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란트라의 기술 유전자
엘란트라의 기술 유전자
  • 의사신문
  • 승인 2009.08.19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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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 성장의 원동력 '미쯔비시의 DNA'

만약 기술에 어떤 유전적인 정보가 있다고 생각하면 어떻겠는가? 사실 유사한 요소가 있다. 하나의 기술 , 사소한 기술이라고 해도 안정화되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부품 하나를 제대로 만드는 데에도 몇 년이 걸리며 이들을 조합하는 시스템은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시간을 경과하며 만드는 스킬과 현실적인 이유들이 절충을 만든다. 우리나라의 제품들이 예전보다 좋아지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시간은 돈으로 살 수 없는 요소이기 때문에 때로는 기술적인 유전자를 수입해와야 한다. 박테리아가 바이러스로부터 유전코드를 주입받아 이전에는 할 수 없던 기능을 갖게 되는 것은 신비로운 현상이다. 하지만 그 유전코드들은 그 이전에 오랜 세월을 두고 살아남아야 했다. 아무튼 살아남을 정도로 우수하다는 것을 입증하는 데는 세월이 필요하다. 시간이 많이 필요한 것이다.

기술의 세계에도 비슷한 일들이 있었다. 필자가 예전에 윈도우 NT의 성공은 VMS의 기술유전자를 수혈 받았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적은 글이 있다.

윈도우 NT는 DEC라는 컴퓨터 회사의 VMS를 개량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다. DIGITAL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DEC는 최초의 미니컴퓨터를 만들었고 마이크로소프트보다 훨씬 큰 회사로 20년 넘게 존재했다. 이 회사의 주력 운영체제가 VMS였다. NT로 둔갑하기 전에 VMS는 중형기종에서 유닉스와 1970년 동안 경쟁했다. 그 이전의 마이크로소프트웨어의 주 운영체제 도스는 CP/M이라는 운영체제의 변형으로 볼 수 있었다. CP/M도 몇 년 동안 아주 안정하게 동작했고 이 운영체제의 16비츠 변형판을 MS가 구입한 것이다. 그래서 처음부터 안정한 동작을 할 수 있었다. MS의 소프트웨어들은 이런 바탕 위에서 성장한 것이다. 처음의 MS는 운영체제 회사라기보다는 컴퓨터 언어를 라이센스로 파는 회사였다. MS베이직은 MS를 몇 년 동안이나 먹여 살렸다. MS에 엔지니어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돈을 벌면서 MS는 뛰어난 엔지니어들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경험곡선은 많이 부족했다. 그 이후의 성공은 전략의 승리와 운이 따른 것이 사실이다. 경쟁자들이 너무 많은 실수를 하고 말았다. 아무튼 NT의 VAX 유전자는 40년 가까이 살아남은 셈이다.

아무리 뛰어난 엔지니어라도 모든 것을 다 만들어 낼 수는 없다. 무엇인가 기본적인 설비와 재료가 있어야 한다. 자동차 회사도 마찬가지라서 맨 처음부터 만들어 내려면 T형 포드시절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그렇지만 현실은 급박하게 돌아가기만 한다. 사용한 재료들이 성공적인 결과를 낼 수 있는 플랫폼이어야 한다. 현대는 정말 운이 좋았다. 현대자동차가 포니를 성공적으로 런칭한 것은 정말 행운이었다(이때도 로버의 전직 엔지니어가 도움을 준 것이 사실이다). 포니 다음의 도약에서 미쯔비시를 만난 것은 다행이었다. 과히 나쁘지 않은 플랫폼으로 차들을 만들 수 있었다. 거의 10년 이상을 안정된 플랫폼에서 차들을 생산하게 되면서 학습곡선은 급격하게 상승할 수 있었다.

포드와의 합작기간, 그리고 포니라는 플랫폼으로 차를 만들던 시절에 유럽이나 일본의 차들은 진정한 기술적 발전을 이루고 있었고 후발 자동차 회사는 이런 기술에 어떻게든 합류해야 했다. 너무 늦어 버리면 진입자체가 불가능해진다. 그리고 앞서가는 회사들은 구 모델이 아니면 라이선스를 주지 않는다. 아니면 제한된 라이선스를 공급한다.

자동차들의 혁신적인 변화가 일던 1980년대에 현대에 기술적인 DNA를 공급한 회사는 미쯔비시였다. 미쯔비시가 없었으면 현대 자동차의 오늘은 없거나 다른 모습이 되었을 것이다. 이것은 사실이다. 기아 역시 마즈다와 제휴했고 대우는 GM과 제휴했다.

포니 엑셀의 뒤를 이어 나온 엑셀은 미쯔비시의 프레시즈(PRECIS)였다. 액셀의 초기 엔진은 커버에 아예 미쯔비시 마크가 붙어 나왔다. 프레시즈는 이클립스(Eclipse)의 원형이며 이 디자인은 아반테와 티뷰론의 디자인에도 영향을 미친다. 비교해보면 정말 비슷하다.

정말 중요한 차종인 엘란트라(아반떼)의 원형인 미라지 역시 일본에서 충분히 검증된 차종이었다. 미라지는 1978년 소개된 모델로 초기 모델은 2도어 전륜구동형에 1.2리터, 1.4리터 Orion MCA-JET엔진을 장착하고 있었다. 이듬해에 4도어 세단을, 1979년에는 1.6리터 엔진을 채택한 모델을 판매했고 1982년에는 터보 장착 105마력 1.4리터 모델도 나왔다. 초기 수출형 모델은 Lancer Fiore로 미국으로의 수출은 1985년부터 시작했다. 그 이전에는 닷지의 콜트(Dodge Colt)라는 이름으로 판매됐다. 1978년부터 1982년까지 모두 100만대가 생산되었다. 디자인과 실용성으로 평이 좋았다.

미라지를 변형한 엘란트라가 처음 나왔을 때 국내 시장에는 동급에서 이만한 차가 없었다. 4G 엔진 시리즈는 충분히 성숙한 좋은 엔진이었고 비슷한 급의 차들은 엘란트라를 따라가기가 어려웠다. 엘란트라의 판매량은 놀라울 정도였는데 소비자들이 원하는 사항을 잘 파악하고 영업과 기획을 세운 덕분이었다. 1.8과 1.6리터 엔진 모두 최강의 성능을 냈다.

포르세를 추월하는 과대광고 비슷한 것부터 시작해 아반떼라는 이름으로 바뀌기 전까지 엘란트라는 도로를 덮었다. 더 고급기종인 소나타와 그랜저가 있었지만 당시로서는 엘란트라 정도가 경제적인 차종이었다. 실용적인 차종이라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할 것이다.

아무튼 여기서 멈추었다면 현대는 없었을 것이다. 계속해서 이 차종과 4G 엔진시리즈를 잘 주무르고 조합해서 사람들이 원하거나 원할 것으로 보이는 차들을 만들었다. 매니아들이나 좋아할 차들은 아예 시리즈에 들어 있지 않았다. 이것이 미쯔비시의 DNA를 받은 현대의 전략이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는 성공적이었다. 필자가 신기해하는 것은 바로 이점이다. 팔리는 차와 팔리지 않는 차는 종이 한 장 차이다. 많은 회의적인 시각에도 불구하고 성공적이었다. 그 뒤의 배경에는 물론 기술적으로 안정한 유전자가 있었다. 2001년 차는 크게 변신을 했고 이 때에도 나쁘지 않은 성적을 냈다. 현대가 기술적으로 뛰어난 업체라고 볼 수는 있지만 더 빼어난 회사들도 널려있다. 그럼에도 현대의 성적은 결코 나쁘지 않았다.

안윤호〈송파 대광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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