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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수필 - 병마와 악마
기념수필 - 병마와 악마
  • 의사신문
  • 승인 2014.12.01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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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애양 <강남 은혜산부인과의원장>

김애양 강남 은혜산부인과의원장
병마는 의사가 처치… 악마들은 지옥으로…

의학을 공부하면서 궁금한 것 중의 하나는 왜 인류에게 질병이 점점 많아지는가 하는 점이었다.

날로 과학이 발달하고 의학도 덩달아 진보하고 의사 숫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많아지는데 돌아다보면 주변에 아프지 않은 사람이 없기에 하는 말이다.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 희귀한 이름의 질병과 생소한 치료법이 나날이 새롭게 등장하는 것 같다. 진료실에서 바라보면 병마와 싸우느라 온갖 체력을 다 소비하는 사람 일색이다. 아프기 위해 세상에 태어난 건 아닐텐데….

이런 내 의문점을 털어놓자 어느 교수님이 웃으며 반박했다. 인구수와 인간 수명이 늘어나 언뜻 질병이 많아 보이는 것일 뿐이지 오히려 사라지고 극복된 질병이 많아졌단다.

예를 들면 얼굴에다 곰보자국을 남겼던 고약한 천연두는 잊힌 이름이 되었고 소아마비처럼 불행한 불구를 초래하던 전염병도 자취를 감추었으며 페스트도 역사에서 없어진지 오래라는 것이다. 거기에다 진단 기술이 좋아진 나머지 질병이 초기부터 잘 드러나 보이는 것일 뿐이라고 했다.

과거엔 무슨 병인지도 모른 채 그저 아파서 죽었다고 말하곤 했지만 오늘날엔 원인과 증상과 과정이 다 밝혀져 병마의 몸짓이 더 거대해 보인단 것이다. 필멸의 인간에겐 예나 지금이나 비슷한 정도의 질병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라고….

이와 비슷한 궁금증은 신문 사회면을 들여다볼 때에 다시 떠오른다. 인류는 점점 개화되는데 왜 점점 범죄가 많아지는가? 교육이 제도적으로 늘어나고 종교도 더 널리 파급되는데 왜 인간에겐 더욱 잔혹하고도 악랄한 수법의 범죄가 횡행하는 것일까?

이 또한 범죄 자체가 많아지는 게 아니라 수사기술과 언론이 발달해서 사건이 빨리 파악되고 우리에게 잘 알려지기 때문일까? 전염병이 돌 듯 모방범죄가 자꾸 늘어나는 석일까? 오늘도 차마 눈뜨고 읽기 어려운 사건들이 지면을 채우고 있다. 군대에서, 학교에서, 가정에서 폭행과 치사와 살인행위가 이어진다.

그런데 이 지독한 악행들은 구태여 신문을 읽지 않아도 진료실에 앉아서도 느낄 수가 있다.

얼마 전에 이웃 소아과 의사에게서 끔찍한 이야기를 들었다. 9살 꼬마가 급성방광염으로 내원했단다. 방광염이야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생기는 병이라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나중에야 아이에게 성폭행이 있었던 걸 알게 되었단다. 그것도 아이가 다니는 학원의 외국인 강사에게서 당했다니 이 얼마나 천인공노할 일인가 말이다.


의학발전 속 질병 지속 증가 의문…의사들 분발 요구
인면수심 사건 소식 들을 때마다 `지옥'이 꼭 있길 꿈꿔


나도 이런 엄청난 일을 겪은 아이를 직접 진료한 적이 있었다. 외음부가 가렵고 아프다고 엄마 손에 이끌려 병원에 왔는데 세균검사 결과 임질로 판명되었다.

그리고 이 불결한 세균은 새아버지에게서 옮겨온 것이 드러났다. 불과 초등학교 1학년 8살인 꼬마인데….

우리말에 인면수심(人面獸心)이라거나 짐승만도 못하단 표현이 있지만 그보다 훨씬 더 지독하게 나쁜 사람이 있다는 걸 느낄 때가 있다. 틀림없이 이 세상엔 악마가 있고 그 악마의 지배를 받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악마가 덮어 쓰인 대표적인 인물로 히틀러를 손꼽곤 한다. 그가 인간이고 우리도 인간이란 게 믿기지 않게 만든 그 사람. 인류에게 어마어마한 빚을 진 사람. 역사에 새빨간 오점을 남긴 사람. 오늘은 파블로 네루다의 시집 `질문의 책'에서 히틀러에 대한 시를 보았다.

히틀러는 지옥에서
어떤 강제노동을 할까?
그림을 벽에다 그릴까? 시체에다 그릴까?
그가 죽인 사람들의 가스를 맡을까?
자신이 태워 죽인 수많은 아이들의
재를 먹고 있을까?
아니면 죽은 이래로
깔때기로 피를 받아 마실까?
아니면 뽑아낸 금이빨들을
입에다 망치질 당하고 있을까?

그래, 화가였던 히틀러는 지옥에서 필경 시체에다 그림을 그리고 있을 게다.

그리고 치클론 가스로 죽인 희생자들의 냄새를 맡을 수밖에 없겠지. 수없이 불태워 죽인 아이들의 재를 먹어야 하고 살해한 자들의 피를 깔때기로 받아 마시며 연명하겠지.

그리고 지옥에서 히틀러는 유대인에게서 뽑아낸 금이빨들을 그 입에다 두들겨 박히고 있을 것이다.

기발한 네루다 시에 공감하며 지옥이 있다고 상상하니 기분이 한결 나아진다.

선악의 결과가 당장에 드러나질 않아 어쩐지 우리 사회에서 착한 사람은 고생만 하고 악한 사람이 훨씬 잘사는 것처럼 보이곤 하던데 사후에 지옥에서 악을 징벌한다니 얼마나 다행이냔 말이다.

그렇다면 악마는 지옥에서 벌한다고 치고 우리 의사들은 병마를 처치하기 위해 더욱 일선에서 분발해야겠다.

김애양 <강남 은혜산부인과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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