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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선과 혁신 그리고 현상유지
개선과 혁신 그리고 현상유지
  • 의사신문
  • 승인 2009.09.02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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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 받기 위해선 치열한 '개선 노력' 필요해

기술의 발전에 대해서는 필자 나름대로의 생각이 있다. 혼자만의 생각일수도 있겠지만 비슷한 문맥의 글들을 가끔씩 보곤 한다. 근원 기술의 초기 시작에는 어마어마한 에너지와 행운이 필요하다. 재능 있는 사람들의 집결도 필요하다.

아무도 해보지 않은 일이기에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이다. 기술사에서는 여러가지 가능성 가운데에서 몇 가지의 비싼 도박에 가까운 시도들을 하는 경우를 흔히 발견한다. 시도가 성공하면 새로운 기술이 나타난다. 단절적인 기술이라고도 하며 그 기술이 나오기 전과 이후는 완전히 달라진다. 자동차, TV, PC 같은 것의 출현이다.

이 정도는 되지 않더라도 단절적인 기종 같은 것이 있다. 업계에서 `킬러앱스'라고 부른다. 아이팟 같은 모델이 대표적이다. 자동차에도 비슷한 모델들이 있었다. 그러나 킬러앱스들은 한 업종에서 10년에 하나 정도 나타난다. 그리고 업계는 혼란스러운 적응을 해야 한다. 벤치마크 기종이 생겨버린 것이며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되기도 한다.

처음에 무엇을 시작하는 것이 혁신(Innovation)이라면 그 다음은 개선이라는 과정이 필요하다. 개선의 목표는 무엇일까? 사람들의 의견은 다양하니 몇 가지의 모델을 선택해야 할 것이다. 실제 운전자의 의견을 수렴하여 무엇인가를 개선하는 일이 중요하다. 소비자들이 이러저러한 점이 개선되었으면 하고 바란다면 메이커들은 그 일을 좋아하건 좋아하지 않건 개선해야 한다. 개선의 목표는 기업체가 바라는 일이 아니라 소비자가 원하는 그 무엇이다. 흔히 기술 중심적인 업체들이 잘 빠지는 함정은 자신들이 원하는 일과 필요한 일을 혼동하는 것이다. 공급이 수요를 만들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수요를 따라야 한다.

하지만 소비자의 의견도 다양할 터인데 어떤 모델을 따라야 할 것인가도 중요하다. 현대자동차의 차종들이 미국의 JD Power의 조사에서 1등을 했다면 이 벤치마크가 현대자동차의 스승일 것이다. 시험을 볼 때 다른 공부보다는 바로 앞의 과목을 집중적으로, 시험 보는 곳의 아이디어를 주의 깊게 보는 것과 비슷하다. JD 파워의 조사항목들은 소비자들이 원할 것으로 보이는 어떤 항목들에 점수를 주어 차들을 평가한다. 그리고 이런 모델이 맞다고 생각하고 메이커들은 도박을 한다.

혁신은 너무나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기 때문에 개선이 쉬운 것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어렵다. 개선이라는 말이 쉽지 않다는 것은 현장에 가보면 안다. 하나를 바꾸면 다른 것들과 충돌되고 난감한 일들이 기다리고 있다. 인력과 시간과 돈이 필요하다. 개선의 연속은 지속적으로 다른 것들을 변화시키기 때문에 개선의 에너지 소모 역시 작은 것은 아니다. 그래서 혁신과 개선과 현상유지 사이에는 항상 긴장이 도사리고 있다.

개선이라는 화두의 대표적인 업체라 할 수 있는 토요타는 밖에서 보기에는 칙칙한 업체처럼 보인다. 새롭거나 반짝이는 아이디어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수 십년 동안 잘 팔리는 차를 만들어 왔다. 팔릴만한 차만 만들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차들을 살펴보는 것은 상당히 재미있는 과정이다. 가장 수요가 많은 세그먼트에서 가장 선택을 많이 받는 차종이기 때문이다. 디자인은 무난해야 하며 가급적 고장은 나지 말아야 하고 성능은 적당해야 하며 안전성도 좋아야 한다. 그리고 가격도 적당해야 한다. 생활에 항상 사용하는 차이므로 수리도 빠르고 저렴하게 끝내야 한다. 그러니 복잡하면 안 된다. 생각해보면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러니 준중형차의 초베스트셀러들은 결코 튀어 보이지 않는다.

우리나라에는 렉서스나 캠리 같은 차들이 알려져 있지만 토요타의 대표적인 기종은 코롤라다. 1966년 발표되어 1997년에는 전세계의 차들 중에서 가장 많이 팔린 차량으로 기록에 올랐다. 그리고 2007년에는 3500만대를 기록했다. 40여년 동안 40초마다 한 대씩 차를 만들어내었다는 계산이 나온다고 한다. 코롤라는 필요한 시기가 되면 과감한 변신을 거쳤다. 차를 잘 파는 것이 목표라면 시험성적은 최고인 셈이다. 성적은 최근에도 변하지 않았다. 올해 소비 진작을 위해 미국에서 차를 폐차하면 장려금을 주는 프로그램이 끝나고 나온 통계에는 코롤라가 1등이다. 강력한 경쟁자인 포드의 포커스를 눌렀다. 더 중요한 사실은 프리우스와 캠리가 Top 5에 들어갔다는 사실이다. 요즘 경제성을 생각하는 미국인들이 경제적이고 무난한 차를 선택하는 시험도 최고의 성적으로 거뜬히 통과한 셈이다.

요즘 들어 토요타 딜러의 부품과 수리비용이 예전보다 많이 올라가서 다른 업체들이 추월을 시도하고 있지만 얼마 전까지 차의 유지비는 정말로 저렴했다. 차를 수리하기도 어렵지 않았다. 고장이 잘 나지도 않지만 개선에 개선을 거듭하여 어느 부품이나 쉽게 갈 수 있고 유럽차들에서 볼 수 있는 것 같은 기묘하고 불합리한 배치는 거의 볼 수 없다. 컴퓨터로 설계한 자동차가 로봇으로 만들어지더라도 개선의 여지는 언제나 남아있다. 게다가 소비자는 변덕스러워서 기호는 언제나 변한다. 그럼에도 선택을 당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특별한 것이 남아있다.

이런 탁월함의 뒤에는 처절할 정도의 개선 노력이 숨어있다. 모두들 전력으로 질주하는 자동차 업계에서 혁신이 일어나 룰이 바꾸지 않는 한 조금씩 개선하는 이외에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경쟁이 치열한 Compact, Subcompact 세그먼트는 이상한 진화의 풍경이 보이는 곳이다. 아반떼가 이런 차들의 대열에 속한다는 것은 그만한 노력이 들어갔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만 처음부터 만든 것이 아니라 중간에 적당한 모델을 골라 유리한 지점에서 출발했다는 점이 특이하다. 그 이후에는 지리할 만큼 고치고 손보는 일의 연속이었다고 보면 된다.

안윤호〈송파 대광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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