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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구 공보이사 칼럼]내 탓…
[각구 공보이사 칼럼]내 탓…
  • 의사신문
  • 승인 2014.11.03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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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수 <송파구의사회 공보이사>

이진수 송파구의사회 공보이사
반구저기(反求諸己). 그 의미는 `잘못을 자신에게서 찾는다'라는 뜻으로, 어떤 일이 잘못 되었을 때 남의 탓을 하지 않고 그 일이 잘못된 원인을 자기 자신에게서 찾아 고쳐 나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우리말의 `내 탓이오'와 의미가 통하는 말이다.

수원수구(誰怨誰咎)란, `누구를 원망하며 누구를 탓하랴'는 뜻으로 곧, 남을 원망하거나 꾸짖을 것이 없음을 일컫는 고사성어이다. 이와 비슷한 의미의 수원숙우(誰怨孰尤)란, 누구를 원망하고 탓할 수가 없다는 뜻이다.

글머리부터 어려운 한자 타령인가 생각할 수 있겠지만, 평소 `내 탓'을 가족과도 자주 이야기하는 일이 많아 찾아보게 되었고, 본인도 처음 찾아보고 새겨보는 고사성어라는 것을 밝히며, 조금 유식해졌다는 뿌듯함에 어린아이마냥 즐겁다.

소아청소년과의 특성상 아이들을 위한 진료과임에는 틀림없으나, 아이들을 통해 그 부모 혹은 조부모, 가정의 분위기, 교육 정도 등을 예상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아이의 훗날 모습이 그려지기도 한다.

뛰어가다 미처 앞의 장애물을 보지 못하고 넘어질 수 있다. 어린아이들에게는 흔한 일이다. `누가 그랬어? 우리 예쁜 아가를 누가 그랬어?' 누가 그러긴, 본인이 부주의해서 넘어진 거지. 답답하고, 뭐라고 한마디 해주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진료실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아무리 웃어주고 달래줘도 병원이 떠나게 우는 아이들을 부모들이 어떻게 달랠까? `누가 그랬어? 누가 우리 아가를 울게해? 선생님 때찌할까?' `나, 참, 이건 뭐지?' 예방접종이 많은 진료의 특성상 하루에도 여러 차례 볼 수 있는 광경 중 하나가, `누가 그랬어? 선생님이 아프게 했어? 때찌!'

병원을 자주 오는 단골(?) 아가들이 있다. 물론 부모의 걱정 때문에 오는 경우도 있지만, 특별히 기저질환이 없는데도 자주 아파서 많이 오는 아가, 아이들이다. 첫마디부터 `얘는 왜 이렇게 많이 자주 아파요?' `왜 이렇게 안 나아요?' 왜긴! 허구한 날 아이들 데리고 여기 저기 다니고, 가정주부인 것 뻔히 아는데, 더구나 아이 하나인 것도 아는데, 너무 이른 연령에 어린이집에 보내니 그렇지. 진짜 몰라서 묻는 건가?

그렇게 말하면 자신들이 잘 못 돌보고, 자신들은 하고 싶고 편한 것만 하다 보니 아이들이 고되지는 걸 남의 탓 이라고 돌리고 마음이 편해지는 걸까? 아이가 자주 아프면 의사로서, 가능한 원인들을 당연히 알려준다. 그대로 따르고도 어쩔 수 없다면 모르겠으나, 그런 어려운 처방은 싫고, 아이의 병세가 좋아지면 나을 때가 된 거려니, 호전이 보이지 않으면 의사가 제대로 치료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남의 탓 좋아하는 사람들의 특징이다.

앞의 장애물을 못 보고 넘어졌으면, `아팠겠구나, 조심해야지, 앞을 잘 보고 다녀야지' 혹은 아이들의 수준에 따라 좀 더 확장된 언어로 제대로 가르쳐주어야 할 것이다. 애꿎은 도로를 탓하기 전에 말이다. `주사는 원래 아주 많이 아픈 거야. 그런데, 병에 걸려서 더 아프지 않으려면 조금은 참아야해, 선생님이 안 아픈 주사로, 아주 작은 주사로 놓아주실 거야. 잘 참아보자'. 이런 이야기를 해주는 부모, 조부모 혹은 양육자를 보고 싶다. 그런 어른들에게서 그런 방식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법을 배워가는 아이들을 보고 싶다.

우리 사회에서도 역시 똑같이, 내 탓 보다는 남의 탓을 하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심지어 가족 간에도 이런 모습들을 볼 수 있는데, 하물며 이해관계가 얽혀있거나 한다면, 더더욱 심해지는 것 같다. 어려서부터 은연중에 내 삶에 녹아드는 어른들의 대처 방법 중 중요하고 큰 기전 중 하나가 바로 남의 탓으로 돌리는 것이 아니었나싶다.

살면서 실패도 경험할 수 있을 것이고, 답답한 경우도 많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 원인을 직원 탓, 회사 탓 등 주변의 탓으로 돌리는 일이 많아짐을 느끼게 된다. 말은 그럴듯하게 고사성어까지 인용하며 남 탓 하지 말자고 하지만, 나 자신도 그런 성향이 많음을 문득문득 깨닫는다. 남의 탓이 가장 쉬운 위로이며, 책임을 회피하기 가장 편한 도피처임과 동시에 나 자신을 합리화하기에 편리하고 편한 방법이다. 내가 못나지 않았고 이럴 수밖에 없었으며, 내 잘못이 없음을 외부의 원인으로 돌리는 비겁한 행동인 것이다.

김수환 추기경 사후에 조금씩이나마 불기 시작한 작은 움직임, `내 탓이오'… 사회 비리를 성토하기 전에, 나는 그 구성원으로 무엇을 어떻게 고쳐보려 노력했는지, 매연을 탓하며 강물이 깨끗지 않음을 탓하기 전에 나는 공해를 줄이기 위해 뭘 했는지, 의료가 이렇게 끝도 없는 나락으로 떨어져가고 있는데, 나는 선배 의사들이나 집행부를 탓하기 전에 같이 뛰고 같이 고민했는지…

내가 경험하고 있는 일들, 그 부모들의 언행은 아주 사소한 것이라서 `그런 것까지 뭘 심각하게 생각해?'라고 말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사소한 것들이 삶 속에 녹아들어 생각의 틀을 접착제처럼 붙여가고 있고 계속 쌓여간다는 걸 알아가길 바란다. 조그만 것들의 위대함 혹은 위험함, 그런 아이들이 어떻게 자기성찰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걱정이 된다. 주변의 안 좋은 상황들이 생기면 나도 내 탓, 너도 내 탓, 우리 모두 내 탓으로 생각하고, 그렇게 작은 물결이 큰 파도가 되고, 쓰나미가 되어, 잘되면 우리 탓(탓이 아니고 우리 덕), 잘못되면 내 탓 이라는 풍토가 만들어지길 바란다.

판단이 어려운 아이들에게, 어른들의 `내 탓이오'라는 움직임이 추후 50년 100년 후의 긍정적이고 활기찬 사회의 밑거름이 될 것임을 믿으며, 앞날이 창창한 우리 소아청소년에게, 소아청소년과 의사로서 새겨주고 싶은 작은 소망을 말해보았다.


반구저기(反求諸己)

수원수구(誰怨誰咎)

수원숙우(誰怨孰尤)

`모든 잘못이나 원인을 다른데서 구하기에 앞서 자신을 되돌아보고 자신에게서 찾아 고쳐나간다'

이진수 <송파구의사회 공보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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