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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스 라벨 '볼레로'
모리스 라벨 '볼레로'
  • 의사신문
  • 승인 2009.08.27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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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색채로 재탄생된 스페인 무곡


라벨은 전위적인 무용가인 이다 루빈스타인으로부터 스페인풍의 무용에 쓸 음악을 위촉받는다. 그는 스페인 작곡가 파야의 몇 개의 피아노곡을 관현악으로 편곡하고자 파야에게 편지를 보냈으나 웬일인지 답장을 받지 못했다. 루빈스타인 여사와의 약속한 날짜가 점점 다가오자 그는 남의 곡을 편곡하기 위해 시간을 보내기 보다는 자신의 곡을 쓰는 것이 현명하다는 생각에 직접 작곡에 몰두하여 1928년 완성하게 된다.

`볼레로'는 당시 파리에서 유행하던 통속적인 스페인-아라비아풍의 댄스곡에서 착상을 하게 됐다. 라벨은 이 곡에서 단 하나의 테마를 사용해 이를 조금도 전개시키지 않으면서, 리듬도 변화시키지 않고, 다른 악구도 삽입하지 않은 채 전곡을 통해 같은 테마를 되풀이하면서도 조금도 청중을 지루하게 하지 않는 효과를 내고 있다. 그는 특이 악기 편성을 하여 이 주제에 여러 가지 색채를 주었는데 마치 같은 주제를 시간대별로 그린 모네의 화사한 연작 그림을 보는 듯하다.

`볼레로'는 스페인의 무곡으로 1780년경 당시의 유명한 무용가 돈 세바스챤 세레소가 고안한 춤이다. 악센트가 강한 3박자를 사용하여 현악기와 캐스터네츠의 반주로 한 쌍의 남녀가 연애의 흥분을 상상시키는 농후한 몸짓을 보여주는데 남자가 여자보다 더욱 정열적으로 또한 정감이 풍부하게 춤을 춘다. 파리 오페라 극장에서 루빈스타인 발레단에 의해 초연된 이 곡은 스페인 무곡이지만 리듬이나 템포가 본래의 볼레로와는 다르다.

이 곡의 서두는 원래 볼레로의 리듬으로부터 조금 변형시킨 리듬주제 두 마디가 저음현의 피치카토 기법과 작은북이 극히 여린 피아니시모로 연주되기 시작한다. 주제는 두 도막 형식으로 악기를 바꾸면서 반복되고, 이 주제에 응답하는 듯한 형태로 또 하나의 주제가 연주된다. 이 곡은 하나의 흐름과 두 개의 주제를 반복하는 것만으로 이루어지며, 가장 작은 소리에서 가장 큰 소리로 변화하는 `크레센도'만 사용되는 특이한 작품이다. 철저히 계산된 주제반복의 독특함을 나타내면서 한 조의 주제가 동일한 리듬을 따르면서 조바꿈도 변주도 되지 않은 채 단지 악기 편성만을 바꾸면서 8번 느리게 고조되고 반복된다. 전반부는 한결같은 유니슨(unison)으로 화성을 사용하지 않지만, 절묘한 관현악법으로 지루함을 느낄 수 없는 곡으로 악곡은 그대로 진행되고 끝 두 마디에 이르러 최초로 조바꿈이 일어나 클라이맥스로 끝난다.

라벨은 프랑스 시부르에서 음악애호가인 아버지의 권고로 7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웠고 14살의 나이로 파리음악원에 입학하면서 그곳에서 포레에게 작곡을 배웠다. 이 시기에 라벨은 스승 포레와 에릭 사티에게서 큰 감화를 받았다. 졸업 후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등 이국정서가 넘치는 개성적인 작품을 발표했으나 비평가들로부터는 별로 인정을 받지 못했다. 로마상 콩쿠르에서도 4차례나 탈락하게 되지만 `물의 장난', `현악 4중주곡' 등을 발표하여 새 세대의 작곡가로서 명성을 획득하게 된다. 이 시기에는 평생을 두고 존경하게 될 클로드 드뷔시를 만나는데 드뷔시의 `목신의 오후 전주곡'을 자기 시대 최고 걸작으로 뽑을 만큼 드뷔시를 존경하게 된다. 후에 스트라빈스키에 의해 “그는 스위스 시계처럼 정밀하다”는 평을 받을 정도로 명석하고도 분석적인 구축력, 치밀하고도 미세한 객관성은 이 무렵에 완성되었다. 그의 음악적 특징은 우렁차게 소리 높여 부르는 것보다는 조용히 말을 건네는 스타일의 그의 가곡에 뚜렷하게 나타나 있다. 그의 음악 속에는 톡 쏘는 매운 풍자와 교묘한 재치를 가득 담고 있어 듣는 이로 하여금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들을만한 음반 : 앙드레 끌뤼땅스(지휘), 파리음악원 관현악단(EMI, 1961); 샤를 뮌슈(지휘), 파리 관현악단(EMI, 1968); 에른스트 앙세르메(지휘), 스위스 로망드오케스트라(Decca, 1963); 장 마르티농(지휘), 프랑스 국립방송관현악단(EMI, 1974); 피에르 블레즈(지휘), 베를린 필(DG, 1993) 
  

오재원〈한양대 구리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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