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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의사산악회, 지난 봄, 한라산에 오르다 〈상〉
서울시의사산악회, 지난 봄, 한라산에 오르다 〈상〉
  • 의사신문
  • 승인 2015.05.11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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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온 변화 심한 3월 제주…기대 이상 날씨로 환대

양종욱 마포 양이비인후과의원장
1977년 여름, 친구랑 같이 한라산을 처음 올라갔다.
 어리목에서 윗세 오름을 경유, 한라산 정상을 오르고 다시 윗세오름, 영실로 내려오는 코스였다. 다시 18년 후인 1995년 5월 성판악, 관음사 코스로 2번째 한라산 등반을 했다.
 이후 10년전 부터는 매 해 한 두번 친지, 동료들과 함께 혹은 나와 함께 한라산 등반을 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4 계절을 등반 해보니, 각 계절의 특성이 있지만 한라산 등산은 겨울 산행이 가장 좋은 것 같아서 5년 전 부터는 겨울마다 2번씩 한라산 등반을 한다.
 한 번은 남한 최고봉인 백록담을 보기 위한 등반이고, 한번은 영실, 윗세오름, 어리목 코스로의 등반이다. 영실로 올라가 해발 1600m 고지에 있는 드넓은 설원과 많은 눈과 나무에 의해 이루어진 각양 각색의 멋드러진 하얀 눈조각 들로 이루어진 겨울 설국은 매해 볼 때마다 나의 눈을 즐겁게 해준다.

한라산을 갈려면 가장 먼저 비행기를 예약해야 한다.
 이미 3개월 전에 2만6000원으로 제주 가는 비행기를(2월15일로) 예약했다.
 산행 전날에 갑작스러운 모임이 있어서 잠시 참석한다는 것이 흥에 겨워 열심히 달리다 보니 새벽 3시까지 달리는 주책을 부렸다. 페이스가 너무 오버 되었다.
 아침 일어나 보니 8시30분, 내가 예약한 비행기는 이미 제주에 도착했을 것 같다. 부랴부랴 위약금을 물고 우울한 마음에 청계산 등산을 한 기억이 있다.
 이번 겨울에는 백록담을 못 가봤다고 생각하니 서운한 마음이 들어 계속 항공편을 조회하던 중 3월15일 항공편이 좌석이 있어 비행기 예약을 했다. 예정된 날짜가 가까워지니 일기예보를 계속 들여다보게 된다.

 일요일 비가 예보되어 있다. 조금 걱정이 된다.
 산행 당일 새벽 3시쯤 일어나 5시에 집을 나섰다.
 잠실에 위치한 롯데호텔 앞에서 리무진 버스를 타고 공항에 도착, 출발한지 35분 만에 공항 카운터에 도착했다.
 일요일 새벽이라 교통체증이 전혀 없었다.
 12월, 1월, 2월에는 일요일 지금 시간에는 태반이 배낭을 멘 등산객인데 오늘은 등산객이 거의 없다. 역시 한라산은 겨울에 많이 가는 것 같다.
 간단한 탑승 수속 후 공항내 편의점에서 삼각김밥 2개로 아침 식사를 한다.

 시간이 되어 비행기에 탑승, 잠시 눈을 붙인다. 단잠에서 깨어보니 비행기는 남해 바다 상공을 지난다. 곧 이어 제주 상공에 도착 제주공항 착륙을 기다리기 위해 제주 상공을 우회한다.
 한라산 정상이 보인다.
 흰 눈으로 덮여 있는 한라산 정상이 잘 보이니 제주도 날씨가 아주 좋은 것 같다.
 과거에는 운항되는 비행기가 그리 많지 않아서 비행기가 곧장 이륙하고 착륙했는데, 점점 운항되는 비행기가 많아져 하늘 길 교통 체증이 심해져 착륙시에는 제주 상공을 우회하여 착륙이 5분 이상 지연되는 것 같다.

 빨리 신공항이 생겼으면 좋겠다. 8시20분쯤에 제주공항에 착륙했다. 육지공항과 다른 이국적인 분위기의 공항이 나를 반긴다.
 언제 와 봐도 정답고 좋다.
 내 고향이라 더 그런지 모르겠다. 택시를 타고 오늘 산행의 들머리인 관음사 입구까지 간다. 차창으로 보이는 길가에 꽃들이 일부 피어 있는 게 제주도는 봄기운이 많이 솟아나는 것 같다.
 약 25분 후에 관음사 입구에 도착 편의점에서 음료수를 사고 산행지 입구에 도착한다. 구름 한점 없는 하늘에 바람도 전혀 불지 않는다. 눈 덮인 한라산 정상이 선명하게 보인다. 웅장하고 아름답다.

 제주도 3월 날씨는 기온 변화가 심하고, 맑은 날이 별로 없고, 특히 바람이 많이 불어 걱정을 많이 했는데 기대 이상의 날씨다.
 문득 작년 12월 중순의 어리목, 윗세오름, 영실 코스 산행이 생각난다.
 눈보라가 세차게 몰아쳐서 안면부를 강타하고, 지근 거리에 보이는 것은 눈과 눈으로 이루어진 조각품 뿐이고, 세찬 바람이 불어와 몸을 가누기 힘들어 마치 영화나 텔레비전을 통해 본 히말라야 고산 산행을 연상케 하는 산행이었다.
 기후의 대단한 변화에 새삼 자연의 경이로움이 느껴진다. 스틱 정비, 선글라스 착용 등 산행 준비 후 등산을 시작한다.

 9시다.
 집에서 떠난지 정확히 4시간 만이다. 해발 620m에서 시작되는 산행이다. 한라산 등산 코스중 가장 힘든 코스다.
 눈이 다 녹아 나무데크와 한라산 특유의 돌길로 되어진 등산로를 따라 걷는다. 인적이 드문 고즈넉한 길이다. 눈길 보다는 발바닥 감각이 안 좋다.
 잔잔한 파도위에 순풍에 돛단배처럼 편안하게 앞으로 나아간다. 제주도 동굴 중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구린굴을 지난다. 과거 선조들이 얼음을 저장하던 자연 동굴이다.
 이어서 숯 가마터를 지나 1시간 정도 걷다 보니 탐라계곡 입구에 도달하게 된다. 탐라계곡은 설악산 천불동계곡, 지리산 칠선계곡과 함께 우리나라 3대 계곡이다. 의자가 놓여 있어 잠시 휴식을 취한다.

 가랑비에 옷깃 젖는다고 편안한 길이지만 꽤 힘들다. 목도 평소와는 달리 많이 마른다. 몸살 감기 기운이 남아 있어서 그런 것 같다.
 물을 계속 마셔댄다.
 탐라계곡 주변은 눈으로 덮여있다. 탐라 목교를 지나 가파른 계단 길을 힘들게 오른다. 과거에는 계단도 없고 다리도 없어서 위험하고 힘들게 내려와서, 탐라계곡의 거친 돌길을 밟고 지나게 되었는데 등산길이 많이 편해졌다. 등산객들을 많이 배려한 것 같다.
 이제 부터 경사가 심해 산행길이 점점 힘들어진다. 가끔 하산하는 등산객들과도 조우한다. 등산로는 눈으로 덮여 있어 발바닥 감촉은 좋다. 이제부터 등산로는 겨울산행이다.

 탐라계곡 대피소를 지나 조금 오르다 보니 좁은 산행길 양옆에 두개의 바위가 서있어 하나의 문을 만들어 놓은 것 같다. 한라산으로 가는 좁은 문이 아닌가 싶다. 계속 힘들게 오르다 보니 불의의 사고로 산화한 젊은 영혼들이 머물고 있는 원점비를 지난다.
 조금 걸어가다 보니 경사가 심해 자꾸 미끌어진다. 아이젠을 착용한다. 힘들게 등산하다보니 개미등에 도착하고, 계속해서 아무 생각 없이 뚜벅 뚜벅 한 걸음 한 걸음 힘들게 걷다 보니 울창한 나무숲으로 가려졌던 하늘 길이 훤히 보이고 우뚝 솟은 봉우리가 갑자기 나타난다.
 깍아지른 바위가 우뚝 솟은 모습이 영락없이 삼각형 모양의 바위다. 백록담으로 가는 길목을 사천왕처럼 지켜서 있는 삼각봉이다. 삼각봉 너머로 넓은 들판으로 이어지는 장구목 능선이 보인다. 힘들게 여기까지 온 등산객들을 위한 한라산의 첫번째 선물이다. 삼각봉 대피소에 도착하니 많이 힘들고 배도 고프다.

 준비해온 1000원짜리 호떡 하나와 따뜻한 생강차를 마신다. 호떡이 참 맛있다. 비싸다고 다 맛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잠시 지나온 길을 내려보니 가깝게는 여러개의 오름군이 편안하게 놓여 있고 멀리 제주 시내와 제주 앞바다가 뚜렸하게 보인다. 제주 시내 건물들이 여러 개의 성냥갑처럼 보이는게 너무 왜소해 보인다. 대자연 앞에 너무나 작은 우리의 모습이 아닌가 싶다.
 삼각봉 옆으로 눈을 돌리니 왕관바위가 보이고 멀리 웅장한 한라산 정상이 내 눈에 더욱 가까이 보인다. 한라산 정상과 하늘이 붙어있는 것 같다.

 왕관바위는 겨울 산행시 눈꽃이 만개하면 수 많은 다이아몬드로 만들어진 것처럼 번쩍여 이 세상에 가장 값진 왕관처럼 보이게 된다. 삼각봉 옆을 지나니 일부 눈이 녹은 나무데크위에 쌓인 눈이 1m 넘는 것 같다. 길이 좁고 위험하여 조심스럽게 걷는다.
 곧이어 용진 현수교를 지나 무너져 내린 용진각 터 앞을 지나치게 된다. 하얀 눈으로 덮여 있는 자리에 옛날 용진각을 떠올려본다. 내가 수 차례에 걸쳐 휴식을 취하고 음식물을 먹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심한 폭풍우로 일순간에 허물어 졌다니 자연의 무서움에 많이 겸손해진다.
 자, 이제 한라산 등반 중 가장 힘들지만 가장 큰 희열을 맛볼 수 있는 코스다. 눈이 많이 쌓여 원래 있던 등산로가 전혀 안 보이고 경사가 심한 길을 무작정 오른다. 힘도 들고 숨도 헐떡이게 된다. 오르다가도 미끄러져 내리는 경우도 있다.

 마주 보고 내려오는 사람들도 계속 미끄러지면서 내려 온다. 겨울에는 등산객이 많아 교통체증이 일어나는 곳인데 오늘은 등산객이 많지는 않다. 힘들지만 등산의 기쁨을 가장 맛보게 되는 순간이다. 지금의 고통만 지나면 많은 즐거운 순간들이 찾아온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리라.
 지금 열심히 자기 개발을 위해 밤잠 못자고 애쓰는 우리 자식 세대들도 찬란한 미래가 찾아와 지금의 힘든 고통이 희열이 될 수 있으면 하는 마음이 문득 생긴다. 약 25분 정도의 악전고투 끝에 왕관 바위에 도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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