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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을미년 신년특집 기념수필 - 내려놓을 때는 바로 지금이다
■2015년 을미년 신년특집 기념수필 - 내려놓을 때는 바로 지금이다
  • 의사신문
  • 승인 2015.01.05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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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종 <의정부 김연종내과의원장>

내려놓을 시점은 제각각…간단한 결론에 홀가분

우리는 삶이라는
무거운 짐을 지고 묵묵히 길을 간다.
등에 진 짐을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세상의 규범과 관습을 잘 따르며
사막을 건너가는 한 마리 낙타이다.

울타리 밖 세상과 소통을 바라며
자리를 박차고 떠난다손 치더라도
결국 진료실이라는 사파리에 갇혀지내는
한 마리 사자일지도 모른다.

내려놓는다는 것은
더이상 욕심부리지 말고 주어진 여건에
감사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뜻일것이다
많은 대화가 오간 후에 내린 결론은
의외로 간단했다.

내려놓아야 할 때는 바로 지금이다.

김연종 의정부 김연종내과의원장
해리슨을 읽는 의사와 하루키를 읽는 의사와 정글만리를 읽는 의사는 어떻게 다를까. 의학 저널을 읽는 의사와 시집을 읽는 의사는 어떤 생각의 차이가 있을까. 그런 단순한 호기심만으로도 모임에 참석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같은 지역에서 개원하고 있는 의사들이 시를 읽고 감회를 토로하는 자리인데 2년 전부터 이 모임에 참석하고 있다. 나는 의정부에 개원하고 있지만 두 번째 시집을 상재하고 지인들에게 전달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참석하게 되었다.

노원구의사회 시 모임이 바로 그것이다. 아직까지 모임에 대한 정식 명칭도 없지만 이미 십 여 년의 깊은 전통을 자랑한다. 시에 대한 깊이 읽기는 물론이요, 시를 감상하고 평하는 자세가 문학평론가 못지않게 진지하다. 다른 모임과의 중복을 피하기 위해 매달 첫 번째 월요일을 모임 날짜로 택한 것만 봐도 그렇다.

지난 모임도 특별한 것은 없었다. 반갑게 악수를 했고 한해를 반추하며 건강을 기원하는 덕담을 건넨 후 언제나처럼 시집을 계속 읽었다.

“우리가 인생에서 내려놓아야 할 때는 과연 언제일까?”

이정록 시인의 시 `의자'를 감상하다가 누군가의 입에서 문득 흘러나온, 혼잣말 같은 물음이었다. 모두 다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어선지 썩 가슴에 와 닿지는 않은 것 같았다. 한참을 머뭇거리다 누군가 말했다. 백세 시대에 최소한 80은 되어야 하지 않겠냐고. 평생 내려놓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답한 사람도 있다.

결국 내려놓아야 할 때가 언제인지에 대한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서로의 얼굴만 바라보았다. 그러다 문득 짐을 진 채로 죽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기 전에 이루어야 할 자신과의 약속, 버킷리스트에 대한 이야기도 그렇게 해서 자연스레 나왔으리라. 하지만 그저 하루라도 진료실을 벗어나 소박한 여행을 하고 싶다는 답변이 주를 이루었다. 아직 생각해 보지 않았다는 사람도 있었다. 어쩌면 7080 세대에겐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삶이라는 무거운 짐을 지고 묵묵히 길을 간다. 등에 진 짐을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세상의 규범과 관습을 잘 따르며 사막을 건너가는 한 마리 낙타이다. 울타리 밖 세상과 소통을 바라며 자리를 박차고 떠난다손 치더라도 결국 진료실이라는 사파리에 갇혀 지내는 한 마리 사자일지도 모른다.

진정한 자유를 찾아 내가 내 자신의 주인이 된다는 것은 내가 설정한 가치를 따를 때만 가능한 것이다. 그제야 비로소 스스로 자기 삶의 무게와 중심을 잡을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주어진 삶을 긍정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규칙을 정하고 거기에 따라가야 한다. 마치 어린 아이처럼.

니체가 이야기한 창조적 긍정까지는 아닐지라도 잃어버린 나를 찾기 위해서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여야 한다. “삶을 무거운 짐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놀이로 받아들여라” 는 니체의 말이 경고등처럼 깜박거렸다.

인생에서 온전한 행복을 누리려면 세 가지를 모두 갖춰져야 한다고 한다. 그것은 바로 시간, 돈, 그리고 건강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세 가지 조건을 모두 다 갖춘 시기는 인생에서 찾아볼 수 없다. 젊어서 건강할 때는 인생을 즐길만한 돈이 없다. 중년의 시기에 어느 정도 돈이 있고 웬만한 건강이 있을지라도 그것을 즐길만한 시간이 부족하다. 비로소 나이 들어 돈이 있고 시간은 넘쳐나지만 그에 합당한 건강을 유지할 수 없다.

시간과 돈과 건강을 모두 갖춘 시기는 인생에서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 세 가지를 모두 갖추었다손 치더라도 절제하지 못한 젊은 나이라면 방탕하기 쉬울 것이다. 결국 적절히 이 세 가지를 모두 갖추기란 애당초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마치 우리들이 내려놓아야 할 때를 모르는 것처럼.


내려놓는다는 것은 더 이상 욕심 부리지 말고 주어진 여건에 감사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뜻일 것이다. 많은 대화가 오간 후에 내린 결론은 의외로 간단했다. 내려놓아야할 때는 바로 지금이다. 명쾌한 결론에 우리는 덮어 두었던 시를 마저 읽었다.

싸우지 말고 살아라/ 결혼 하고 애 낳는 게 별거냐/ 그늘 좋고 풍경 좋은데다가/ 의자 몇 개 내놓는 거여

김연종 <의정부 김연종내과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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