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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협, "보건복지부는 원격의료 추진 중단하라"
대전협, "보건복지부는 원격의료 추진 중단하라"
  • 김지윤 기자
  • 승인 2014.10.24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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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격의료 강행추진·대기업 주도 유헬스 산업으로 개원가 몰락 필연적"

송명제 대한전공의협의회 회장
대한전공의협의회(회장·송명제, 이하 대전협)가 보건복지부의 원격의료 강행 추진을 강하게 비판하며 즉각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보건복지부(장관·문형표)는  의협에서 원격의료 시범사업에 참여하지 않자 9월 말부터 단독으로 시범사업을 진행한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으며, 이와 관련 대전협은 "지난 2월 의료제도 바로 세우기 투쟁 당시부터 원격의료에 찬성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 이 입장은 현재 제18기 집행부도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대전협은 "의대생들은 의과대학에서 무분별한 검사보다 한 번의 제대로 된 병력청취와 신체검진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배운다. 환자를 보고, 청진하고, 만져보고 두드려보는 시진, 청진, 촉진, 타진은 의대생들이 배우는 신체검진의 기본 중의 기본"이라며 "대면진료를 하지 않고는 환자의 상태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원격의료는 의사-의사간 정보 교환을 위해서는 유용하지만 의사-환자 간 진료에 있어서는 대면진료가 원활히 이루어지는 가운데 제한적이고 보완적으로만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대전협은, "입원환자를 돌보는 주치의를 하면서 교수에게 꾸중을 듣는 것도 '왜 환자를 직접 보지 않았냐'는 것이고 응급실에서 문의전화를 받을 때에도 '병원에 오셔야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있습니다'라고 환자들에게 입이 아프도록 설명한다"며 "현재 한국에서 정부가 추진하려고 하는 원격의료법은 그 대상이 만성질환자, 정신질환자, 도서산간벽지 등 광범위하고 기준도 애매하다"고 원격의료 법안 자체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2013년 기준 국내에서 응급의료기관이 전혀 없는 지자체가 25곳, 분만시설이 없는 지자체가 57곳에, 도서산간 지역의 응급후송 서비스도 제대로 정비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한국에서와 같이 도서산간 지역의 기초적인 의료 인프라가 공백인 상태에서 제대로 신체검진도 할 수 없는 원격진료가 얼마나 도움이 될지 의문이라는 것.

이어 대전협은 "복지부는 거꾸로 원격진료를 '방문진료나 간호 등으로 보완할 것'이라고 말하는데 이는 완전히 뒤바뀐 접근"이라며 "의료취약지 환자들에게 일차적으로 필요한 것은 원격의료가 아니라 환자를 적절히 돌볼 수 있는 의료인력"이라고 강조했다.

원격의료가 한국의 지리적 특성에 맞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했다.

원격의료를 도입한 국가들의 1km2 당 의사 수는 캐나다 0.01, 호주 0.01, 미국 0.08, 핀란드 0.05인데, 한국은 그 수치가 0.98 이라는 것. 거리를 10분만 걸어도 의사를 만나 양질의 진료를 받을 수 있는 한국에서, 원격의료제도의 필요성 자체에 의문이 든다는 것이다.

또한 국내에서 원격의료에 대해 안전성과 효과성을 검증하기 위한 시범사업들이 있지만 대부분 기간이 6개월~1년 정도로 매우 짧고, 그 효과 또한 왜곡·과장되어 발표됐다며 비용효과성 역시 제대로 검증된 바가 없다고도 대전협은 지적했다.

대전협은 정부의 원격의료 강행 추진과 관련, "개원가의 몰락은 필연적"이라며 "그간 원격의료 시범사업은 삼성, SK, LG 등 대기업과 주요 대형병원들이 함께 진행해온 것이 대부분이다. 복지부는 원격의료를 의원 수준에서만 하고 병원급으로 확대할 계획은 없다고 하지만 병원들은 일부 의원과 연계하는 방식을 택할 수도 있고, 향후 영리자법인 설립이 허용되면 자회사 형식으로 원격진료센터를 세울 수도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일차의료기관 활성화 대책이 전무한 현재 한국의료 상황 속에서도 이미 대형병원 집중현상과 개원가의 위기는 심각한데,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는 결국 네임밸류가 있는 대형병원을 중심으로 환자 쏠림현상을 가속화할 것이라고도 역설했다.

실제 2002년 요양급여 실적에서 병원과 의원이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50.7%, 49.3%였는데 반해 10년이 지난 2012년 그 비중은 병원 67.7%, 의원 32.3%로 격차가 벌어진 상황. 이같은 현실에서 지난 2011년 보건사회연구원이 원격의료 이용에 대해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70.3%가 유명의사를, 63.2%가 대형병원을 이용하겠다는 답변이 나온 바 있다.

또한 대전협은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 도입이 문제가 되는 것은 의료전달체계 붕괴 때문만은 아니라며 대기업 주도의 유헬스(u-Health) 산업에 대해 지적했다. 이같은 산업은 의사 주도가 아닌 기업 주도의 건강관리서비스업으로, 결국 의사 혼자 운영·진료하는 개원가는 더더욱 살아남기 힘들어지게 된다는 것.

대전협은 "앞으로 많은 의사들이 기업의 입맛에 맞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에이전트로 기능하게 될 것"을 우려하며 "그 과정에 희생되는 것은 의사의 자율성과 독립성, 양심적 진료"라고 재차 강조했다.

이와 관련 2003년 삼성은 신성장동력사업으로 유헬스(u-Health)를 지목했고 2007년 발간한 '유헬스의 경제적 효과와 성장전략'이라는 보고서에서 유헬스 활성화를 위한 선결 조건으로 △영리병원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 허용 △일반인이 운영하는 건강관리 서비스 회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대전협은 "유헬스 산업은 단지 현 의료제도 내에서 의료시장 일부를 확장하려는 시도가 아니다. 유헬스 산업은 만성질환자 외에도 건강한 사람에 대한 예방서비스까지 의사 주도가 아닌 기업 주도의 건강관리서비스업으로 재편하는 전략"이라며 "그 과정에 의학적인 효과성, 정책적 타당성, 비용효과성에 대한 진지한 검증은 온데 간데 없고 단지 그러한 기술 도입을 정당화 하기 위한 왜곡·과장된 시범사업과 연구결과만이 남아있다"고 단언했다.

정부 주도의 원격의료 강행추진을, 단지 환자들이 원격모니터링에 필요한 혈압, 혈당 측정기를 구입하고, 원하는 사람들만 이용하면 되는 문제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대전협은 "이미 10여년 전부터 원격의료와 유헬스를 구상해왔던 기업들은 다시 10년 후를 내다보며 병원-의료기기회사-의료보험회사 등 계열사들을 복합적으로 연계한 새로운 산업의 성장을 위해 의료환경의 재편을 꿈꾸고 있다"며 "정부는 그 꿈을 위해 적극 지원사격하고 있는 형국"이라고 비판했다.

한편, 대전협은 "이런 의료 환경에서 의대생 때 밤새워 공부했던 지식은 적용할 데가 없다. 전공의들은 지금 후배 세대에게 수련을 받지 말고 경영을 공부하라고 조언하고 싶은 심정"이라며 "이제 의사들이 교과서적 진료를 한다는 것은 점점 더 현실에서 멀어지는 꿈이 되고 있지만, 전공의들은 환자의 편에 서서 양심적 진료의 가치를 지키며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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