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의학 창'으로서의 문학
'인문의학 창'으로서의 문학
  • 의사신문
  • 승인 2014.12.01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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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홍관 <국립암센터 의사, 시인>

서홍관 교수
문학, 의사 자신에 대한 반성적 사유의 공간

1. 문학을 통한 의학의 이해

문학 작품에 질병이나 죽음, 또는 의사나 병원이 등장하는 경우는 매우 흔하다. 인간의 삶에 있어서 질병이나 죽음이 그만큼 중요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문학 작품 속에 환자 또는 의사로 등장하는 인물들은 환자에 대한 이해 뿐 아니라 의사들이 하는 의술활동을 심층적으로 이해하게 한다.

문학 작품들은 의사들의 사회적 책임이 무엇인지, 사회에서 의학의 위치는 무엇인지, 시대에 따라 또는 각기 다른 사회문화적 배경에 따라 의사들의 세계는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 우리가 지금 표준 치료로 생각하는 질병의 치료가 사회문화적으로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를 생각하게 해준다. 크로닌의 `성채',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 까뮈의 `페스트', 토마스만의 `마의 산', 체홉의 `6병동' 등이 좋은 공부 재료가 될 것이다.

A.J. 크로닌의 〈성채〉는 의사이자 소설가였던 저자의 자전적 소설이다. 때 묻지 않은 젊은 의사인 주인공이 탄광촌에서 의사로 일하면서 부조리한 세상과 맞서는 이야기는 박진감 넘친다. 주인공이 후에 런던에서 개원의가 되면서 세속적인 의사로 타락하는 모습은 우리들이 흔히 겪게 되는 유혹과 함정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할 기회를 준다.

솔제니친의 〈암병동〉은 그가 유형생활 중 3년간 타슈켄트의 한 병원에 입원한 체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이라고 하는데 수십 년 전 러시아의 병원에서 일어났던 일들이 지금 우리나라의 병원에서 벌어지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깨닫고 놀라움을 금치 못할 것이다.

의사가 등장하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소설로는 전광용의 〈꺼삐딴리〉가 있다. 주인공 이인국은 일제시대에는 일본인에 붙고, 러시아가 점령하자 러시아에 붙고, 나중에 남한에 내려와서는 미국인들과 가까이 하면서 철저히 출세주의와 이기주의에 사로 잡혀 사는 인간으로 묘사되어 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에서는 의사인 조백헌원장이 나환자들의 소록도에 원장으로 부임해서 나환자들의 천국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의 그의 헌신과 환자들과의 갈등을 그리고 있다.

특히 의사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소설에서 그 의사의 삶이나 의업과 관련된 특별한 사건이 의사 독자 자신의 경험과 유사한 것일 때, 그 작품은 자신의 의술과 삶을 되돌아 볼 수 있는 거울을 제공한다.

 

2. 문학과 의학교육

문학은 무엇보다도 의술의 인간적 모습을 회복시키는 과정에 도움을 주었다. 인간이 피할 수 없는 질병과 고통을 그리는 문학 작품을 접할 때, 의학도들은 환자들의 삶에 대해, 생명에 대해 생생하게 느끼게 된다.

즉, 인간으로서의 환자가 아니라 질병을 가진 환자로서 대할 때 사라졌던 “사람”의 고통과 아픔이 문학작품에서 펼쳐지는 환자의 인생 이야기를 통해 되살아나는 것이다.

문학은 임상에서 도덕적 상상력을 키워주고 환자와의 적절한 의사소통을 훈련시킬 뿐 아니라, 의사들 자신에 대한 반성적 지식을 갖게 한다. 문학 작품에 투영된 다양한 의사들의 모습을 들여다봄으로써 의사들은 개인으로서 뿐 아니라 전문집단으로서 의사의 모습, 역할, 사회와의 관계에 대해 거리를 두고 바라볼 수 있는 반성적 사유의 공간을 갖게 되는 것이다.

1994년의 한 조사에 따르면 미국 의과대학의 1/3의 수가 문학을 의과대학생들에게 교육시키고 있었는데, 이 숫자는 계속 증가했으며 전공의와 임상의사들에게도 문학 및 글쓰기 강좌가 확대되었다. 하버드 의과대학에서는 글쓰기 과목이 선택과목으로 개설되었다.

문학 전공자인 교수가 지도하는 글쓰기 수업은 특별히 의과학자 및 의사가 될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강도 높은 글쓰기 훈련을 포함한다. 이 수업은 사회의 지도자가 될 의료전문인들이 사회에 올바른 영향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제대로 글을 쓸 줄 아는 전문인들이 배출되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되었다.

또한 환자들의 투병기 읽기는 의과대학생들에게 환자의 입장에서 질병을 바라보는 생생한 기회를 준다. 한 의대생은 투병기를 읽은 소감을 이렇게 적었다.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의대에 진학하고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내가 왜 의대에 진학 했는가에 대한 정확한 답을 구하지 못했다.

교과서적인 이야기로 대답할 수는 있지만 마음의 동의가 없는 무미건조한 답들이었다. 그래서 꽤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고민했고 구체적이지는 않더라도 막연하나마 답을 찾아왔다. 투병기를 읽고나서 내 느낌은 의사가 환자의 보호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투병기를 통한 공감이야말로 좋은 의사가 되라는 교수들의 강의보다 더 효과적이고 진실된 것이다.


문학작품 통해 의사-환자 관계 넘어 인생 이야기 공감
글쓰기, 인생·생명에 대한 깊이있는 성찰 기회 갖게 돼


3. 의사의 글쓰기

환자를 대하는 의사는 환자와 질병 사이에 서서 다양한 경험을 간접적으로 하게 된다. 또한 늘 가까이서 삶과 죽음, 고통을 공감하고 경험하게 된다. 의사들 자신의 의학적 경험 자체가 문학활동의 하나가 될 수 있다. 의사로서의 경험은 환자의 삶과 고통에 깊이 공감하고 같이 경험하며, 그 눈을 통해 세상을 다시 보게 되는 문학적 실천으로서 의료의 측면이 있다.

환자들에 대한 글을 쓰는 작업은 임상적 상상력과 환자들이 고통스러워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지식을 얻게 하는 방법을 제공해 준다. 의사들이 쓴 문학작품은 독자들로 하여금 의술과 환자와의 관계, 의술과 의사 자신들과의 관계를 성찰할 기회를 준다.

의사가 문학작품을 직접 쓴 예는 많다. 의사로서 소설 창작 활동을 한 사람들만 해도 해외에는 러시아 단편소설의 정수를 보여준 안톤 체호프를 비롯해서 한스 카롯사, 서머셋 모옴, A. J. 크로닌, 로빈 쿡, 마이클 크라이튼 등이 있으며 홈즈를 창조한 아서 코난도일은 질병의 원인을 찾아내는 의대교수를 홈즈의 모델로 삼았다고 하니 의학이 추리소설의 영역을 확장하는데 기여한 셈이다.

국내에도 시인과 소설가로 등단한 의사들이 부지기수이며, 최근 의사시인협회, 의사수필가협회 등이 만들어져서 활발하게 작품집을 내고 있다. 의사들은 이제 창작활동을 통해 문학의 한 분야를 넓혀가고 있는 셈이다.

 

4. 글쓰기의 치유 효과

글쓰기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는 지난 10여년간 세계 곳곳에서 수행되었다. 글쓰기는 일반적으로 건강 향상에 대해 좋은 효과가 있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구체적인 연구들에 의하면 죄수, 의과대학생, 범죄 피해자들, 관절염 및 만성 통증으로 고생하는 환자들, 실직자들, 첫 아기를 출산한 산모들에서 글쓰기는 건강과 행동에 좋은 영향을 미친다고 보고되었다. 글쓰기는 면역기능을 강화시켜주고, 병원 방문 횟수를 경감시키며, 관절염 환자들의 고통을 경감시키거나 약 복용을 줄이며, 천식환자들의 폐기능을 향상시킨다고 보고되었다. 또한 학생들의 성적이 향상되는 효과와 해고 이후 다시 복직할 확률도 더 높다고 한다.

여러 연구의 공통적인 보고는 특히 자신이 겪었던 어려웠던 경험이나 상처가 되는 감정적인 경험을 글로 표현하는 것은 육체적 건강에 유의미하고 지속적이며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글쓰기의 치료효과에 대한 최근의 한 무작위 연구는 천식 환자와 류마치스 관절염을 앓고 있는 환자 중 실험참여자에게는 환자들이 겪었던 일 중 가장 스트레스가 심했던 경험에 대해 매주 3일 동안 연속적으로 20분씩 쓰게 했고, 대조군에게는 그 날의 계획에 대해 쓰도록 했다. 실험참여자들은 대조군에 비해 4개월간에 걸쳐 임상적으로 명백한 증상의 감소가 있었다.

 

5. 우리나라에서의 문학과 의학의 접목 가능성

의사는 예로부터 고귀한 인간의 생명을 다루기 때문에 한 인간으로서 뿐 아니라 직업인으로서도 인생과 생명에 대한 깊이 있는 경험과 성찰을 할 기회를 갖게 된다. 의사들이 이러한 경험과 성찰을 살려 시, 소설, 수필 등의 문학 행위를 통해 표현하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대한의사협회에서는 의사들의 문학 활동을 장려하자는 취지에서 의사 문학상을 제정하여 2002년 이후 매 3년마다 한번씩 돌아오는 의협 종합학술대회에서 시상해왔다.

문학의학학회가 대한의사협회 산하에 만들어져 활동을 하고 있으며, 학회지인 문학과 의학을 발간하고 있다. 이 학회는 의사만이 아니고 치과의사 약사들까지 참여하고 있다.

의학이 물건이나 짐승을 다룬다면 우리가 인문학을 이유는 많이 줄어들겠지만 우리 의학은 인간을 대상으로 존재한다. 따라서 인문학에 대한 탐구는 우리가 멈출 수 없으며, 그중 문학은 가장 피부에 닿는 인문학이 될 것이다.

서홍관 <국립암센터 의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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