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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반 베르크 바이올린협주곡 `어느 천사를 회상하며'
알반 베르크 바이올린협주곡 `어느 천사를 회상하며'
  • 의사신문
  • 승인 2014.11.17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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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이야기 〈289〉

■베르크 자신의 진혼곡이 된 `어느 천사를 회상하며'

1935년 미국의 바이올린 연주자 루이스 크래스너는 베르크에게 자신을 위해 바이올린협주곡을 작곡해달라고 위촉했다. 하지만 베르크는 주저하며 시간을 끌었다. 그러다 말러의 미망인 알마와 두 번째 남편인 건축가 그로피우스 사이의 딸인 마농 그로피우스가 18세의 나이에 소아마비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평소 마농을 무척 귀여워했던 베르크는 큰 충격을 받고 그녀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작곡을 하게 된다. 아픈 몸을 이끌고 베르크는 오스트리아 케른텐에 있는 별장에 틀어박혀 작업에만 몰두하여 이 작품을 완성한다.

1936년 4월 크래스너에 의해 바르셀로나에서 초연되었을 때 베르크는 크래스너에게 편지를 보낸다. “이 곡은 당신보다 나를 더 놀라게 했으며 너무나 많은 즐거움을 주었습니다… 나는 이 곡이 성공하리가 희망합니다. 아니 강한 확신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해 12월 베르크는 패혈증으로 입원하여 갑자기 세상을 떠나게 된다. 결국 이 곡은 마농의 진혼곡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베르크 자신의 진혼곡이 되고 말았다.

20세기 대표적인 바이올린 곡이자 `어느 천사를 회상하며'라는 헌사가 붙여진 이 작품은 12음 기법과 다른 기법을 써서 음악뿐만 아니라 상징적인 의미에서도 매우 개성 있고 정서적 깊이를 지니고 있다. 12음 기법이 사용되었지만 그다지 엄격하지는 않아 어느 정도 조성을 느낄 수 있으며 처절하고 슬픈 감정이 표출되고 있다.

정식 음악교육을 받지도 않았던 베르크는 일생을 거의 빈에서만 보냈다. 100곡 이상의 가곡과 피아노곡을 작곡했지만 대부분 출판되지 않았다. 베르크의 초기 작품에는 그가 숭배하던 말러와 바그너의 영향이 강하게 나타나 있다. 1904년 봄 베르크는 그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게 되는 아르놀트 쇤베르크를 운명적으로 만난다.

당시 작곡 레슨을 받을만한 돈이 없었으나 그의 재능을 인정한 쇤베르크는 그를 가르쳤다. 쇤베르크의 음악적인 가르침은 그 후 6년간 베르크의 예술 성향을 결정하게 된다. 1933년 나치가 독일에서 정권을 잡자 스승 쇤베르크와는 달리 베르크와 베버른은 유대계가 아니었음에도 쇤베르크와 함께 `타락한 예술가'로 단죄되었고, 독일에서는 갈수록 이들의 음악이 연주될 수 있는 기회를 잃게 된다.

그러나 외국에선 대표적인 관현악곡 작곡가로 명성이 높아졌고, 음악제에서 자주 연주되었다. 생전에 명성을 얻지 못했지만 서거 후 베르크는 아르놀트 쇤베르크, 안톤 폰 베버른과 함께 전통을 파기하고 진보적인 기법을 통하여 전통과 개혁을 혼합한 인물로 인정받게 되면서 `신빈악파'라고 불리게 된다. 품위는 있으나 가난한 귀족 집안 출신으로 매력 있는 외모와 관대한 성격이었던 그는 제자들에게는 자신들의 뜻에 따라 스스로 곡을 쓰도록 격려해주는 뛰어난 스승이기도 했다. 새로운 음악적인 매체도 매우 능숙하게 다루었으나 굳이 고전적인 유산을 없애지는 않았기 때문에 그를 가리켜 `현대음악의 고전주의자'라고도 부른다.

△제1악장 Andante-Allegretto 베르크의 친구이자 전기 작가인 라이히에 따르면 `Andante는 마농의 성격이나 특징을 나타내고 있고, Allegretto는 마농이 춤추는 모습을 담고 있다'고 한다. andante는 몽환적이고 적막한 분위기로 클라리넷과 하프로 시작하며 마농에 대한 감미로운 추억을 되새긴다. 독주 바이올린이 중심이 되어 진행되다가 잠시 관현악이 주가 된 후에 다시 처음 분위기로 돌아간다. allegretto는 목관악기의 선율로 시작되며 바이올린 솔로로 진행되다 바이올린과 관현악이 주선율을 주고받다 활기찬 코다를 거쳐 마무리된다.

△제2악장 Allegro-Adagio Allegro는 금관과 타악기를 중심으로 시작된 후 기교적인 바이올린과 금관의 리듬이 혼합된다. 이후 조용한 바이올린 독주의 중심부를 지나면서 제1악장 주제를 연상시키며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간 후 금관과 바이올린 솔로가 절정에 이른다. Adagio는 영혼의 정화를 기원하면서 바흐의 칸타타 제82번 〈오! 영원이여, 그대 무서운 말이여!〉 코랄 `나는 흡족하도다!'의 선율을 목관이 노래한 후 독주 바이올린이 대위법적으로 진행된다. 이후 코랄을 변주하며 진행하다가 제1악장 Andante 선율이 재등장하면서 끝을 맺는다.

■들을만한 음반: 정경화(바이올린), 게오르규 솔티(지휘),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Decca, 1983); 안네 소피무터(바이올린), 제임스 레바인(지휘),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DG, 1992); 기돈 크레머(바이올린), 콜린 데이비스(지휘), 바이에른 방송 오케스트라(Philips, 1984); 이차크 펄만(바이올린), 세이지 오자와(지휘),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DG, 1978)

오재원 <한양대구리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 이 클래식이야기 전편은 오재원 작 `필하모니아의 사계'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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