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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구 공보이사 칼럼]굿 샷!
[각구 공보이사 칼럼]굿 샷!
  • 의사신문
  • 승인 2014.10.20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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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현 <송파구의사회 공보이사>

이수현 송파구의사회 공보이사
오늘이군… 아침 찬바람이 내 이마에 와 닿는다. 크게 기지개를 펴고 어스름한 하늘을 바라보니 “음, 오늘은 날씨가 좋을 것 같군”

와, 굿 샷!

눈이 부시도록 푸르른 잔디 위로 새하얀 공이 마음껏 날아간다. 나의 일주일 간의 찌들린 마음이 한순간에 창공으로 날아가는 것 같은 이 느낌…. 푸르다 못해 오히려 눈이 부신 파아란 하늘과 땅.

운동을 시작한지 꽤 수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전날은 잠을 설친다. 아직은 깜깜하다고 해야 할 새벽에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벌떡 일어나니 잠이 잘 깨지를 않는다.

세수하고 면도하고 침대를 보면 아내가 없다. 벌써 일어나 식사준비를 하고 있다. 오늘 같은 날은 더욱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이 별 볼일 없는 남자에게도 챙겨주는 아내가 있다. 하하!

평소 아침 출근 때는 먹는 둥 마는 둥이지만 오늘은 거뜬하게 한 그릇을 비우고 아메리카노 한잔을 들고 문을 나선다.

동도 트기 전에 출발하여 상쾌한 공기를 마시며 고속도로를 어스름 속에 달리다보면 가끔 날씨 좋은 날은 새벽의 여명이 이토록 아름답다.

잠시 안전한 곳에 차를 세우고 고개 들어보면, 구름사이로 고개 내민 해는 태초에 천지에 마음 놓아 울듯이 사방에 그 기운이 힘차게 내비친다. 호곡장이라… 연암이 말했던가…

저 태양도 나처럼 슬퍼도 울고 기뻐도 울고, 분해도 울고 외로워도 울고 행복해도 울고 너무 사랑해도 울까. 가끔은 울지 않을 때는 어떤 연유가 있었을까? 저렇게 줄기차게 뻗치는 울음은 또 어떤 까닭일까?

그만 감동하고 다시 출발.

약 20분 뒤면 골프장에 도착할 것 같다. 왠지 오늘은 느낌이 좋다. 매번 그런 느낌이 안든 적도 사실은 없었다. 그래도 오늘만은… 머릿속에 계속 주문을 걸면서 다짐 또 다짐한다.

드디어 입구에 들어선다.

더위에 지친 시퍼른 초록 잎들이 고개를 빳빳이 쳐들 준비를 하고 있다. 뻗쳐 나오는 태양의 울음들을 맞으며 들으며 하늘을 향해 오늘만은 자라 보겠다는 듯이. 하지만 나는 그 위에 새하얀 공을 올려놓고 느낌 좋은 샷을 하고 싶다.

옷 갈아입고 앞 팀이 티샷 하는 동안 우리는 캐디의 안내에 따라 몸 풀기, 허리 돌리고 어깨 돌리고, 오늘은 뭔가 조짐이 좋다. 너무 잘 돌아간다.

첫 홀은 파 5 긴 홀.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전망이 끝내주는 홀이다. 저 하늘 높이 내 공을 멀리 멀리 보내리라 다짐을 한다.

순서 정하기에서 1번을 뽑았다. 잔잔한 티잉 그라운드 잔디위에 티를 꼽고 어드레스, 힘차게 어께를 돌려 고개 들지 말고 체중이동을 하면서 `딱' 찬란한 눈물을 사방으로 쏟아내는 저 태양을 향하여 새하얀 공이 하늘로 하늘로 솟구친다. 굿 샷 굿 샷, 사방에서 팔방에서 짝짝짝. 후후, 그럼 그럼.

4명이 모두 페어웨이에 잘 안착 되었고, 나는 곧이어 서로 지지 않을려는 듯 고개 쳐드는 잔디위의 새하얀 공을 향해 두 번째 샷을 날렸다. `틱' 쪼르륵. 아!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든다. 얼른 주워 와서 다시 한 번 치고 싶다는 내 심연에서 우러나오는 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이미 공은 채 50m도 못가서 서 있다. 에구… 하는 수 없지. 오비(out of bounds) 안난게 어디야, 좀 멀기는 하지만 3번째는 그린 온을 시켜보자. 그러면 파로 막을 수 있다 후후. 갑자기 자신감이 충만한다. 방금의 쪽 팔림은 어디가고 어깨에는 다시 힘이 잔뜩 들어간다. 내가 느껴질 정도로.

공 뒤에서 연습스윙을 두 차례 한 뒤 방향 잡고 공 옆에 서서 고개 들지 말고 어깨돌림을 이용하여 `쉭' 아, 감이 좋다 생각하고 고개 들어보니 공은 왼쪽을 향한다.

벙크. 아직은 이른 아침이라 모레는 물을 머금고 점잖은 체를 한다.

발로 비벼보니 꽤나 단단하다. 샌드웨지로 바닥을 슬쩍이라도 한번 쳐 보고 싶은 꿀떡같은 마음이 들지만 골프는 나와의 경기, 절대 나를 속여 규칙 위반은 안 된다고 마음을 다스리고.

다리를 구부려 상체를 낮추고 클럽의 페이스를 열고 공보다는 5cm뒤의 모레를 떠낸다는 생각으로 `샷' 하는 순간 뭔가 이상하다.

공은 벙크 탈출은 했으나 떼구르르 굴러 반대편까지 야속하게도 잘도 굴러 간다. 다시, 왼 발에 체중 70%, 후후 이거는 내가 잘하지 하고 칩샷을 시도했으나 축축한 그린은 생각보다 구르지를 않는다 뒤땅. 아! 결국 첫홀은 더블보기를 기록하고 다음 홀로 향하는 나의 발걸음은 가볍지가 않다.

골프의 핑계는 수백만 가지라고 했던가, 오늘은 무슨 핑계를 대야할까?

“몸이 안 풀렸나?, 어제 밤에 술을 마셔서?, 허리가 아프네?, 주변이 시끄럽군!, 운전을 너무 무리하게 했어!, 잠을 푹 못 잤어!”

단지 십 수분이 지났을 뿐인데 벌써 `골프는 스코어가 아냐, 일요일 밀린 운동도 하고 맘 맞는 동반자들과 웃고 즐기고 걸으면서 야외에서 오전을 보내는 것이 중요한 거야'로 바뀐 나의 마음가짐에 스스로 깜짝 놀란다.

하지만, 이 어찌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 넓은 초원, 맑은 공기, 시원한 바람, 멋진 동반자들. 골프는 나의 멘탈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모든 생활의 멘탈이다. 언제나 주변에 영향을 받고 그로인한 신경을 안 쓰려 해도 내 몸이 반응한다. 골프는 나와의 경쟁이 아니라, 내 인생의 경쟁을 작게나마 줄여주는 삶의 활력소다. 운동하는 동안 가끔은 내 마음의 병도 치유되고 혼자만의 많은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인생의 동반자라는 생각도 든다.

내가 이렇게 사랑하는 골프를 언제까지나 건강하게 좋아하는 친구들과 굿샷을 외칠 수 있기를 오늘도 가슴 깊이 담아본다.

그렇게 저렇게 18홀을 마친 뒤 따뜻한 물속에서 몸을 좀 녹이고 아쉬웠던 몇몇 샷들을 동반자들과 떠들고는 무거워진 눈꺼풀을 들어 올려가며 집으로 향한다.

또 다른 하루가 시작되고 아침에 눈 뜨고 출근하면 하루 종일 만나는 사람마다 좋은 소리는 별로 못 듣는다. 그래도 가끔은 좋아졌다는 환자들을 보면 기분은 나아지지만.

사소한(?) 실수도 용납 하지 않는, 환자들에게 사소한 실수도 해서는 안 된다는 나의 강박 속에서 한마디 한마디를 반드시 생각해서 해야 되는 하루 일과는 골프와 같다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골프는 못 쳐도 된다, 또 치면 되고, 3번에 온 그린 안 되면 4번에 하면 된다. 인생이 이런 것일까? 하지만 인생에는 연습이 없지 않나? 항상 마음에 좋은 생각만 하자고 되새기면서도 안되는 게 인생일까?

사람의 눈과 마음에 푸른색이 좋단다. 모두들 초록이 가기 전에 이토록 푸르름에 한번 맘껏 담가 보자. 다음 주는 꼭 해내고 말리라! 하하하!

이수현 <송파구의사회 공보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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