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드비히 판 베토벤 서곡 〈레오노레〉 제3번 C장조 작품 72a
루드비히 판 베토벤 서곡 〈레오노레〉 제3번 C장조 작품 72a
  • 의사신문
  • 승인 2014.10.13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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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이야기 〈284〉

■베토벤의 이상형인 여성상을 그려

9개의 교향곡, 16개의 현악사중주, 32개의 피아노소나타과 함께 수많은 실내악곡, 협주곡, 가곡 등 모든 음악 장르에 방대한 작품을 남긴 베토벤이 일생동안 오페라는 단 한편만 남긴 것은 아이러니하다. 이러한 배경은 베토벤의 이상에 맞는 대본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던 중 프랑스 대혁명 직후 베토벤은 독재에 항거하는 민중들의 자유주의 정신에 공감하였다. 그는 많은 오페라가 즐겨 다루는 통속적인 주제보다는 프랑스 혁명으로 상징되는 자유, 평등, 박애의 메시지를 담을 수 있는 오페라를 원했다.

오페라 〈피델리오〉는 베토벤의 의지를 충실히 표현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한 정치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 원작은 케루비니의 오페라 대본을 맡았던 장 니콜라스 보울리의 연극 〈레오노레 혹은 결혼한 사랑〉을 바탕으로 하였다. 프랑스 투르지방에서 프랑스 대혁명 당시 유명한 정치단체인 자코벵의 한 회원이 감옥에 갇히자 그의 아내가 직접 남장을 하고 남편을 구출했다는 실제 사건을 근거로 하고 있다.

이를 토대로 한 오페라 〈피델리오〉의 줄거리를 보면, 18세기 스페인 세비야의 귀족 플로레스탄은 형무소장 피자로와 정치적 라이벌로 피자로의 사사로운 감정 때문에 국립형무소 지하실에 비밀리에 투옥되어 죽을 처지가 된다. 이 소식을 들은 그의 아내 레오노레는 남편을 구하기 위해 남장을 하고 이름도 `피델리오'라 하여 감옥 간수장의 집 사환으로 들어간다.

결국 그녀의 필사적인 노력 끝에 남편을 구해 낸다는 내용으로 즉 여자의 헌신적이고 충성스런 절개와 애정이 이 오페라의 주제인 것이다. `피델리오'는 영어로 `fidelity', 충실하다는 뜻으로 `배우자에게 충실하다'라는 뜻을 담고 있고 `지조 있는 남자'라는 뜻도 지니고 있다. 사랑하는 남자를 위해 용감하게 희생을 자청하는 레오노레의 모습은 베토벤이 평생 이상으로 삼았던 전형적인 여성상이었다.

연극 〈레오노레 혹은 결혼한 사랑〉은 1789년부터 빈에서 공연 중에 있었다. 비엔나극장 감독인 페터 폰 브라운으로부터 오페라 작품 청탁을 받은 베토벤은 죠셉 폰 존라이트너에게 대본을 부탁하여 1804년 3막으로 완성하였다. 초연한 지 2주가 지나지 않아 나폴레옹이 이끄는 프랑스군이 빈으로 쳐들어와 많은 시민들이 빈을 떠나 피난한 상황에서 오페라는 단 3회만 공연되었다.

그 후 작품이 너무 길다는 친구의 충고를 받아 1806년 스테판 폰 브라우닝이 대본을 맡아 오페라를 2막으로 축소 개정하였다. 하지만 베토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 두 번째 오페라의 초연은 첫 번째보다도 더 참패를 맛보게 되어 베토벤이 극장매니저와 심하게 다툰 후 오페라는 무대에서 내려진다. 그 후 베토벤은 그의 나이 44세인 1814년 10년 만에 이 작품을 마지막으로 개작하게 되는데 이것은 청탁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그 스스로 원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개작한 제3판은 게오르규 프리드리히 트라이치케의 대본으로 완성하였다. 그 결과 〈피델리오〉는 오페라 역사상 가장 충실한 내용으로 `인간승리'라는 이상을 구현하여 베토벤 이상주의에 한 획을 긋게 된다.

오페라 〈피델리오〉에는 1805년 초연 때 연주된 제3막의 서곡인 〈레오노레〉서곡 제2번, 1806년 개작 후 상연된 제2막의 서곡인 〈레오노레〉서곡 제3번, 1814년 다시 마지막으로 개작한 후 상연된 제2막의 서곡인 〈피델리오〉서곡이 있으며, 1832년 베토벤 사후 출판된 유작의 〈레오노레〉서곡 제1번까지 총 4개의 서곡이 있다. 어떤 판본도 처음에 완성된 모습을 그대로 가지고 있질 않고 반 이상이 복잡한 개작과정 때문에 마지막 판본을 마치고 베토벤은 〈피델리오〉는 앞에 발표된 판본들과 혼동돼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런 배경으로 많은 공연에서 최종 판본인 오페라 〈피델리오〉를 연주하고 있다. 베토벤 사후에 오페라 〈피델리오〉를 연주하는데 새로운 관습들이 생겼는데 1841년 오토 니콜라이는 〈레오노레〉서곡 제3번을 2막 시작 직전에 연주했으며, 1849년에 칼 안슬츠는 2막의 마지막 장면사이에 넣어 연주했는데 1904년에 말러는 이 전통을 따랐다. 한편 코트리드 바그너는 〈레오노레〉서곡 제3번을 오페라가 끝난 후 연주하기도 했다.

■들을만한 음반: 빌헬름 푸르트벵글러(지휘),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짤츠부르그 공연실황(EMI, 1950); 페네크 프린차이(지휘),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DG, 1955);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지휘),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DG, 1976); 브루노 발터(지휘), 컬럼비아 심포니오케스트라(CBS, 1954)

오재원 <한양대구리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 이 클래식이야기 전편은 오재원 작 `필하모니아의 사계'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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