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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허갑범 연세대 명예교수
[인터뷰] 허갑범 연세대 명예교수
  • 김기원 기자
  • 승인 2015.01.22 10: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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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전원 관련 책 출간_“대한민국 의학교육, 미래지향적으로 개혁돼야”

허갑범 명예교수
허갑범 연세대학교 명예교수(허내과의원장)가 최근 ‘한국 의료의 세계화_의학교육 개혁이 열쇠다’(하단 사진, 의학출판사 간)라는 제목의 책을 내고 지금은 거의 동력을 잃은 의학교육 개혁 즉, ‘의학전문대학원제’에 대한 아쉬움을 피력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지난 16일 허내과 인근에서 만난 허 명예교수는 “이번에 책을 발간하면서 느낀 것은 의학전문대학원제도를 추진하면서 갖고 있던 내 자신의 생각과 또 당시의 상황들이 변하지 않고 그대로인 것 같다”며 무수한 오해만 받으며 정작 이루지 못한 ‘의학교육 개혁’에 대해 깊은 아쉬움을 나타냈다.

허 명예교수는 지난 2002년 정년퇴임후 연세대 인근인 신촌에 허내과의원을 개원하고 진료에 매진하고 있다. 최근에는 하루 2-3 시간씩 일주일간 2-3일 정도 환자진료에 나서는 것으로 알려졌다.

거의 팔순에 다다른 노익장에도 불구하고 아이 같은 해맑은 웃음을 지니고 있는 허 명예교수는 환자 진료나 연구논문 작성, 의학교육 등에 대한 열정은 아직도 정년퇴임 전과 다름 없어 보였다.

허 명예교수는 “너무 외람된 제안일지 모르나 젊은 의사들은 하나같이 임상의사를 원하는 것이 과연 옳은 선택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고 시야를 멀리 넓혀 다양한 진로와 자신만의 독특한 역할을 찾기 위해 더 많이 고민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전했다.

허 명예교수는 “이 문제는 십수년전 부터 필자를 포함해 의료계 많은 분들이 수없이 제기해 왔고 그 연장선상에서 의-치의학 전문대학원 학제와 미국식 석-박사복합학위과정(MD-phD 프로그램)이 어렵게 도입되었다”며 “하지만 10여년이 지난 지금 제대로 시행해 보지 못하고 별다는 성과를 못 거둔채 다시 의과대학 체제로 회귀하고 있어 매우 안타깝다.”고 말했다.

허 명예교수는 “다만 최근에 국내 몇몇 대학(서울치대, 동국의대, 제주의대)들이 7년 과정의 학-석사복합학위과정(학부 3년, 대학원 4년)을 새로 도입해 제도화한 것은 매우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앞으로 한국 의료계가 세계를 선도하고 의학이 국가경쟁력을 높이는 첨단과학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의학교육이 미래지향적인 방향으로 다양하게 개혁해야 된다고 믿는다.”고 덧붙였다.

허 명예교수는 “자연과학 계열에서 가장 우수한 학생들이 모이는 의과대학들이 오직 임상의사 만을 양성한다면 그들이 앞으로 설 자리도 없을 뿐 더러 21세기의 꽃인 첨단 의생명과학을 글로벌 수준으로 발전시키는데 큰 걸림돌이 될 것은 자명한 사실”이라고 우려했다.

허 명예교수는 “젊은 의사들 대부분이 임상의사를 선호하고 있고 대형병원들은 경쟁적으로 규모의 확장을 계속하고 있는터라 의료시장은 수요에 비해 과잉공급으로 생존경쟁(의료전쟁)을 벌이는 양상”이라며 “따라서 시설이나 장비, 인력 등 규모가 열악한 중소 병의원들은 설자리를 잃을 수 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허 명예교수는 “더욱이 동네 의원들은 낮은 수가에 환자까지 줄으니 경영은 더욱 어려워지고 우수한 의료자원은 그대로 방치되어 있는 실정”이라며 “이런 구조적인 문제를 개선하려면 여러가지 대책이 필요하겠지만 우선 의료전달체계를 정상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허 명예교수는 “전 의료계가 국민건강증진에 이바지 하면서 경쟁력있는 발전을 꾀하자면 어떤 방향성을 가져야할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실천적인 노력을 기울이는데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며 “의료의 밝은 미래는 시간이 지나간다고 그냥 오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노력의 산물”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허 명예교수는 “‘세상(의료계)은 사람(의사)이 변화시키고, 사람은 교육(의학교육)이 변화시킨다’는 옛말이 있지 않냐”며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연구중심병원이란 새로운 창조의료정책을 도입한 것은 다행이 아닐 수 없다.”고 말했다.

허 명예교수는 “물론 연구중심병원이 도입된다고 지금 저조한 임상연구가 일거에 활성화될 일은 아니다.”라며 “그럼에도 기대감을 갖는 것은 앞으로 이 제도가 정착되면 연구중심병원들은 중증질환이나 난치성 질환 치료에 치중하면서 그동안 축적해온 높은 수준의 의료기술을 ‘MD-phD 프로그램’과 연계, 기초과학과 임상의학을 연결해주는 중개연구(translational research)를 통해 신약 및 첨단의료기기 개발과 원천의료기술 창출에 집중하고 일반환자 진료는 종합병원이나 중소병의원이 맡도록 하는데 크게 기여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안도했다.

특히 허 명예교수는 “경제 규모가 세계 10위권이 된 우리나라에서도 가까운 미래에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가 나와야 하지 않겠는가.”라며 더딘 ‘의학교육 개혁’의 현실을 꼬집었다.

허 명예교수는 “의료제도나 정책은 물론이고 의학연구나 교육에 대해서도 별 식견이 없는 제가 우리나라 의료체계나 의학연구가 어떤 길로 가야한다고 논하는 것이 대단히 주제넘고 부끄럽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고 조심스런 모습도 보였다.

허 명예교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70평생 임상의사로 살아오면서 과거나 지금이나 ‘한국의료, 이건 아니다’라는 답답함과 의학의 선진화에 대한 소신이 있었기에 지난 20여년간 평소 기회가 있을 때 마다 내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곤 했었다.”며 ‘한국의료 세계화’와 ‘의학교육 개혁’에 대한 자신의 생각이 일과성이 아님을 강조했다.

허 명예교수는 “그간 언론매체에 기고했던 내용들은 긴 세월이 지난 지금도 제 생각과 같기에 비록 같은 주장이 반복되지만 졸고들을 한데 모아 연대순으로 묶어 이번에 책을 냈다”며 “이 책이 위기에 빠진 한국 의료계와 의학 발전을 위해, 젊은 의학도들의 진로를 선택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한다”며 말을 마쳤다.

김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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