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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구 공보이사 칼럼]등산과 독서
[각구 공보이사 칼럼]등산과 독서
  • 의사신문
  • 승인 2014.11.10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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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근 <금천구의사회 공보이사>

조재근 금천구의사회 공보이사
개업의의 성격 상 일정수준 이상의 out-door 활동에 많은 제약이 있다. 시간과 체력 그리고 결단, 이 세 가지의 필요조건 중 어느 하나 녹록하지가 않다.

3년 전 필자는 본의 아닌 의료법 위반으로 1개월간 면허정지를 받은 적이 있다. 오히려 예기치 않던 장기휴가로 평상시 꿈도 꿀 수 없었던 알프스 트레킹을 갈 수 있었다.

서유럽 알프스의 최고봉인 몽블랑(4807m)을 중심으로 빙하에 의해 깎여 형성된 거대한 계곡을 사이에 두고 프랑스, 이태리, 스위스를 아우르는 장장 11일 간의 TMB (Tour de MonBlanc) 코스로, 마테호른 옆의 오스트리아 체르마트로 가는 오뜨루뜨(Haute Route) 코스와 함께 알프스의 양대 트레킹코스 중 하나이다.

알피니즘의 진원지라 할 수 있는 샤모니에서 시작하여 이태리 꾸마유, 스위스 라샹뻬를 경유해 다시 샤모니로 복귀하는 여정으로 매년 열리는 MonBlac ULTRA TRAIL의 코스이기도 하다.

매일 7시간 내외의 산행이 다소 고되기는 하지만 2000m 고지대에서 감상하는 만년설의 준봉들과 빙하에 의해 부서져 칼날처럼 날카로운 바위들이 보여주는 험준함, 자연의 광활함과 알프스 특유의 초원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었다. 대피소가 일년에 3개월여 밖에 운영을 하지 않는 관계로 여름에만 일시적으로 등산할 수 있다. 국내에서는 신발끈 여행사를 통하거나 샤모니의 `http://www.chamonix-guides.com'에서 현지투어로 다양한 나라의 등산객들과 함께 오를 수 있다.

필자는 현지 투어 스케줄로 미국, 핀란드, 독일, 프랑스 등에서 온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과 같이 하였었는데 산을 타는 사람 특유의 친절함과 배려가 좋았고 서로 다른 생활양식을 가진 이국인들과의 신선한 경험이 좋았다. 나름 나에게는 몸으로 하는 격렬한 첫 자연탐험이었다.

샤모니에서는 자일을 들쳐 멘 사람들을 여럿 보았는데 이들은 몽블랑 정상등정을 목적으로 온 사람들이었다. 이때만 하더라도 두려움과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없는 관계로 총총히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마음은 끝까지 밀어 붙이고 싶은 갈구가 있으나 몸은 안위와 편안함을 따름이기 때문이리라.

일상으로 복귀하고 생활전선과 규제된 시간틀 안에서의 삶은 또다시 계속된다. 진료실에서 환자가 뜸한 자투리 시간에 주로 책을 읽으며 지낸다.

이것의 좋은 점은 독서가 끊긴다 하더라도 줄거리나 내용을 음미하는데 별 지장이 없다는 것이다. 영화를 보다가 중간에 자주 끊긴다고 상상해보라. 정말 답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신기한 점은 많은 책들 중에 산악, 극한 실외활동에 관련된 서적이 매우 드물다는 점이다. 있다 하더라도 인기가 없어 절판되거나 하여 구할 수가 없다고 한다.

하지만 직접은 못하여도 자연의 혹독함을 극복하고 미지의 영역을 탐험하는 이들의 생생한 이야기라도 듣고 싶은 것이다. 이에 비록 투박한 아마추어 감각이기는 하지만 몇 권의 책을 추천해 보고자 한다.

△베르나르 올리비에, “나는 걷는다”, 2003, 효형출판 △안병식, “나는 달린다”, 2012, 씨네북스 △정광식, “영광의 북벽”, 2011, 이산미디어 △우에무라 나오미, “청춘을 산에 걸고”, 2008, 마운틴북스 △조 심슨, “난, 꼭 살아 돌아간다”, 2004, 예지

이 중 조 심슨의 `난, 꼭 살아 돌아간다'는 영화 (Touching the void)로 제작되기도 한 것이다. 등반가 조 심슨이 사이먼 예이츠와 함께 1985년 남미 안데스 산맥의 6400m 준봉 시울라 그란데 (Siula Grande) 의 서벽을 초등하는 내용으로, 하강 도중 푸석설의 위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추락, 다리 골절상을 입는다.

무리하게 하강하던 중 어둠 속에 조가 절벽에 매달리게 되고 사이먼은 자신의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조에게 연결되어 있던 생명줄 자일을 자르는 급박한 상황에 몰리게 되고 결국 혼자 베이스캠프로 돌아간다. 크레바스에 떨어진 조는 기적적으로 생존하여 3일 동안 기어서 베이스캠프로 귀환하고 생존한다는 내용이다.

대부분의 탐험관련 서적의 내용이 직설적이고 투박한 반면 이 책에서의 묘사는 매우 섬세하고 부러진 다리를 끌고 절망해가는 심정과 현장상황이 처절하고 아프듯이 생생하다.

앞으로 내 삶에서 이런 극한의 탐험을 한다거나 하는 일은 아마 절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마음속에 숨어있는 전사적인 욕망은 안위를 갈구하는 몸에 막혀 내 안에서만 꿈틀거린다. 그나마 이를 다독여 주는 것은 책 뿐이 아닐까 싶다.

조재근 <금천구의사회 공보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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