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륭한 연구자의 자질과 조건 〈하〉

정준기의 마로니에 단상 〈13〉

　우리는 우선 가족의 관심과 사랑을 통하여 나의 정체성과 존재의 소중함을 느끼게 된다. 그 후 조금씩 자기가 이룩한 성과로 능력에 대한 자신감이 생기고, 다른 사람의 인정을 받으면서 저절로 자긍심도 생긴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일종의 양성 피드백으로 능력과 자기 확신이 증폭되어 마침내 어렵고 가치 있는 큰 업적도 이루게 된다. 어떤 사람의 가치는 본래부터 있는 게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귀중한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믿고 다른 사람이 존중하여 주면 존재하는 것이다. 나는 그 출발점에 가족에게서 받은 무조건적인 사랑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들의 생활을 자세히 보면 사실은 거의 모든 시간을 연구에 사용하였다. 어린 시절 지하실에 실험실을 차린 챌피와 치엔은 사실상 청소년기를 화학 실험에 보낸 셈이다. 오사무의 경우 부인과 아들, 온 가족이 해파리를 모으기 위하여 1961년부터 1988년 까지 오랜 기간 동참하였다. 미국 동부에 있는 매사추세츠에서 형광 해파리가 많이 모여 사는 서부 끝 워싱턴 주 블루하버까지 19번을 왕복하였다. 그 중 13번은 자동차로 미 대륙을 횡단하였단다. 이 엄청난 가족의 희생과 협조로 그는 85만 마리의 해파리를 모아 마침내 GFP를 추출하였다.

　기회와 행운은 우연을 가장하여 다가온다. 오사무는 대학원 시절 지도교수의 권유로 형광 단백질을 접하게 되었다. 그는 처음에는 박사 학위를 받을 계획이 없어, 교수는 논문이 될 것 같지 않은 이 과제를 오사무에게 배정한 것이다. 또 나중에 미국에서 해파리를 수집하여 형광 물질을 추출한 연구가 끝난 다음해인 1990년부터 마치 기다리고 있던 것처럼 블루하버에 더 이상 해파리 군집이 생기지 않았다. 유조선이 좌초되어 유출된 기름으로 바다가 오염되었기 때문이었다.

　치엔은 근육세포 내의 칼슘 영상을 얻기 위하여 이 물질을 다루다가 핵심을 찌르는 아이디어로 새로운 형광 물질을 얻게 된다. 그는 실험과정에서 초록 형광이외에 한 가지 색이 더 필요했다. 어느 날 구조상 중요한 아미노산을 바꿔보면 어떨까하는 직관적 생각이 떠올랐고, 그 결과 200여개의 새로운 형광단백질을 얻게 된다. 그의 색상에 대한 타고난 미술적 소양도 한 몫 했다고 한다.
　챌피의 경우 연구 동료들과 어울리고 즐기면서 소통하는 타입이었다. 그는 대학원 시절부터 실험실은 천국이라고 항상 즐거워했다. 교수와 동료 대학원생뿐 아니라 연구원, 연구보조원, 청소원 등 모든 멤버와 친분이 두터웠다. 구성원들도 유머에 가득한 그를 진심으로 좋아했고, 음악, 수영을 함께 즐기면서 진정한 사랑을 나누었다. 이런 성격과 생활 태도에서 넓은 식견과 진정한 리더십을 가지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형광 단백질의 응용 분야를 개척하는 협동연구가 진행되었다.

　모든 일에는 체력과 건강이 뒷받침 되는 것이다. 연구자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오사무 경우에도 전쟁 후 궁핍한 환경에서도 농지를 갖고 있어 예외적으로 영양실조 없이 건강을 유지하였다. 챌피는 평생 접영 수영으로 건강을 유지하였다. 다만 치엔의 경우 운동에 취미가 없어 체육 시간에는 다른 공부를 하였다고 한다.

　내가 10년 전에 미국 분자영상학회에서 칼슘 영상에 관한 치엔 교수 강의를 감탄하면서 들은 적이 있다. 바로 그 뒤에 노벨화학상을 받았고 그는 의생명학 분야의 슈퍼스타가 되었다. 세계 각국에서 공식적인 학술상만 50여개를 받았고 자연히 거액의 연구비도 집중되어 실험실이 급격하게 커졌다. 학회에서도 기조 강연자로 초청되어 내가 들어보니 거의 모든 암을 정복할 것 같은 기세였다. 올해 2월 샌디에고에서 열린 미국 암연구학회에서 치엔 교수를 만나보니 일 년 전에 뇌졸중에 걸렸다고 한다.

　지금은 많이 호전되었으나 아직도 오른쪽 팔, 다리가 불편한 상태였다. 스트레스와 과로로 병이 생겼으나 학문에 대한 의욕은 여전하여 그 와중에도 강의를 하고 있었다. 새옹지마塞翁之馬가 여기에 맞는 말이다. 노벨상 행운에 이어 따라온 병마에서 다시 새로운 좋은 일이 생기기를 기원한다.

　나는 이 글을 쓰면서 지적 능력 뿐 아니라 어떤 소질, 능력, 통찰력, 노력, 끈기, 의지력 등 모든 자질이 성공적인 연구에 도움이 된 것을 알았다. 체력은 물론이고 미술, 음악, 문학 같은 예술적 소양도 큰 도움이 된다. 여기에 우연 또는 필연적으로 기회가 찾아왔고, 이 행운을 놓치지 않고 전력을 다해 결실을 맺었다. 한 편으로는 원만한 인성을 바탕으로 연구를 수행하고 다른 과학자와 밀접한 교류가 있었다.

　결론적으로 그들이 갖고 있던 모든 인간적인 자질과 능력이 성공적인 연구의 바탕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뛰어난 연구자는 다양하고 많은 자질과 조건을 갖추고 한 과제에서 서로 상승적으로 작용하도록 집중한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란 옛말이 있다. “인간으로서 해야 할 일을 다 하고 나서 하늘의 결정을 기다린다.”고 번역되나, 실상은 하늘이 받아준다는 뜻이다. 이 말은 연구에서도 우리가 모든 능력을 바쳐 몰두하면 운명과 하늘이 도와준다는 의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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