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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게이 프로코피에프 〈로미오와 줄리엣〉 발레모음곡 제1번과 제2번 작품번호 64 
세르게이 프로코피에프 〈로미오와 줄리엣〉 발레모음곡 제1번과 제2번 작품번호 64 
  • 의사신문
  • 승인 2015.02.16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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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이야기 〈299〉

 ■모더니즘을 벗어난 고전스타일의 발레음악

 셰익스피어 작품 중에서 음악에서 가장 많은 버전을 가지고 있는 비극 `로미오와 줄리엣'은 오페라로 무려 14편이나 제작되었고 교향곡으로는 차이코프스키, 베를리오즈 등이 작품을 남긴 바 있다. 5막 23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원작 `로미오와 줄리엣'의 내용이 매우 드라마틱하여 음악이나 극, 발레로 만들어지기에 적합하였기 때문에 후대 여러 작곡가들에겐 훌륭한 소재의 대상이었다. 그중 발레로서 〈로미오와 줄리엣〉의 이름을 세상에 널리 알린 작곡가는 바로 프로코피에프였다.

 러시아의 떠오르는 작곡가로 세인의 주목을 받고 있던 프로코피에프가 이 작품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914년 런던에서였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을 졸업하고 런던에서 지내던 그에게 `로미오와 줄리엣'의 작곡을 권유한 사람은 바로 안무가 디아길레프였다. 그의 음악성을 알아본 디아길레프는 아직 발레곡이 없던 `로미오와 줄리엣'의 성공가능성을 내다봤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작곡에 착수하진 못했다가 20년이 지난 1934년 가을, 볼쇼이 극장으로부터 발레 작품을 위촉받게 되면서 비로소 이 작품을 구상하게 된다. 그는 1918년 러시아 혁명 이후 수립된 혁명정권을 혐오해 미국으로 망명해 뉴욕에서 음악활동을 하다 고국에 대한 향수로 가족과 함께 1933년 귀국한 상황이었다.

 그전의 모더니즘을 버리고 로맨티시즘으로 옮겨가기 위한 작업에 골몰하던 차 때마침 `로미오와 줄리엣'을 접하고 이 작품에 담겨진 인도주의가 자신이 추구하는 로맨티시즘에 잘 어울리는 소재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고 이 대작에 한층 심혈을 기울여 2년간에 걸쳐 쓰게 된다. 현대음악 작곡가인 프로코피에프가 모더니즘에서 벗어나 그만의 낭만적인 고전스타일로 작곡한 이 작품은 특히 말할 수 없이 깊은 정서적 표현과 강렬한 개성, 타의 추종을 불허한 큰 스케일 때문에 발레 음악의 정점에 우뚝 서있는 걸작으로 평가받는 작품이 되었다. 대본은 작곡가 자신과 셰익스피어 연구가인 라드로프가 맡고, 안무는 라브로프스키가 맡았다.

 프로코피에프는 이 작품에서 몬테규가와 캬풀렛가의 우매한 외고집, 타이볼트의 포악과 죽음, 중세의 암울한 몽매함을 색채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로미오의 주제는 단순한 데 비해서 줄리엣의 주제는 여러 가지가 등장한다. 그것은 양가의 극한적 대립으로 빚어지는 갈등과 사랑을 위해서라면 죽음이라도 불사하겠다는 절연한 각오 등 다양한 그녀의 심리적 상황을 보여주는 것이다. 양가의 싸움, 거만한 타이볼트의 주제는 어둡고 무거운 것으로 설정하여 젊은 연인들이 겪는 비극이 중세의 어리석음에 기인한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결국 그는 봉건 가문 사이의 알력이 빚는 비극적이고 운명적인 결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나 발레 〈로미오와 줄리엣〉은 레닌그라드 키로프 극장으로부터는 셰익스피어 원작에 지나치게 충실하다고 하여 공연을 거절당한다. 이어 모스크바 볼쇼이 극장으로부터는 춤을 출 수가 없는 음악이라는 혹평을 받자 그는 “살아있는 자는 춤을 출 수 있고, 죽은 자는 춤을 출 수 없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결국 러시아에서는 발표되지 못한 채 이 작품은 1938년 체코슬로바키아 브루노 극장에서 초연된다. 이후 러시아에서는 1940년에서야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 키로프 극장에서 공연하게 되는데, 이때 안무를 맡았던 라브로프스키, 지휘자 파이엘, 미술을 담당한 윌리엄스는 각각 스탈린상을 받는 등 ‘소비에트 문화사상 기념비적 사건’이라는 절찬과 함께 눈부신 성공을 거둔다.

 이보다 앞서 프로코피에프는 발레 초연 전 1936년에 이 작품의 주요 부문 6곡을 묶어 모음곡 제1번을 공연하였고, 그 이듬해 다시 7곡을 묶어 모음곡 제2번을 만들어 공연하였다. 이어 1944년에는 6곡을 엮어 모음곡 제3번을 발표하였고, 다시 10곡을 정리하여 피아노버전(작품번호 75)으로 편곡해 공연할 정도로 이 작품에 대해 각별한 애정을 표했다. 이 발췌형식의 발레공연에서 이미 인정받은 음악적인 우수성은 본격적인 발레작품의 대대적인 성공으로 이어지게 된다.

 모음곡 제1번 1. 민족무용, 2. 정경, 3. 마드리갈, 4. 메뉴에트, 5. 가면 무도회, 6. 로미오와 줄리엣, 7. 타이볼트의 죽음. 모음곡 제2번 1. 몬테규가와 카플렛가, 2. 소녀 줄리엣, 3. 로렌스 수도사, 4. 춤, 5. 이별 직전의 로미오와 줄리엣, 6. 안티뉴 섬에서 온 아가씨들의 춤, 7. 줄리엣의 무덤 앞의 로미오

 ■들을만한 음반: 발레리 게르기예프(지휘), 키로프 오케스트라(Philips, 1990); 클라우디오 아바도(지휘),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DG, 1996); 앙드레 프레빈(지휘),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EMI, 1973); 로린 마젤(지휘),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Decca, 1973)

※ 이 클래식이야기 전편은 오재원 작 `필하모니아의 사계'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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