 가까이는 내가 지나쳐 가야하는 사라오름과 성판악도 보인다.

 까마귀도 까악까악 소리를 내면서 나를 반기는 것 같다. 매년 보니 까마귀도 정겹고 반갑다.
 10분정도 가니 한라산 정상에 도달한다. 남한에서 가장 높은 곳에 서 있는 셈이다. 관음사 입구에서부터 4시간20분 소요됐다. 몸살 감기 후유증으로 작년보다 30분 정도 지체된 것 같다. 사람들은 그리 많지는 않다. 북적북적 거리지 않아서 좋다.
 한라산은 하늘의 은하수를 끌어당긴다 하여 한라산이라 불리우고, 예로부터 민간 신앙에서는 금강산, 지리산과 함께 삼신산으로 손꼽혀 온 명산이다.

 정상에는 둘레 약 3km에 이르는 화구호, 백록담이 이국적인 정취를 자아낸다.
 해발 고도에 따라 아열대, 온대, 냉대 기후에서 자라는 고산식물 약 1800여종의 고향이기도 하다. 또 백록담 근처는 기후 변화가 심하여 하루에도 몇 번씩 변하는 경우도 있고, 맑은 날씨가 많지 않아 3번 등산하면 1번 정도 백록담을 볼 수 있다고 한다 .
 과거에는 백록담을 보기 위해서는 조상 3대가 선덕을 쌓아야 한다는 얘기도 있다. 과거 한라산 중턱에 길이 없었고, 교통수단이 없어 한라산 접근성이 떨어졌을 때 나온 얘긴인 것 같다.
 맨살을 드러낸 백록담을 바라본다. 1년2개월만에 다시 보는 것이다. 눈이 쌓인 백록담이 맑고 푸른 하늘 아래 찬란한 햇살에 반사되어 더욱 아름다워 보인다.

 우리들을 위해 곱게 단장한 것 같다.
 문득 백록담에 내려가 백록담 물로 밥해 먹던 생각이 난다. 예전처럼 백록담으로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가 남벽쪽으로 내려가 윗세오름, 영실로 내려가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만 통제 되었으니 불가능한 일이다.
 어렴풋이 백록담 본 순간들을 계산해 보니 얼추 10번에 8번은 백록담을 본 것 같다. 조상님들이 선덕을 많이 쌓아서 이리라. 그 덕에 10년 연속 한라산 올 수 있었고, 60이 가까운 나이에 별로 힘들이지 않고 백록담을 오르고 내려 갈 수 있으니 감사할 일이 참 많다.
 가진 것에 감사하지 못하고 부족한 것에 불평불만을 가졌던 지난날들을 잠시 반성해본다.

 잠시 쉬면서 호떡을 다시 하나 먹고 생강차를 마신다. 주위를 둘러보니 삼삼오오 앉아 먹고 얘기 하는 모습이 평화롭고 행복해 보인다. 보기 좋다. 저 사람들의 눈에 보이는 나의 모습은 어떨까 궁금해진다.
 자 이제 하산이다.
 등산로가 눈이 다 녹아 아이젠을 벗는다. 경사가 심해 위험한 길을 조심스럽게 내려간다. 다시 눈덮인 등산로가 나와 아이젠을 착용 후 조금 있다가 다시 벗는다.

 조금 가니 완전히 눈덮인 등산로가 나와 다시 아이젠을 착용한다. 이제부터 한라산 특유의 내리막을 이용한 하산 길이다. 울창한 나무숲으로 덮여 있어 조망이 거의 없어 지루하고 답답한 길을 내리막 경사를 이용하여 뛰고 달리고 걷고 하여 진달래 대피소까지 간다.
 정상에서 35분 걸렸다.

 계속 급하게 내려가다 보니 허벅지도 힘들어 하고 무릎도 시큰 거린다. 15분정도 지나니 사라오름 입구가 나온다. 비행기 시간까지 시간이 많이 남아 사라오름으로 발길을 돌려본다. 하산길의 유일한 오르막이다,
 50분간의 급한 내리막에 힘들었는지 완만한 오르막 길이 힘들다.

 힘들게 올라가다가 눈을 오른편으로 돌리니 눈 덮인 한라산 동능 정상이 깜찍하고 이쁘게 살짝 보인다. 잠시 후 정상 분화구에 도착한다.
 해발 1324m 높이에 있는 제주도내 386개 오름중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오름이다. 둘레가 약 250m 되고 호수가 있어 작은 백록담을 연상시킨다.
 겨울에는 호숫가를 따라 펼쳐지는 은빛 상고대가 눈부시게 아름답고 호수가 얼어 붙어 호숫가 위를 걷는 즐거움도 맛볼 수 있다. 하늘 위에 정원이라 할 수 있다. 전망대에 올라 바로 앞의 넓은 구상나무 군락지와 멀리 한라산 동능 정상을 바라본다.

 또 제주 앞바다가 보이고 멀리 서귀포 앞바다의 섭섬 등이 조망된다. 다시 하산길로 간다. 약 30분정도가 사라오름 때문에 쓰여졌다.
 다시 지리하고 답답한 길을 이전과 같은 패턴으로 뛰고 달리고 걷고 하여 속밭 대피소에 도착한다. 등산로가 녹아 아이젠을 벗고 계속 걷는다. 눈길, 나무데크 길, 돌길들이 번갈아 나타난다.

 경사가 완만하여 걷는데 큰 차이는 없다. 아무 생각 없이 계속 걷다 보니 성판악 입구가 나온다. 정상에서 부터 2시간30분 동안 쉬임없이 걸었다.
 몸이 완전하게 회복된 것 같다. 시장하여 남은 호떡을 먹고 생강차를 마신다. 걱정과는 다르게 화창한 봄날에 폭신폭신한 눈길을 밟으면서 초봄의 한라산 산행을 참 잘 했다.

 하느님이 지난달의 나의 주책을 용서해 주신 것 같다. 3월 한라산 산행은 나로서도 처음이다. 조망도 너무 좋았고 하나 아쉬움이 있다면 눈꽃을 못 보고 눈 터널을 못 지나간 것인데 욕심이 너무 지나치다. 작년 12월의 눈 산행으로 대치하면 충분하다.
 이제 제주시로 가야 한다.
 버스 정류장에서 잠시 기다리다 보니 버스가 도착, 버스에 올라타 자리에 앉는다. 피곤이 몰려온다. 기분은 상당히 좋다. 몸과 마음이 따로 놀고 있다.

 30분정도 지나니 제주 시외버스터미날에 도착해 인근에 있는 목욕탕으로 간다. 뜨거운 물에 들어가 18.3km를 걸으면서 혹사시킨 허벅지를 달래준다. 뜨거운 물에 들어가니 피곤이 가시고 기분이 엄청 좋아진다. 너무 행복하다. 무릎 아픈 것도 덜하다.
 허벅지한테 자꾸 혹사시켜 미안하다고 해 본다. 으레 그러려니라고 생각해 왔는데 오늘은 달래줘서 고맙다고 하는 것 같다. 미안하고 고맙다. 온탕, 냉탕을 반복해 본다. 목욕탕에서 나와 목욕탕에 있는 화장품을 간단히 발라본다.
 때 빼고 광내고 곱게 단장했으니 이제 식도락을 즐기러 가야겠다. 물론 봐줄 사람은 하나도 없다. 오늘은 제주도에서 제일 큰 동문시장으로 향한다.

 먼저 집안 반찬거리를 해결하기 위해 고등어, 옥돔, 갈치, 젓갈류 등 해산물을 주문한다.
 요즘 일등 남편은 주중에 돈을 많이 벌어다 주고 주말에는 집 바깥에서 생활하여 부인한테 주말 휴가를 주는 사람이라고 한다. 최소 6일을 근무해야 하는 우리로서는 운명적(?)으로 불가능한 일이기에 조그마한 노후 대책을 준비해 보는 것이다.

 이제 인근에 있는 식당으로 향한다. 오늘 메뉴는 제주 흑돼지다. 맥주와 소주 한 병을 시켜 준비된 안주와 함께 먹는다. 먼저 맥주 한 잔을 마신다. 술 맛이 좋다. 다시 돼지고기와 소주 한 잔 한다. 소주 맛이 달다.
 큰일이다. 비행기 시간이 있으니 자제해야한다. 식사를 마치고 주문해 놓은 해산물을 들고 택시를 타서 공향으로 향한다.
 일상으로 돌아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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