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0 13:08 (토)
인문학적 사고가 의학의 발전을 부른다
인문학적 사고가 의학의 발전을 부른다
  • 의사신문
  • 승인 2014.12.01 10:4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예병일 <연세대 원주의대 의학교육학과 교수>

예병일 교수
인문학에서 모든 학문의 뿌리 찾을 수 있어

우리나라 고등학교에서 문과와 이과를 구분하다 보니 이과적 사고에 충실한 의학 전공자들은 인문학과 사회학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19세기에 위생운동이 일어날 때부터 개인이 질병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해서는 개인이 건강을 유지하는 것과 함께 그 개인이 속해 있는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가 중요하다는 점을 익히 알고 있었다.

런던에서 콜레라가 유행할 때 스노가 식수의 중요성을 간파하여 `공중 보건학의 아버지'라는 별명을 가지게 된 것은 사회의학이 이미 의학의 주류 속으로 편입되어 들어오기 시작했음을 보여 준다. 문과에 속하는 인문학과 사회학 중 사회학은, 이미 한 세기 반 전부터 의학의 한 분야로 자리잡은 것이다.

인문학과 사회학은 (과학과 구별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기는 하지만) 분명히 다른 분야다. 정치, 경제, 문화, 법, 교육 등이 사회학에 속하며, 문학, 역사, 철학, 윤리, 어학 등이 인문학에 속한다.

의학의 역사에서 사회학적 내용은 독립된 과목으로 존재하지는 않았다 해도 1910년대에 플렉스너에 의한 의학교육개혁이 일어날 때부터 의학이라는 학문 속에 편입되어 들어왔지만 인문학은 `세포병리학의 아버지' 피르호처럼 취미삼아 의학역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이 있기는 해도 의학이라는 학문속에 들어오지는 못했다. 단지 1948년에 세계의사협회에서 13개 문장으로 구성된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발표하면서부터 윤리에 대한 관심이 커지기 시작하며 부분적으로 서서히 의학교육에 도입되기 시작했을 뿐이다.

과학적 사고에 충실하신 분들은 문학, 역사, 철학을 공부하는 것이 의학에 도대체 무슨 도움이 되느냐고 반문하실 수도 있다. 의학이 발전하여 과거에는 전혀 경험할 수 없던, 윤리적 판단이 필요한 상황이 수시로 만들어지는 현대의학에서 윤리마저 필요치 않다고 하실 분은 없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면 과학이라는 학문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학문 발전 과정에서 몇몇 앞서가는 학자들이 실험과 관찰이 중시되는 분야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이것이 발전하면서 후대인들이 이러한 학문에 대해 `과학(science)'이라는 이름을 붙였을 뿐이다. 17세기에 영국에서 왕립협회(Royal Society)를 창립하여 과학적 관심사를 공유하던 보일, 렌, 후크, 뉴턴 등은 자신들의 관심분야를 자연철학(natural philosophy)라 했다.


과학, 사회인문학과 별개 아닌 실험·관찰이 강조된 학문
히포크라테스 4체액설 등 철학적 접근 이후 과학으로 증명


오늘날 사회과학, 인문과학이라는 용어에서 볼 수 있듯이 과학은 사회학, 인문학과 독립된 분야가 아니라 실험과 관찰이라는 태도가 강조되는 새 학문 분야에 대해 붙인 이름이고, 이러한 태도는 학문 발전에 큰 기여를 했으며, 지금은 어느 학문에서든 이와 같은 태도가 요구되고 있다. 의학도 과학적 연구방법론을 도입하면서 지난 한 세기 반동안 엄청난 발전을 했다. 그러나 과학만으로 의학이 구성되고, 발전하는 것은 아니다.

히포크라테스와 갈레노스가 주장한 4체액설은 질병의 원인이 몸 전체의 균형에 있다고 생각하게 했다. 17세기에 하비가 혈액이 순환하고 있음을 보여 주자 온 몸을 돌아다니는 혈액의 존재는 몸 전체의 생리기전에 대한 중요성을 다시 되새기게 했다.

그러나 모르가니가 몸 전체보다 이상이 생긴 장기가 질병과 직접 연관이 있다고 주장하고, 비샤가 장기 중에서도 작은 조직이 질병과 관련이 있다고 주장하자 질병의 원인은 점점 작은 곳으로 좁혀 들어가게 되었다.

때마침 한동안 답보상태에 있던 현미경이 발전하기 시작하면서 1830년대에 독일에서 식물과 동물이 세포로 구성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고, 뒤를 이어 피르호가 등장하여 눈으로 관찰하던 의학에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는 의학을 도입하여 질병 진단방법에 획기적인 전환을 이루었다. 점점 작은 것으로 들어가는 의학의 흐름은 지금도 계속되어 유전자를 지나 단일염기다형성(SNP)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이와 같은 역사의 흐름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는 다음 단계에 연구가 어느 방향으로 집중되어 갈 것인지를 예측하게 해 준다.

18세기 말, 프랑스의 라부아지에가 질량보존의 법칙을 발견할 때만 해도 그가 가진 저울로는 화학 반응에서 일어나는 반응물과 생성물 사이의 미세한 질량 차이를 측정할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었다. 그러나 20세기 초에 아인슈타인은 화학반응시 발열 또는 흡열반응이 일어나는 것은 미세한 질량의 차이가 에너지를 생성하기 때문이라 생각했고, 질량의 차이를 크게 하면 에너지가 크게 발생하는 것이 바로 원자폭탄의 원리에 이용되었다.

백 수십년간 진리로 여겨졌던 질량보존의 법칙은 엉터리 법칙이며, 아무리 과학적으로 검증된 진리라 해도 바뀔 수 있음을 역사가 보여 주고 있으며, 이는 의학적 진리도 마찬가지다. 노인을 일반 성인과 다른 관점에서 보기 시작하는 태도는 노인의학을 낳았지만 한의학에서는 서양의학보다 훨씬 앞선 시기에 노인을 일반 성인과 다른 존재로 보기 시작했다. 무슨 증거가 있어서가 아니라 인문학적 사고에 바탕을 둔 학문적 태도가 발전을 앞당기는 것이다.

의학은 인문학과는 동떨어진 별도의 학문이 아니라 인간을 중심으로 하는 인문학과 함께 하는 학문이다. 이것이 바로 의학에서 과학적, 사회학적 사유와 함께 인문학적 사유가 요구되는 이유다.

예병일 <연세대 원주의대 의학교육학과 교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