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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론 - 왜 인문학, 인문의학인가?
총 론 - 왜 인문학, 인문의학인가?
  • 의사신문
  • 승인 2014.12.01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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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주 <서울대 의대 인문의학교실 교수>

특집 : ■의학과 인문학의 만남 - 우리나라 인문의학, 어디까지 왔나?

김옥주 교수
의사는 과학자이자, 고통받는 인간의 '치유자'

의(醫, medicine)는 과학(science)이자 치유의 예술(healing art)입니다. 의사는 과학자이자 치유자입니다. 현대 의과학에 근거를 두고 누구에게나 적용할 수 있는 검증된 의료를 시행한다는 점에서 의사는 과학자입니다. 그러나 고통받는 인간을 대하고 인간을 치유한다는 점에서 의사는 다른 과학자들과 달리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와 성찰이 필요한 존재입니다.

사람을 다루는 의학은 인간을 궁구하는 인문학과 본질적으로 통합니다. 인문학(`Humanities')은 기원전 55년 키케로가 처음 사용한 `Humanitas'에 어원을 둔 말로서 인간임, 인간됨, 인간다움을 다루는 학문입니다. 좁은 의미로는 문학, 철학, 역사, 예술 일반, 종교 등을 말하며 넓은 의미로는 자연과학과 대비되는 학문으로 사회과학 전반을 포함합니다. 현대 의학은 인간의 출생부터 질병과 노화, 죽음에 이르기까지 깊이 관여합니다. 인간이면 누구나 피할 수 없는 이러한 생로병사의 문제는 문학, 철학, 예술과 같은 인문학의 주제였습니다.

의사들의 실천도 인문학과 깊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의사들은 종종 취약하고 힘든 가운데에 있는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사람이 병을 앓으면 세상에 대한 이해가 달라집니다. 자신을 돌아보게 되며 인생관이 달라지며 성숙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병의 경험은 그만큼 사람의 실존에 큰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의사들 자신의 경험 자체가 인문학적인 활동입니다. 환자의 삶과 고통에 깊이 공감하고 같이 경험하며, 그 눈을 통해 세상을 다시 보게 되는 인문학적 실천으로서 의료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21세기 사회는 `좋은 의사'를 요구합니다. 과학적 의학은 질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데에는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으나 환자의 전인적 치료에서 멀어져가는 현대의학에 대한 불만과 불신이 제기되었고 사회는 고통받는 환자에 공감하는 `좋은 의사'를 요구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떻습니까? 의사와 환자와의 관계는 분절화되고, 과도한 과학주의, 전문화의 우월주의, 자연현상에 대한 부정적 중재활동, 의료기술 만능주의, 소비자주의, 이윤추구의 의료가 전개되고 있습니다. 또한 급속한 의료기술의 변화가 인류의 의식과 가치 변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낙태, 인간복제, 안락사, 뇌사, 장기이식 등 생명의료윤리의 문제는 날로 쌓여가고 있습니다.

의과대학생들은 어린 나이에 인문학을 거의 배우지 않고 과학일변도로 치우쳐 교육받은 상태에서 의학공부를 시작합니다. 의과대학교육에서도 학생들은 엄청난 양의 지식을 주입받으며 경쟁에 짓눌려 스트레스가 많은 상태에서 교육을 받습니다. 이러한 현실에서 어떻게 좋은 의사, 참된 치유자를 양성할 것인가가 우리 앞에 놓인 과제입니다.

21세기에 세계적으로 의학교육자들은 인간과 질병과 의학과 의업에 대한 통찰을 주는 인문의학 교육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의과대학장협의회(2007)의 정의에 의하면 `의료인문학은 인간본질에 대한 탐구와 타인에 대한 이해와 관계에 기초하여 인간의 건강과 질병을 생물학적, 심리적, 사회문화적 관점에서 탐구하는 학문분야'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의학교육에서 인문의학 교육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인문의학에 대한 다양한 정의가 있지만 `인문의학은 의학을 이해하고 이를 실천하는 의료활동에 있어 도움이 되도록 의학교육과 의료에 역사, 철학, 윤리학, 문학 등의 인문학을 적용하여 간학제적(interdisciplinary)으로 포괄하는 개념'으로 볼 수 있습니다.


과학일변도 전문화된 의료교육에 `인문의학' 본질 잃어
사람에 대한 통찰과 이해 깊어야 훌륭한 의사로 거듭나


인문의학을 왜 교육해야 할까요? 인문의학을 가르쳐야 하는 이유는 최소한 아래 네 가지를 들 수 있습니다.

첫째, 인문의학은 의학과 질병과 의사들의 역사적 맥락에 대해 알게 하여 의사들로 하여금 의업(醫業)의 위대한 전통을 계승하게 합니다. 의(醫)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와 마찬가지로 어리석음과 비참하고 잔혹함이 점철되어 있으나, 이를 뚫고 이루어낸 업적과 승리를 계승하고 후대에 물려줄 책임이 우리 모두에게 있습니다.

의사학(醫史學, history of medicine)은 인류의 질병의 역사, 의학의 역사, 병원과 의료제도의 역사, 의학교육과 의사의 역사 등으로 나눌 수 있는데, 이를 통해 원시시대부터 현재까지 질병이 어떤 인류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이에 의학과 사회는 어떻게 대응했는지, 고대로부터 의학과 의사는 어떻게 발전되어 왔는지, 현대의 의료제도는 어떠한 과정을 통해 이루어졌는지에 대한 통찰을 갖게 됩니다. 과거를 알고 현재를 파악하여 미래의 지향을 밝혀주는 의사학(醫史學) 교육은 결코 과거 지향적이어서는 안되겠습니다.

둘째, 인문의학은 의사들에게 의료전문직업성(medical professionalism)을 확립하고 체화하게 합니다. 사람의 질병을 치유하는 의사는 고대로부터 독자적인 윤리를 가진 전문직이었습니다. 21세기의 의사는 사회구성원의 질병치유와 건강유지를 위한 고도의 전문화된 지식과 기술을 갖고 있는 의료전문직(medical professional)으로서, 윤리적으로나 실천적으로 높은 수준의 직업적 표준을 자율적으로 관리하는 직업입니다.

의철학, 의료윤리를 포함하는 인문의학 교육을 통해 의학의 가치와 윤리를 궁구하며 사회로부터 받는 신뢰와 배타적 특권을 기반으로 하여 환자와 사회에 대한 책무가 있는 의료전문직업성(medical professionalism)을 체화하도록 교육해야할 책임이 있습니다.

셋째, 인문의학은 환자를 공감하는 의사로 성장하도록 해 줍니다. 문학과 의학, 서사의학(narrative medicine)을 통해 의사는 환자와 질병 사이에 서서 환자들의 다양한 실존적 경험을 간접적으로 하게 됩니다. 어린 아기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찾아오는 질병, 그 질병을 겪는 고통받는 존재인 환자 - 의사들은 늘 고통을 겪는 환자 앞에서 질병과 환자의 사이에서 환자와 더불어 질병과 싸우는 사람들입니다. 그 가까이서 고통을 공감하고 환자와 질병 사이에 서서 질병에 대항하는 존재인 것입니다.

스스로는 직접 겪지 않은 환자의 고통을 환자보다 더 많이 알고 그 문제에 접근해서 그 문제를 해결해 주어야 하는 모순 속에서 존재하는 것이 의사입니다. 이러한 그 모순을 극복하게 하는 것이 바로 의사의 공감능력입니다. 이를 통해 의사는 자신이 가진 근본적인 한계를 넘어서는 존재가 되고 진정 환자의 고통을 해결해 나갈 수 있는 존재가 됩니다. `질병에의 공감이 아니라 고통에 공감'하는 의사가 되는 것입니다.

넷째, 인문의학을 통해 의사는 전인적인 치유를 하는 치유자가 됩니다. 사람을 치유하는 의사는 사람들의 육체뿐 아니라 마음과 영혼을 마주하게 됩니다. 우리 사회는 환자의 신체적 요구 뿐 아니라 감성적인 요구에 대해서도 민감하게 대응하는 의사를 필요로 합니다. 모든 의사들에게 사람은 병이 나아야하는 존재일 뿐 아니라, 느끼고 고통받고 이해하고 생각하고 상황에 대처하는 존재로 대해져야합니다.

인문의학은 환자를 질병을 가진 존재를 넘어 전체적인 인간으로 파악하고, 그들의 마음과 감정과 정신과 그들을 둘러싼 사회적 맥락을 중시하도록 교육합니다. 이렇듯 인문의학이 사람에 대한 통찰과 이해를 깊게 해 주기에, 이를 통해서 의사는 비로소 훌륭한 치유자가 됩니다.

왜 인문학, 인문의학인가? 인문의학은 인간의 조건, 고통과 인격, 인간의 상호책임에 대한 통찰을 주고, 의학과 의사에 대한 역사적 관점을 제공하며 자기반성과 성찰, 공감을 가져다줍니다.

질병이 환자와 사회, 의료에게 미치는 심대한 영향을 탐구하고 이해하게 하며 의미를 파악하게 해 줍니다. 인간의 주관적 경험에 대한 성찰과 이해를 하게 하는 인문의학은 의과학의 영역과는 다른, 치료술로서의 의(醫)의 본질적이고 필수적인 요소가 됩니다.

김옥주 <서울대 의대 인문의학교실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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