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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구 공보이사 칼럼]연명 의료에 대한 단상
[각구 공보이사 칼럼]연명 의료에 대한 단상
  • 의사신문
  • 승인 2014.09.29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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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훈 <강서구의사회 공보이사>

유승훈 강서구의사회 공보이사
최근 부고가 자주 들려온다. 대부분이 친구들의 부모상인데, 조문을 가서 이야기를 들어보면 암으로 운명을 달리하신 분들이 제법 많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조문객들끼리 말기암 치료에 대해 이야기를 하게 되고 몇 년 전에 비해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연명의료를 거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우리나라에서 연명 치료와 관련하여 커다란 사건 두 가지가 있었는데, 그 중 하나는 1997년의 보라매 병원 사건이고 다른 것은 2009년 판결이 난 김할머니 사건이다. 보라매 병원 사건의 경우 2004년 대법원에서의 최종 판결이 연명 의료를 중단한 의료진에게 살인 방조죄로 나오면서 전체 의료계를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이에 비해 김할머니 사건에서는 병원측의 연명 의료 연장을 거부한 가족의 손을 들어주었다. 비슷하면서도 다른 판결이 나온 것은 법원의 판단 기준이 연명 의료를 했을 때 해당 환자가 더 살 수 있는지 없는지 여부였던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김할머니 사건으로 대법원도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해결하기위해 제도화를 권고하고 나섰다.

2013년 국가생명윤리위원회 산하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 제도화 논의를 위한 특별위원회'에서는 여러 번의 논의를 거쳐 몇 가지 용어를 정리하여 발표하였다. 그 동안 사용되고 있던 `무의미한'이라는 단어 자체가 가치중립적이지 않다고 하여 빠졌다. 또한 `연명치료'라는 표현도 치료를 하지 않겠다는 것은 비윤리적인 것으로 해석이 가능하여 치료라는 단어 대신 `연명의료'라고 표현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들은 2014년 9월 현재까지는 법률적으로 정리되지는 않고 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사회적으로 동의를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입법기관인 국회의 무능력도 한 몫을 할 것이다.

사실 연명치료라고 표현을 하든 연명의료라고 표현을 하든 상관없이 제일 중요한 것은 환자 스스로의 선택이라는 생각을 한다. 인간이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 있듯이 존엄하게 죽을 권리가 있다는 생각이다. 현대 의학으로 해결 되지 못하는 질병에 걸렸을 때 자연스러운 질병의 진행 과정에 대해 의료진에게 충분히 설명을 받고 나서 스스로 결정을 할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그래서 치료 과정에서 환자가 어디까지 선택을 할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있어야할 것이다.

다만 이런 결정은 사회적으로 본인의 죽음에 대해 좀 더 일찍 고민하고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이런 면에서 김할머니 사건은 빠른 속도로 노인 인구가 늘어가고 있는 우리 사회에 죽음의 준비에 대한 고민을 던져준 계기가 되었다.

환자 스스로 자신의 질환에 대한 치료 방법을 선택하게 한다는 주장에 대해 간혹 그럼 자살도 인간의 선택으로 받아 들여야 하느냐는 질문이 생길 수 있다. 둘 다 죽음이라는 결과물은 같을 수 있을지 몰라도 우리가 고민하고 논의하는 것은 임종기 환자에 대한 것이고 임종기 환자라는 것은 현대 의학으로 더 이상의 원인 치료가 불가능한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기에 비교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여겨진다. 현재 연명의료 논의는 식물인간인 상태를 제외하고 이루어지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최근 보건복지부에서 그 동안의 논의를 국가생명윤리정책위원회에 보고하면서 `한국환자단체연합회'가 연명의료 결정 법제화보다 호스피스 완화의료 환경조성이 더 시급하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한다.

뉴스에 의하면 `연명의료 결정 법제화 논의가 의사, 병원, 국민건강보험공단, 환자가족의 임종기 환자에 대한 의료적, 경제적, 도덕적 책임을 벗어나게 해주는 하나의 면피용이 아니라 호스피스 완화의료 환경조성과 함께 환자가 존엄하게 죽을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도화선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일면 타당한 지적이기도 하다. 다만 현대 사회에서 의료도 하나의 법적인 계약 관계라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연명의료에 대한 법률적인 정리가 필요한 시점이라 생각된다.

마지막으로 더 깊이 고민해야하는 문제는 유소아 환자와 무연고 환자일 것이다. 아직 성숙한 판단을 내릴 준비가 안 된 미성년자는 가족들이, 주변에 가족이 없는 환자들은 독립된 위원회에서 결정을 하는 안이 준비되고 있다고 한다. 그런 결정을 내릴 가족들의 심리적 고통을 생각하면 나중에 책임감으로 인한 정신과적인 문제도 고려해야 할 것이며, 독립된 윤리 위원회를 각 병원에서 구성을 한다고 하더라도 시간적인 여유가 없는 상황이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과연 효율적인 대응이 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더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어떤 소설에서 인생이란 살아가는 것, 살아지는 것, 사라지는 것이라는 구절을 본 기억이 있다. 청명한 가을에 죽음에 대해 생각을 한다는 것이 그리 즐거운 일은 아니지만 잘 사는 것만큼 잘 죽는 것도 인생의 중요한 일이며 나의 죽음에 관련한 일련의 과정들이 남은 가족의 삶의 질적인 면에서 중대한 일이니 만큼 깊은 성찰과 고민과 결단이 필요할 것이다.

“죽음을 찾지 말라. 죽음이 당신을 찾을 것이다.
그러나 죽음을 완성으로 만드는 길을 찾아라.”
- 함마슐트-

유승훈 <강서구의사회 공보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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