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4 17:46 (수)
서울시의사산악회, 치악산 산행기
서울시의사산악회, 치악산 산행기
  • 의사신문
  • 승인 2014.11.24 10:3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백인석 <노원 백내과의원>

백인석 노원 백내과의원장
'꿩의 보은' 상원사와 향로봉에서 가을 정취 누려

산행 전날 밤에는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야 된다는 걱정 때문에 쉽게 잠들지 못하곤 했는데, 어젯밤에는 알코올의 힘을 약간 빌어 쉽게 잠이 들 수 있었다. 다행히 제 시간에 일어나기는 했으나 얼굴이 잔뜩 부어 있다.

오늘(10월26일)은 서울시 의사산악회 가을 정기산행으로 치악산 산행이 있는 날이다. 급하게 산행 채비를 한 뒤 집을 나섰다. 며칠 전 비가 온 뒤로 아침 기온이 뚝 떨어져 날씨가 꽤 쌀쌀하다. 오늘 날씨는 아침에 안개가 많이 끼고, 낮에는 맑은 뒤, 늦은 오후부터는 비가 내린다고 한다. 매스컴에서는 설악산, 치악산을 비롯한 중부지방 유명산들의 단풍이 절정이라고 연일 난리다. 울긋불긋한 진한 단풍을 기대해 보면서 항상 가을 산행에 나설 때마다 읊어 보는 김영랑 시인의 싯구를 생각해 본다. “오메, 단풍 들겄네”

출발 전 집결지인 주차장에는 이미 많은 분들이 나와 계신다. `막 자다 일어난 사람 같다'는 핀잔을 듣고 정해진 3호 차량에 탑승한다. 버스에는 낯익은 얼굴들과 함께 다른 모임에서만 뵙던 모교 선배님들을 산행에서는 처음으로 뵐 수 있었다. 오늘은 여름의 소백산 정기산행 보다는 다소 적은 분들이 참석해 총 125명의 인원이 3대의 버스에 나눠 타고 출발한다. 출발 후 버스 창문 너머로는 안개가 여전히 끼어 있고, 고속도로 주변 산들은 아직도 단풍이 많이 들지 않아 보인다.

가는 도중에 3호차의 부조장인 유승훈 선생님의 산행 안내와 함께 조장이신 서윤석 고문님께서 퀴즈를 내셨다. 어느 산의 어떤 사찰이 가장 높은 고도에 위치하는 가를 물으셨다. 정답은 지리산의 법계사(1450m)이고, 다음으로 설악산의 봉정암(1244m), 그리고 다음이 오늘 오를 치악산의 상원사가 약 1100m 높이에 위치 한다고 하신다. 정답을 맞추신 분께는 언제 준비 하셨는지 선물까지 주셨다. 중간에 중앙고속도로 치악휴게소에 정차할 예정이었으나, 단풍철의 많은 행락객들로 인해 휴게소가 너무 번잡하여 정차 없이 통과한다.

작년 이곳 휴게소에 사람들이 너무 많아, 특히 여자화장실에, 수많은 여성분들이 남자화장실로 밀려들어오는 바람에 오히려 눈치를 보면서 용변을 보았던 기억이 난다.

치악산은 강원도 원주시와 영월군의 경계에 위치해 있는 차령산맥의 줄기로서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고, 주능선은 남북으로 뻗어 있으며, 최고봉은 비로봉(飛蘆峰)으로 높이는 1288m이다. 구룡사에서 사다리병창을 거쳐 비로봉에 이르는 북쪽 능선은 경사가 급하고 산세가 험하며, 오늘 예정되어 있는 남쪽 능선은 다소 완만한 편이다.

또한 상원사와 함께 익히 알고 있는 꿩의 보은설화가 전해 내려오는 곳이기도 하다. 올라야 할 산행코스는 비로봉의 남쪽 능선으로 성남 탐방지원센터, 상원사, 남대봉(1182m), 향로봉(1043m), 곧은재, 곧은재 탐방지원센터, 관음사로 이어지는 약 13.1km의 산행코스가 예정되어 있다.

성남 탐방지원센터에 도착한 후, 간단한 기념 촬영과 연재성 회장님의 인사 말씀, 조해석 등반대장님의 산행 설명과 진행요원의 소개가 있은 후, 오전 9시부터 산행이 시작 되었다.

산행시간은 선두 기준으로 약 5시간30분이 예상되며, 정익환 선생님과 함께 후미로 출발 하였다. 출발지 주변은 고도가 낮아서인지 주변 수목들의 단풍은 아직까지는 화려하지 않았고, 얼마 전의 태풍 때문인지 잎들이 많이 떨어져 맑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약간의 스산함이 느껴진다.

탐방지원센터 우측으로 다리를 건너 성남계곡을 따라 오르기 시작한다. 상원사까지는 약 5.2km의 거리이다. 경사가 아주 완만한 포장도로가 계속 된다. 도로 좌측에는 가을인데도 수량이 제법 되는 개울이 흐르고, 여름에 도로 양쪽으로 무성했던 녹색의 풀잎과 화사한 색깔의 꽃들은 볼 수 없다.

상원사 방문객들을 위한 주차장이 있는 곳까지 포장도로는 계속 되었고, 이를 통해 등산객을 태운 자동차들이 계속해서 올라온다. 이곳 주차장으로부터 본격적인 등산로가 시작되고 경사가 급해진다. 남대봉까지는 약 3.5km가 남았다. 계곡을 끼고 걷기도 하고 건너기도 하면서 오르다 보니, 점점 경사는 심해지고 어느덧 계곡을 벗어나 나무계단과 오르막길이 이어진다. 지치지 않은 상태에서 맑은 날씨와 약간은 부족하지만 단풍 속을 걷고 있자니 상쾌함이 아주 좋다.

고도가 높아지면서 단풍은 조금씩 짙어지고 있으나 전망이 시원하게 터지지는 않는다. 중간에서 산행하고 계시던 공준택 선생님이 격려차 후미에 합류 한다. 항상 맛있는 음식을 많이 담아 오시기 때문에 오늘도 사뭇 기대가 된다. 조금 더 올라가니 약간씩 뒤쳐져서 올라가시는 분들이 보인다. 오르막이 여름 소백산 산행 때보다는 덜 힘들어서 인지 약간 늦게 조우했으나, 소백산 산행시 맨 뒤에서 힘들어 하셨던 그 분이다.

하지만 오늘은 그때 보다는 훨씬 여유로워 보이고, 우리에게 미리 상원사에서 약 30분 정도 머물다가 가신다고 걱정 하지 말고 먼저 출발하라고 말씀을 하신다. 왜 그러시는지 영문을 몰랐으나 잠시 후 알게 되었다. 오르막을 계속 올라 상원사 바로 아래 산행로 좌측에 있는 샘터에 도착해보니 풍부한 수량과 시원함이 한여름 못지않다. 거기서 좀더 오르막을 올라 고개를 드니 눈앞이 탁 트이면서 상원사 종각이 보이고, 잠시후 상원사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치악산과 상원사에는 꿩(까치라는 말도 있음)의 보은설화가 전해져 내려온다. 이 곳을 지나가던 선비가 새끼꿩들을 잡아먹으려던 구렁이를 활로 쏘아 죽여 새끼꿩들을 구한다. 하지만 그날 밤, 죽은 구렁이의 아내에 의해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하나 낮에 구해 주었던 새끼꿩들의 부모들이 몸을 던져 범종을 울린 후 자신들은 죽고 선비를 구렁이의 아내로부터 구했다고 한다. 그 후로 원래는 단풍이 아름다워 적악산(赤岳山)으로 불리던 산을 꿩치(雉)자를 써 치악산(雉岳山)으로 바꿔 불렀고, 종이 있던 자리에 절을 세워 상원사(上院寺)라고 하였다고 한다.

또 한참 후세 사람들은 이 산을 산행할 때면 치가 떨리고 악이 받친다고 해서 치악산 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현재의 상원사는 한국전쟁 당시 불타버린 것을 대웅전, 범종각, 일주문 등을 다시 신축하였다고 한다. 절 아래에서 절벽의 끝에 세워져 있는 종각을 바라보면 탄성이 절로 나오고, 절 아래에서도 경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지금은 경내는 공사중이어서 어수선 해보이고, 높은 고도임에도 많은 수량을 자랑하던 샘은 어디론가 모습을 감추고 보이지 않는다.

물론 종각에 있는 범종은 설화 속의 종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새로 만든 종이며, 누각 한편에 설화의 내용을 담은 부조가 걸려 있다. 경내 목조의자에 앉아 아래로 펼쳐진 산과 계곡에 펼쳐진 약간은 아쉬운 단풍을 배경으로 사진도 찍고 간식을 먹은 후 산행을 다시 시작한다. 출발 전 대웅전 유리창 너머로 후미에서 만났던 선생님께서 불상을 향해 연신 절을 하고 계시는 게 보인다.

나중에 직접 들은 이야기로는 고등학생 자녀를 위해서 108배를 하셨다고 한다. 산행도 힘드실 텐데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과 함께 한편으로는 여기서 체력을 소진하고 남은 산행을 너무 힘들어 하지지 않을까 하는 후미로서의 걱정을 해본다.

일주문을 나와서 화장실을 끼고 우측으로 돌아 남대봉을 향해서 다시 출발한다. 양쪽으로 유난히 많은 조릿대가 군락을 이룬 숲속 산길을 걸어서 영원사 갈림길에 도착한다. 다시 우측 오르막길을 따라 올라 능선 바로 아래에 다다르니 숲속의 공터에서 훈련팀의 여러분들이 앉아서 무언가 기대에 찬 표정들로 후미팀을 반갑게 맞아준다. 정익환 선생님이 산 아래에서부터 선전했던 골뱅이무침을 개봉했다. 치악산 산중의 골뱅이 맛은 기가 막혔으나 입이 여럿이라 맛만 본다. 못내 아쉬었는 지 양종욱 선생님이 다음 산행에는 본인이 준비하시겠다고 한다.

이 산행기를 보신 분들은 이 사실을 모두 기억하시리라 생각되니 다음 산행에는 아마도 어마어마한 양의 골뱅이무침을 준비하셔야 될 것 같다. 능선에 오른 후 좌측으로 치악산의 또 다른 명물 아들바위와 원주 시내를 바라보면서 잠시 걸어 남대봉에 이른다. 남대봉은 여타 봉우리 꼭대기와는 달리 편평한 평지에 헬기장과 감시초소가 있다. 이곳에서 다른 후미 그룹 몇 분들이 간식을 드시고 인증샷을 찍는 동안 백팔배를 마치신 선생님은 우리를 앞질러 가신다. 간식을 드시던 분들이 출발하려는데 한 분이 무릎의 통증을 호소하시면서 다리를 저신다. 곧은재까지는 약 5km, 그 후에도 내리막길을 한참 가야 하는데 걱정이 된다.

향로봉까지 가는 길은 심하지 않은 오르막과 내리막이 계속 되었고, 가끔씩 크지 않은 바위들 사이를 통과하면서 숲속 산길을 계속 걸어가니 저 멀리 비로봉까지 이어지는 능선들과 봉우리 들이 바라다 보인다. 하지만 무릎이 불편하신 분의 속도가 점점 느려져 정익환 선생님이 배낭을 대신 짊어 졌고, 나는 차고 있던 무릎 보호대를 벗어서 아픈 쪽 무릎에 감아 드렸다. 정기 산행때는 가지고 다니던 구급낭을 하필 오늘은 놓고 온 게 아쉽다.

등반대장님에게 무전으로 도움을 청하여 향로봉 아래 헬기장에서 아쉬우나마 구급약을 드시도록 하였다. 속도는 느리지만 덕분에 주변 경관을 즐기면서 향로봉에 도착한다. 향로봉은 남북으로 이어지는 주능선의 중간 정도 되는 곳으로 원주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여름에 왔을 때 원주시 시내에 국지적으로 소나기가 샤워 줄기와 같이 쏟아지는 멋진 광경을 볼 수 있었는데, 오늘은 약간의 구름만 있을 뿐 맑아서 원주 시내가 한눈에 다 내려다보인다.

잠시 휴식을 취한 뒤 약 1km 정도 남아있는 곧은재를 향해 출발한다. 곧은재 가는 산길은 심하지 않은 내리막길이 계속 되고 많이 늦어져서인지 주변이 조용하다. 곧은재에서 능선을 따라 계속 직진하며 비로봉에 도달할 수 있으나 예정대로 좌측의 관음사 방향 하산길로 내려간다.

옛날에는 사람들이 소금짐을 지고 이 고개를 넘어 다녔다고 하고, 하산길 중간에는 주막이 있었다는데 지금은 그 자리에 주막거리쉼터가 있다. 곧은재탐방센터까지의 거리는 약 2.2km 정도로 능선에서 하산하는 가장 짧은 길로 약 1시간 정도의 시간이 예상되나 부상자가 있어 더 느려질 것 같다.

하산길은 처음에는 평범한 숲길로 계속된다. 잠시 후 샘터가 나타나는데 여름에 왔을 때에는 더위에 찌든 얼굴을 물줄기에 들이댔었는데 오늘은 생략한다. 샘터를 조금 지나서 부터는 심하지는 않지만 약간의 너덜길이 나타나고, 바닥에 깔린 울퉁불퉁한 바위돌 때문에 무릎의 통증이 더 심해지신 듯 속도가 더 느려진다.

하지만 연신 미안함을 표시하시면서 거의 쉬지도 않고 부지런히 내려가신다. 천천히 내려오면서 생면부지의 선생님과 여러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었고, 주위 경관을 더 차분히 볼 수 있었다. 주막거리 쉼터를 지나면서는 경사도 완만해지고 길도 훨씬 수월해지면서 계곡의 물소리가 들린다.

이 곳 계곡은 출발지인 성남 계곡보다 수량도 훨씬 많고 단풍이 더 짙어 하산후 뒤돌아 산을 올려다보니 이제서야 울긋불긋한 단풍산의 모습이 확연하다. 곧은재탐방지원센터를 지나 조금 내려오니 저 멀리 연재성 회장님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바라다보고 계신 것이 보인다.

잠시 후 뒤풀이 장소에 들어서니 많은 분들이 후미팀을 열렬한 박수로 맞아 주신다. 계획보다 많이 늦어져 7시간 30분 만에 산행을 마쳤지만 무사히 산행을 마쳐서 다행이다.

닭볶음탕과 시원한 맥주로 속을 채우고, 같이 내려오신 선생님으로 부터 감사의 말씀과 커피를 대접 받으니 몸과 마음이 뿌듯해진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은 우려했던 대로 단풍놀이를 즐기고 돌아오는 행락객들의 차량들로 인하여 고속도로가 많이 막힌다.

차창 밖으로 떨어지는 비를 보면서 잠들었다가 깨어보니 조장님께서 다음 정기산행인 시산제에서 뵙자는 말씀을 하고 계신다. 오늘은 단풍 산행, 다음은 눈꽃 산행, 벌써 기다려진다.

백인석 <노원 백내과의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