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란 무엇입니까?
사랑이란 무엇입니까?
  • 의사신문
  • 승인 2014.11.17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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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로니에 단상 <2>

1998년 한국과 중국 간의 핵의학 학술대회가 처음으로 북경에서 개최되었다.

당시 대한핵의학회 총무이사인 내가 그동안 이 학회를 창설하려고 노력해 얻은 결실이었다. 이미 일본은 4년 전에 중일핵의학회를 창립하여 중국과 교류하고 있었다. 우리나라도 같이 참여하기를 원했으나 일본 측의 반대로 따돌림을 받고 있었다. 본래 중일핵의학회는 일본 제조회사 후원으로 가나자와대학의 핵의학 교수가 주축이 되어 시작하였고, 그들의 핵의학 검사 장비와 키트를 거대한 중국 시장에 판매하기 위한 속셈이 있어 한국이 끼어드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당시 우리나라 핵의학은 초창기의 어려움에서 점차 벗어나 국내적으로 급성장하고 있는 중이었다. 특히 1995년 핵의학이 정식 임상 전문 과목으로 독립하여 독자적으로 전공의를 선발 교육시키고 수요가 증가하여 종합병원에 속속 핵의학과를 신설하고 있었다.

우리는 국제화의 첫 단계로 가까운 일본, 중국과 적극적 교류를 시작해야 하고, 거만한 일본을 설득하기 위해서 우리도 따로 중국과 학술대회를 가져야겠다고 판단하였다. 당시 중국학회장인 북경연합 의과대학 Liu 교수를 한국에 초청하였다. 서울대학교병원에서 일주일 간 핵의학 연구와 임상 이용을 보고 당시 학회회장인 김지열 교수님이 계시는 전남대학을 방문하여 MOU를 작성하였다. 우리의 활발한 학술활동과 성의에 감화된 Liu 회장이 귀국 후 중국 측을 설득하여 마침내 한중 핵의학회 학술대회를 개최하게 된 것이다.

북경 학술대회 첫날 공식만찬이 있었다. 양측에서 150여명이 참석하고 중국 의학계의 중요 인사들도 귀빈으로 초청되었다. 나는 과분하게도 한국 측 대표로 회장님과 함께 주빈 석에 앉게 되어 거북하였다. 바로 옆에는 중국 한림원 최고위 학자가 자리하고 있었다. 백발 머리에 둥근 안경을 써 더욱 지적으로 보이는 그는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띠고 있었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 날씨에 관한 가벼운 대화를 나누고 있던 중이었다.

그런데 이분이 갑자기 나에게 “Do you know what is love?”라고 물어보는 것이 아닌가! 이 뜻밖의 질문에 나는 많은 생각을 해야 했다. 사랑이 무엇인지 물어보니 바로 대답할 수 없었다. 우선 “That's very difficult question.”이라고 응답하고 “somewhat philosophic and sophisticated question”을 덧붙였다.

사랑의 정의는 무엇인가? 우선 쉽게 말하면 다른 사람을 아끼고 좋아하는 마음이다. 좁게는 남녀가 상대방 이성을, 넓게는 가족, 친구, 심지어는 전 인류를 대상으로 할 수가 있다. 자연스럽게 생기는 육체적 사랑 즉 에로스와 정신적인 플라토닉 러브로도 나눌 수 있다. 사회생물학적으로 사랑은 종족보존이라는 궁극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생겼다고 볼 수 있다. 남녀가 사랑해 자식을 그것도 우수한 자손을 생산하고 양육하게 한다. 후세를 잇기 위한 전술이며 또 이때 필요한 에너지의 원천이다.

의학적으로 보면 사랑에는 단계적으로 여러 물질이 관여한다. 초기에는 테스토스테론과 에스트로겐 같은 성 호르몬 분비가 증가하고 뇌신경계에서 도파민, 노르에피네프린 및 세로토닌이 분비되어 쾌락중추를 자극하고, 강한 흥분 상태가 나타난다. 보통은 2∼3년 지속하는 이 시기에 아이를 만든다. 그 후에는 뇌 중추에서 옥시토신 등이 분비되어 다소 안정된 상태에서 서로 호감을 유지하며 자식을 같이 키우게 된다.

남자는 본능적으로 자신의 나이와 관계없이 젊은 여자에게 관심을 많이 가지는 경향이 있다. 쉽게 설명하면 젊으면 임신과 출산이 잘되기 때문이다. 또 여성의 육체에 강한 매력을 느낀다. 남성과 달리 여성은 피하지방이 발달되어있고 이 지방 조직이 아이를 키우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에스트로겐 호르몬의 작용으로 만들어 지는 지방조직이 적소에 분포해 부드러운 몸의 곡선을 만든다. 이 육체의 모습에서 우리는 본능적으로 후손을 생산, 양육할 능력을 알게 되어, 아름답다는 관능미를 느낀다. 인류의 초기문명 시대부터 이런 이유로 마른 몸매 보다 풍만한 육체의 여성들을 찬미하여왔다. 요즘 마른 몸매를 유지하려고 강박관념을 가진 여성분들이 잘 알아야 할 내용이다.

그러나 옆에 앉아있는 점잖은 중국학자 분은 정신적인 것도 포함하여 물어봤을 것이다. 플라토닉 러브도 있고 더 나아가 인류애인 아가페도 있어 한 개인을 사랑하는 것 보다 더 위대할 수도 있다.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하기에 이런 사랑은 오히려 일상적 삶의 태도와 행동에 가깝다.

정신 분석가이자 철학자인 에리히 프롬은 이를 바탕으로 논리를 발전시켜 그의 책 〈사랑의 기술〉에서 “사랑이란 타인의 생명과 성장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일”이라고 정의하였다. 그러기 위해 “자신 속에 살아 있는 것을 주어야 한다”고 했다. 기쁨, 관심, 이해, 지식, 유머, 심지어는 슬픔 까지, 자신 속에 살아 있는 모두를 주는 것이다. 내 생명을 주어 타인을 풍요하게 만들고, 자기 자신의 생동감을 고양해 그 사람에게도 생동감을 주게 된다. 이러면 다시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주는 것 자체가 지극한 기쁨이 된다.

프롬은 “많이 갖고 있다고 부자가 아니다. 많이 주는 사람이 부자이다. 하나라도 놓지 않으면 아무리 많이 갖고 있더라도 가난한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이미 2천여 년 전에 석가, 예수 같은 선각자가 깨달은 내용이다. 아무런 대가 없이 자신을 주는 것은, 사랑을 받은 사람에서도 새로운 사랑을 불러일으킨다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말을 잇지 못하고 있는 나에게 그 귀빈은 부연설명을 하였다. 한국에서 요즘 인기 있는 TV연속극 “사랑이 무엇 이길래?”를 아는지 물어보는 것이란다. 언어의 마술사라는 유명한 김수현 작가가 집필하고 이순재, 김혜자, 최민수 등 최고의 탤런트들이 나오는 이 드라마는 나도 즐겨보는 중이었다. 한류에 심취한 이 지도자는 그 자리를 어려워하는 나를 배려하여 부드럽게 물어본 것이다.

학문적이고 철학적인 대답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나의 솔직한 고백에 우리는 한바탕 웃고 더욱 가까워진 감정을 느끼면서 즐겁게 식사하였다. 저녁 동안 그분의 자상하고 심려 깊은 태도와 대화는 앞서 말한 에리히 프롬의 진정한 사랑을 실천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한중일 핵의학회의 미묘한 입장 차이에 대한 내 고민도 같이 하여 주었다.

어떻게 보면 그가 물어 본 “Do you know what is love?”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같이 있는 시간 내내 자신이 생각과 행동으로 보여준 것이다.

그의 참다운 사랑에 근거한 격려와 조언 덕분으로(?) 그 후 상업주의를 배재한 순수한 학문적 입장으로 돌아가 한중, 중일 학회가 원만하게 한중일 학술대회로 통합하여 세 나라를 오가며 성황리에 열리고 있다. 물론 학문 발전을 위해 가진 것을 서로 주려고하는 각국 회원들의 진정한 핵의학 사랑이 바탕이 되어왔다.

정준기 <서울대병원 핵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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