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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원진 칼럼) 인턴에게 의사의 일을
(임원진 칼럼) 인턴에게 의사의 일을
  • 의사신문
  • 승인 2015.02.10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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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홍 철(서울시의사회 보험이사)

하루 네 번 입원 환자들의 혈당 검사, 중환자실 입원 환자 X-ray 찍을 때 환자 등 들어주기, 의국 컨퍼런스 준비하기(에어컨 켜기, 커피 끓이기, 빔프로젝터 켜기 등), 10개에 나눠져 있는 혈액 하나로 모으기, 환자 운송, 실험용 샘플 운반하기. 나의 인턴 생활 중 상당부분을 차지했던 일이다.

 대부분의 의사들은 6년간의 힘든 의과대학 과정을 이수하고 의사 면허를 취득한 후 부푼 꿈을 안고 인턴으로 병원에서 의사로서의 일을 시작한다. 그러나 실상 병원에서 인턴들이 하는 일 중 대부분은 `의사'일과는 거리가 있다.
 `전문의의 수련 및 자격 인정 등에 관한 규정' 에서는 인턴을 의사 면허를 받은 사람으로서 일정한 수련병원에 전속(專屬)되어 임상 각 과목의 실기를 수련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현재 대한민국 대부분의 인턴들은 이와 상당히 동떨어진 일들을 하고 있다.

 2014년 4월 대한전공의협의회에서 실시한 `전공의 근무환경 및 건강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인턴 응답자들 중 5%만이 자신을 피교육생이라고 하였고 70%가 `근로자에 가깝다' 혹은 `근로자'라고 대답했다.

 인턴 수련과정에서 총 업무량 중 의사 고유의 일로 생각되는 부분이 몇%인지 묻는 질문에는 81.5%가 60% 이하라고 대답했고 의사 고유의 일 외에 가장 많이 차지하는 부분이 어디라고 물었을 때는 `간호사가 해야 할 일'이 41.3%로 가장 많았고 `기타 직원(기사 등)이 해야 할 일'이 28.8%로 그 다음이었다.

 전체 응답자들 중 71.1%가 환자 운송을, 60.3%가 혈액 배양을 제외한 아침 정기채혈을, 15.0%는 혈당검사를 인턴수련과정 중 담당했었다고 대답하였다.
 인턴이 채혈을 하고 혈당 검사를 하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할 수는 없다. 인턴도 엄연한 근로자이므로 의료인이 해야 하는 일 중 일부를 분담해서 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런 일들로 인해 인턴들의 삶이 힘들어지고 정상적인 수련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이다. 의사가 하지 않아도 될 일을 가장 낮은 직급에 있다는 이유로 인턴들이 도맡아 하며 주당 100시간 이상의 근무로 항상 피곤한 상태에서 환자들의 건강까지 위협하는 경우가 생긴다면 그것은 개인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큰 손실이다.

 대한민국 전공의들은 의사업무만으로도 충분히 힘든 생활을 하고 있다. 이에 대한 수련 환경을 개선해야한다는 취지에 공감하지 않는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현실에도 불구하고 개선이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병원의 사정 때문이다.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으로 인해 생기는 진료 공백을 추가적인 의사의 고용으로 매우기에는 경제적인 부담이 만만치 않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인턴들의 수련환경 개선으로 인해 필요한 인력은 대부분 의사가 아닐 것이다. 간호사, 기사 혹은 일반인들의 고용만으로도 인턴 업무의 상당부분이 감소한다. 실제 의사 인력이 부족한 중소병원에서는 인턴에게 채혈, 혈당 검사나 기타 잡다한 일들을 시키지 않는다. 파견 나간 인턴들은 모두 훌륭히 `의사'의 일을 한다. 오히려 대형병원일수록 인턴에게 잡다한 일을 시키는 경우가 많다.

 인턴들도 엄연히 면허를 취득한 의사들이다. 인턴 업무 중 의사가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경감시키고 레지던트의 일 중 기본적인 사항을 인턴을 시키는 것이 올바른 수련환경의 개선 방향이며 병원입장에서도 경제적인 일이라 생각된다. 전공의들의 수련환경 개선을 추진하며 추가적인 인력의 고용을 생각하기 전에 현재 전공의들, 특히 인턴들이 자신이 직능에 맞는 일을 하고 있는지부터 확인하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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