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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세페 베르디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
쥬세페 베르디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
  • 의사신문
  • 승인 2015.03.09 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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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이야기 〈301〉

 ■절망의 시기에 탄생한 걸작 `진흙속의 연꽃'

 `라 트라비아타'는 이태리어로 `엇나간 여자' 혹은 `길을 잃은 여인', `거리의 여인'이라는 뜻이다. 일본에서 `춘희'라 의역한 것을 일제 강점기부터 우리나라에서도 그대로 `춘희'란 타이틀로 발표가 되면서 지금도 그 타이틀을 계속 사용하고 있지만, 원어 그대로 `라 트라비아타'로 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오페라 이야기는 진부하고 심파조로 흐르는 듯하지만 그 속에서 흐르는 주옥같은 아리아들과 선율들이 어우러지면서 진부한 스토리는 의외의 감동으로 다가온다. `라 트라비아타'는 지금까지 가장 많이 상연되는 오페라 중 하나가 되고 있다.

 1852년 2월 파리 사교계를 휩쓸었던 코르티잔 마리 뒤플레시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알렉상드르 뒤마 2세의 소설을 각생한 연극 `라 트라비아타'가 세인들의 관심 속에 첫 막을 올렸다. 당시 스트레포니와 파리에 머물고 있던 베르디는 그 연극을 보고 말할 수 없는 감동을 받았다. 금권결혼과 황금만능주의가 팽배한 파리에서 자칫 길을 잘못 들어 코르티잔으로 살다 죽을 수밖에 없는 여주인공의 이야기는 마치 베르디 자신의 이야기 같기도 했다.

 극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 마르그리트 고티에의 가련한 처지를 보면서 베르디가 스트레포니를 연결시키는 것은 무척 자연스러웠다. 12년 전 베르디는 사랑하는 아내 마르게리타를 뇌수막염으로 잃는다. 바로 전해에는 그의 아들 이칠리오를, 그 다음해에는 그의 딸 바르지니아를 잃게 된다. 불과 2년 사이 베르디는 사랑하는 가족 모두를 잃게 된 것이다. 그는 회고록에서 이렇게 말했다. “난 혼자가 되었다. 얼마 전까지 이 공간에서 함께하던 사랑하는 세 사람이 영원히 나의 곁을 떠났다. 그러나 이 끔찍하고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나는 계약했던 오페라를 완성해야 했다.” 설상가상으로 역경을 딛고 작곡한 오페라 `하루만의 임금님'도 참담한 실패로 끝났다.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친 그에게 따뜻한 손길을 내민 사람은 바로 소프라노 주제피나 스트레포니였다.

그녀가 베르디의 오페라 `나부코'의 여주인공을 맡았고 오페라는 대성공을 거둔다. 마침내 불행을 딛고 일어선 베르디는 제2의 인생기를 맞는다. 이런 인연으로 스트레포니와 베르디의 관계는 사랑으로 깊어져갔다. 최고의 프리마돈나였던 그녀지만 당시 그녀는 주변 사람들의 곱지 않은 시선과 끊임없는 추문에 휩싸여 있었다. 여러 유명 인사들과의 은밀한 관계로 세 명의 아이를 낳았던 것이다. 베르디는 그런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진정으로 그녀를 사랑하였다. 주위의 시선을 멀리하기 위해 자신의 고향 부세토 근처에 전원주택을 마련하여 12년간 그녀와 동거하였다.

 매몰찬 세상의 따가운 시선 속에 그녀를 지켜줘야 한다는 상황에서 알렉상드르 뒤마 2세 원작의 연극 `라 트라비아타'를 보게 된 것은 운명적이었다. 그 자리에서 당장 오페라로 만들 작정을 한 베르디는 프란체스코 피아베에게 대본 각색을 의뢰하였고 의욕적으로 작품을 써나갔다. 이렇게 하여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가 완성되었고, 가장 매혹적인 비련의 주인공 비올레타가 탄생하게 된다. 고급 창녀인 비올레타는 이 오페라에 나오는 어느 누구보다도 고결한 성품을 지닌 주인공으로 묘사되고 있다. 베르디는  진심으로 사랑했지만 사회 통념상 이루어질 수 없었던 연인의 비극적 사랑을 통해 당시 사회의 편견과 모순을 고발하고 싶었던 것이다.
 서곡 제1바이올린의 가냘프고 애수에 젖은 선율은 이 오페라의 비극적 내용을 암시하고 있다. 비올레타의 순수한 사랑을 나타내는 선율이 관악기, 콘트라베이스와 함께 연주된 뒤 첼로가 그것을 이어받고 두 선율이 아름답게 고조되었다가 생명이 그대로 꺼져가듯이 끝을 맺는다.

 제1막 파티장면이 나타나고 순진한 시골 청년 알프레도가 고급 창녀 비올레타를 소개 받고 첫 눈에 반하게 된다. 알프레도가 선창으로 그 유명한 `축배의 노래'를 부르고, 비올레타의 아리아 `아 그이였던가!'가 이어진다.

 제2막 파리 근교에서 비올레타와 행복한 동거 생활에 대한 감회를 알프레도가 아리아 `내 불같은 젊은 혈기'로 부른다. 그 뒤 그의 아버지 제르몽이 나타나 비올레타에게 그의 아들과 헤어질 것을 강요하는 이중창을 부른다. 이 곡은 비올레타의 비극적 삶을 예시하고 있다. 비올레타가 절망에 뛰쳐나가자 영문을 모르는 알프레도는 그녀가 다시 환락가로 돌아가는 것으로 오해하고 쫒아가려 하는데 그의 아버지 제르몽이 나타나 그에게 고향 프로벤챠로 돌아가길 애원하면서 아리아 `프로벤차 내 고향'을 부른다. 그런 아버지를 뿌리치고 파티장으로 간 알프레도는 돈을 그녀에게 뿌리며 심한 모욕을 가해 오히려 많은 사람들의 빈축을 산다.

 제3막 폐결핵으로 죽어가는 비올레타의 방에서 그녀는 아리아 `안녕, 지난 날이여!'를 부르면서 비탄에 빠져 있다. 알프레도 부자가 나타나 그녀에게 용서를 구하면서 같이 살기를 원하지만 이미 시간은 늦어 비올레타는 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둔다.

 ■들을 만한 음반 : 일레나 코투르바스(비올레타), 플라치도 도밍고(알프레도), 제르몽(셰릴 밀른즈), 카를로스 클라이버(지휘), 바이에른 국립오케스트라(DG, 1977); 마리아 칼라스(비올레타), 주세페 디 스테파노(알프레도), 에토레 바스티아니니(제르몽),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지휘), 라스칼라 오페라(EMI, 1955); 조안 서덜랜드(비올레타), 루치아노 파바로티(알프레도), 마태오 마누구에라(제르몽), 리차드 보닝(지휘), 내셔널 필하모닉 오케스트라(Decca 1972); 안젤라 게오르규(비올레타), 프랭크 로파도(알프레도),레오 누치(제르몽), 게오르크 숄티(지휘), 로열 오페라(DECCA, 1994); 안나 네트렙코(비올레타), 롤란도 비야손(알프레도), 토마스 햄프슨(제르몽), 카를로 리치(지휘),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DG,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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