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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옥동자와 미군 장교
(수필) 옥동자와 미군 장교
  • 의사신문
  • 승인 2015.04.28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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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병 훈(서울시의사회 고문)

긴급 수혈로 살아남은 신생아 통해 인류애 느껴

조물주가 인간을 창조할 때 너무나 많은 공을 들인 것 같다. 아름다운 것을 구별할 줄 알게 눈을 만들었고, 즐거운 음악소리를 듣고 감동할 수 있는 귀를 만들었으며, 은은한 난초 향기를 맡을 수 있는 코를 만들었다.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도 있고 모든 사람에게 감명을 줄 수 있게 말할 수 있도록 입도 또한 정성들여 만들었다. 하나하나 관찰하여 보면 감탄하지 않을 부분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조물주는 미처 몰랐을 것이다. 인간이 이같은 창조의 신비를 하나씩 벗길 수 있게 될 뿐만 아니라 신체의 어느 부분이라도 남의 것을 이식시켜 주어진 생명을 연장시키고 행복하게 지낼 수 있게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될 것이란 사실을.
 1975년 순천향병원에 근무할 때 일이다. 산부인과 과장이 찾아와 나에게 상담을 요청했다.
 “이 과장! 교환 수혈해 봤어요?”
 “대학병원에서 많이 시술해 봤는데요.”
 “아주 드문 산모가 있는데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아주 드문 일일거요. 결혼한지 10년이 지나면서 그동안 12번이나 유산이나 사산을 하였고, 이번에 13번째 임신인데 Rh 음성 산모라 아주 어렵겠어요. 임산부를 보낼테니 자세히 설명을 해 주시지요.”
 산모를 만나 보았다.

 “저는요. 이 세상에 아이만 살게 해 준다면 원이 없어요. 시어머니 뵙기도 정말로 어렵고, 주위 사람들이 항상 저한테 손가락질 하는 것 같아요. 여자로서…. 애 없는 여자라고요.”
 아이에 대한 희망과 함께 비장한 각오를 하고 있는 32세의 임산부이었다.
 “`Rh 부적합증'이라고 하는데요.”
 산모는 Rh 음성형이며 태아는 Rh양성형이라 서로 피가 맞지 않아서 태아 적혈구가 파괴되어 빈혈이 심하게 오고 황달이 심하여져서 `핵황달'이라고 하는데 이것을 치료하기 위하여 출생 즉시 아기의 피를 모두 바꾸어 넣는 교환수혈을 하는 것”이라고 자세히 시술 과정을 설명을 하였다. 그러나 1차 교환수혈을 한 후 아기는 생후 3일후 불행하게도 상태가 악화되어 다시 긴급 수혈을 하지 않으면 생명을 잃게 될 위기에 놓였다. Rh 음성혈액형의 헌혈자를 찾기 위해 필자는 국내 각 TV 방송국과 미군 TV 방송국에 급히 방송을 요청했다. 이런 긴급한 사실이 전파를 타고 전해지자 얼마 되지 않아 두 명의 미국인이 전화를 걸어왔다.

 병원으로 달려가겠으니 대기하고 있으라는 것이었다. 한 사람은 병원 근처에 사는 미군 사병이었고, 또 한 사람은 동두천에서 헬리콥터를 타고 온 미군 장교였다. 두 사람은 거의 동시에 병원에 도착하여 서로 먼저 헌혈을 하겠다면서 팔을 걷었다. 잠시 이야기를 나눈 후 장교가 사병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장교이며 또 이 갓난애와 같이 태어 난지 얼마 안 되는 아기를 기르고 있소. 내가 먼저 피를 뽑고, 피가 더 필요하면 그 다음 당신이 뽑으시오.”

 그래서 결국 미군 장교가 헌혈을 하게 되었고, 아기는 두 번째의 교환수혈을 신속히 받아 생명을 구하게 되었으며,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었다. 순천향병원에서 기적적으로 태어났다고 하여 이름을 `순천'이라고 지었다고 한다.
 아기가 제법 커서 5살이 지난 어느 날 건강진단을 받으러 병원에 왔었다. 아기 엄마는 아주 기분이 좋아 하면서 순천이가 태어나기 전에 지난 이야기를 하였다.

 “저는요. 아기를 업고 가는 여자를 보기만 하면 얼마나 부러웠는지 몰라요. 길을 가다가 멍하니 서서 아이를 쳐다보는 것이 저의 일이었고 초등학교 앞에서 아이들이 나오는 모습을 보면, 걸음을 멈추고 아이들이 다 나올 때까지 정신 나간 사람처럼 넋을 잃고 쳐다보곤 하였습니다. 아마도 누가 봤으면 완전히 미친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꺼에요. 이젠 정신을 차리겠습니다.”
 그 후 아기의 어머니는 국내의 Rh 음성 혈액자 단체에 가입하여 한 달에 한 번씩 있는 모임에 빠지지 않고 꼭 참가하고 있으며, 필요한 때는 서로 헌혈을 하며 돕고 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Rh 음성형인 사람들의 인구 분포는 백인이 15%, 흑인 5%가 되며 우리나라 사람들은 아주 드물어서 0.3% 정도라 간혹 사고가 날 수가 있다. 아직도 자신의 혈액형이 무슨 형인지 모르는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가 Rh 음성이 아닌가 확인해 보고 이런 단체에 등록하여 위급한 사람을 위해 사랑의 헌혈을 해주었으면 하고 바라는 심정이다.
 지난 10월말에 전화가 왔다.

 “저 이순천인데요. 박사님, 안녕하세요?”
 “어, 그래. 잘 있었어요.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요. 한번 만나고 싶네요.”
 “네. 강남에서 근무해요”
 “그럼 월요일 점심이나 같이 하지요. 자네 결혼식 주례를 한 후 서로 연락이 없었지. 그런데 얼마 전 당신 태어날 때 긴급수혈을 해준 그 당시 미군 드로즈 중위가 일부러 순천향병원을 찾아와서 자네를 만나 보겠다고 찾았다네. 나한테 연락이 와서 당신한테 연락을 하였더니 전화 통화가 모두 안 되더군요. 당신한테 긴급수혈을 해주려고 동두천에서 일부러 급히 헬기를 타고 온 고마운 분인데…. 자네 이제 몇 살이지요?”
 “저는 39살이 되었어요.”
 “세월 참 빨리 지나가고 있네요. 어머니는요.”
 “잘 지내고 계세요. 요즘 건물 청소 관리를 하고 계세요.”
 “그래, 나도 너의 어머니한테 안부 전화를 드려야겠네요.”

 순천이는 중·고등학교때 운동선수로 활약을 하였으며 태권도 3단, 유도는 고단자로서 전국대회에서 은상, 동상을 수상 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금융업에 종사하다가 현재는 효성그룹산하 자회사에 근무하고 있으며 부인과 함께 두 자녀가 있다고 한다.

 미국 사람들과 만난 자리에서 위와 같은 미군 미담을 이야기 한 적이 있는데, 미국 사람이 제시하는 자동차 운전 면허증 뒷면에는 `내가 사망하면 나의 신체 모두를 기꺼이 원하는 사람에게 자원하여 바치겠다'라는 개인 서약들이 기재되어 있는 것을 보면서 일등 국민에 대하여 존경을 하게 되었다.

 자연과학이 계속적으로 발전하면서 인간의 귀중한 생명이 태어나게 되었으며, 우리도 이제는 어려울 때 서로 도와주며 헌신적으로 사랑을 하는 국민이 된 것이다. 그리고 사랑의 헌혈, 사랑의 장기 기증 등으로 인하여 생존하기 어려운 환자가 기적적으로 다시 살아나게 되었으며 헌신적인 사랑과 봉사활동은 인류 역사에 영원히 빛나게 되리라.

 이 수필은 (사)한국수필가협회에서 발행하는 월간 〈한국수필〉 2015년 3월호에 게재된 신춘, 신인상으로 당선작품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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