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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정부는 무정부 상태를 원하는 것인가
[시론] 정부는 무정부 상태를 원하는 것인가
  • 의사신문
  • 승인 2015.01.16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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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무정부 상태를 원하는 것인가 (규제와 사회 질서를 혼동하면 안 돼 )

이명진 의사평론가 의료윤리연구회 초대회장 명이비인후과의원장

최근 사회 질서를 무너트리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위협하는 무개념의 시도가 정부에 의해 진행되고 있다. 법과 질서를 지키고 국민의 생명을 지켜야 할 정부가 사회 질서를 혼란시키는 일에 앞장서고 있는 것을 보면 어이가 없는 상황이다. 현 정부는 무정부 상태를 추구하는 것인가? 정부가 규제 개혁 항목에 한의사들에게 현대의학 기기를 사용 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내놓은 일명 규제 기요틴 발상을 보며 느끼는 생각이다. 잘못된 규제는 과감히 푸는 것이 정도이다. 하지만 사회질서를 규제라고 혼동하여 선무당처럼 날뛰어서는 안 될 것이다.

정부가 내놓은 규제 기요틴 발상은 사회질서인 국가 면허 제도를 무너뜨릴 뿐 아니라 학문적으로나 윤리적으로 심각한 문제점들을 안고 있다.

첫째, 한방과 현대의학에 대한 정확한 학문적 이해가 부족해 보인다.

한마디로 개념정리가 돼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현대의학은 근거중심의 의학(evidence-based medicine) 즉, 과학적 증거를 바탕으로 치료를 하는 의학이고, 한방은 과학적 근거와는 거리가 있는 기와 혈·체질 등의 추상적 개념을 치료의 근거로 삼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병을 진단하는 방법과 개념부터가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현대 의료기기는 과학에 근거한 진단 기기이지만 한의학은 과학에 근거한 학문이 아니다.

두 번째로 현대의학이 담당하고 있는 의료분야를 한방이 모두 커버 할 수 없다는 점이다.

한방치료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 하지만 이런 한방이 할 수 없는 분야에 대해 무리한 진료영역확대를 시도 하려고 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가 입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대표적인 것이 세균에 대한 감염을 한방에서는 해결하지 못 한다는 점이다. 더 중요한 차이점은 임상 경험의 유무이다. 실제로 한 번도 아이를 분만해보지도 않았고 아이가 분만되는 과정도 보지 못한 한의사들이 한방부인과 진료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방이 할 수 있는 영역과 현대의학이 담당해야 할 영역이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일면이다.

셋째, 입법의도에 대한 순수성이 의심되는 부분이다.

한방의 진단과 치료에 어울리지 않는 현대 진단기기에 집중된 이번 규제 완화 의도를 볼 때 어느 특정 집단의 로비를 받고 있는 것은 아닌지 분명한 입장을 밝혀야 할 것이다. 실제로 CT나 초음파 진단기기 등은 병을 진단하는 단계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수술을 전제로 시행하는 경우가 많은데 수술 적 치료가 전무한 한방치료에 무슨 비용효과가 있는 것인지 궁금하다.

게다가 CT나 초음파의 판독은 영상의학을 전공한 전문의도 판독이 쉽지 않은 케이스가 허다한데 찍기만 하면 진단이 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현대의학에 대한 무지의 결과인지 특정집단의 이익을 대변하려는 의도인지 국민들이 납득하도록 해명해야 할 부분이다.

넷째, 잘못된 법을 만들게 되면 사회질서와 국민의 생명이 위협받게 된다는 점이다.

만약 2종 보통 면허를 가진 운전자에게 고도의 지식과 기술이 필요로 하는 특수차량을 운전하도록 허용하는 법을 만든다고 하면 국민이 납득할 수 있을지 묻고 싶다. 현대의학에 대한 교육을 받지 않은 한의사에게 현대 의료기기를 사용하게 한다는 것은 보통 운전 면허자에게 특수 차량을 운전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대해 전혀 생각을 하지 않은 계획이다. 대한민국의 면허질서와 국민의 안전은 극심한 혼란에 빠지게 되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이 입게 될 것 같다.

마지막으로 정확한 전문지식이 없는 사람에게 현대 의료기기 사용을 맡긴다는 것은 의료윤리에 정면으로 반하는 행위이다.

의료 윤리 4원칙(자율성의 원칙, 선행의 원칙, 악행금지의 원칙, 정의의 원칙) 중에서 환자에게 해악을 끼치지 말라는 악행금지의 원칙에 해당 된다. 악행금지의 원칙은 전문지식이 결여 되거나 술기가 미숙하여 환자에게 경제적으로나 신체적으로 해를 끼치는 경우를 말하는 것이다.

아스베리우스 프리취는 <죄를 범하는 의사(The Sinning Doctor)>에서 의사의 도덕적 죄악 중에서 가장 중한 것이 "의술에 완전한 능력을 지니지 못 한 채 의료 행위를 하는 것"이라고 했다. 환자를 위해 "의사들은 독서 수준을 넘어서는 치료 능력을 갖춰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더듬거리는 박애주의자보다는 능력 있는 악당에게 수술을 맡기겠다"고 까지 이야기하고 있다. 의사가 전문술기와 지식이 겸비돼야만 한다는 것을 강조한 말이다.

한의과 대학 교육과정에는 현대 의료기기에 대한 교육이 없다는 점을 알아야 할 것이다. 어깨 넘어 배운 기술과 독서 수준으로 배운 지식으로 과학적 현대의료기기를 사용하려고 한다면 환자들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주고 국민의 건강은 위협받게 된다. 정확한 과학적 의학 지식 없는 한의사가 현대 의료기기를 사용함으로써 자원은 낭비되며, 그에 대한 비용은 결국 국민 호주머니에서 나올 수 밖 에 없다. 이런 행위는 사회질서를 어지럽히는 죄악이다.

모든 문제점들을 살펴볼 때 국민의 입장에서 바라는 것은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생각해서 국정을 운영해 주었으면 한다.

과학적 현대의학의 지식이 없는 사람에게 현대 의료기기 사용을 허락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악행을 저지르는 비윤리적 행위이고 국민에 대한 죄악이다.

사회질서를 지키고 국민의 생명을 지켜야 할 정부가 의욕만 앞서서 사회질서를 무너뜨리고 있다. 이런 식으로 밀고 간다는 것은 정부가 할 일을 망각하고 무정부 상태로 가자는 말과 다름이 없어 보인다. 규제와 사회 질서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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