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스 라벨 〈쿠프랭의 무덤〉
모리스 라벨 〈쿠프랭의 무덤〉
  • 의사신문
  • 승인 2014.09.22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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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이야기 〈281〉

■수려한 멜로디로 프랑스 전통과 문화에 경의

라벨은 〈쿠프랭의 무덤〉 악보의 첫 페이지에 제1차 세계대전에 희생된 이들에 대한 헌사를 적어놓았다. 일반적인 관례상 작곡가들은 살아있는 지인이나 연인, 귀족, 황제에게 자신의 곡을 헌정을 하였다. 하지만 라벨은 전장에서 함께했던 동료들에게 각각 헌정하였다.

이 곡은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후 1915년경 스케치되었지만 라벨이 자원입대를 한 탓에 전쟁이 끝난 뒤에야 완성되어 1917년 말 출판되었고 2년 뒤 마르그리트 롱에 의해 초연되었다.

작품이 출판된 1917년 라벨은 그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이 충격에서 평생 벗어나지 못했다. 이 작품에서 배어나오는 `무덤'이라는 제목은 선배 작곡가들, 전장의 동료, 어머니를 포함하여 먼저 세상을 떠난 모든 프랑스인들에 대한 추모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피아니스트 알프레드 코르토는 이 작품에 대해 “그 어떠한 영광스러운 기념물도 명료함과 유연함을 동시에 머금고 있는 이 빛나는 멜로디와 리듬들보다 프랑스에 대한 추억에 더 높은 경의를 표할 수 없다. 프랑스의 전통과 문화에 대한 실로 완벽한 표현이다”라고 묘사한 바 있다.

이 곡은 프랑스의 바로크 작곡가 프랑수아 쿠프랭의 모음곡 형식으로 18세기 프랑스음악에 대한 경의를 표한 작품으로 프렐류드, 푸가, 포를랑, 리고동, 미뉴에트, 토카타와 같은 고전적인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당시 높은 인기를 얻었던 이 작품은 1919년 작곡가 자신에 의해 푸가와 토카타를 제외한 나머지 네 곡을 오케스트라 버전으로 편곡하기도 했다.

이 작품은 자유로움에 대한 진지하면서도 예리한 자아성찰을 담고 있는 곡으로 간결하지만 그 안에 완벽한 내적 완결성과 리듬에 대한 정확한 분석을 담고 있는 걸작이다. 라벨은 이 마지막 피아노 작품을 통해 자신만의 독창적인 피아노 미학에 대한 굳은 신념과 더불어 신고전주의에 대한 관점과 참담한 현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내면의 반영을 완벽하게 보여주었다.

△제1곡 Pr<&25061>lude. To the memory of Lieutenant Jacques Charlot 섬세한 무궁동 형식으로 평탄한 터치와 박자를 요구한다. 거품처럼 방울방울 솟아나는 선율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

△제2곡 Fugue. To the memory of Jean Cruppi 라벨이 화성법에서 벗어나 작곡한 유일한 작품으로 바로크풍의 수수께끼와도 같은 푸가다. 이 푸가의 마지막 부분은 태엽식 뮤직박스가 작동을 멈추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라벨 특유의 무균질적인 결벽증과 탐미적인 현대화를 통해 상상의 고풍스러운 세계를 반영하듯 이 푸가는 연약하지만 강렬한 흡인력을 발산하고 있다.

△제3곡 Forlane. To the memory of Lieutenant Gabriel Deluc 이탈리아 춤곡(Frioule)형식의 활기찬 리듬으로 기쁨을 표현한다. 라벨이 활동하던 당시 포를랑은 탱고와 더불어 가장 대중적인 춤곡으로 널리 퍼졌던 만큼, 쿠프랭의 무덤에 바치는 새로운 시대의 무곡으로서의 성격을 띠고 있다. 첫 주제에 등장하는 연속적인 리듬은 미묘한 역동성을 띠는 동시에 매력적인 분위기와 함께 퇴폐미도 은유적으로 드러난다. 두 번째 주제는 냉정하고 세 번째 주제는 순결하며 네 번째 주제는 호전적이다. 화성에 대한 라벨의 특별한 감수성이 드러나고 있다.

△제4곡 Rigaudon. To the memory of Pierre and Pascal Gaudin 전원적인 성격이 강하게 드러나는 춤곡으로서 중간에 순진하면서도 천진난만한 트리오가 나타난다. 코르토는 이 춤곡을 샤브리에의 마을 사람들의 춤에 비교하기도 했다.

△제5곡 Menuet. To the memory of Jean Dreyfus 이 곡의 귀족적인 분위기는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와도 흡사하다. 곡 중간에 등장하는 뮤제트에서는 고아한 선율을 유지하다가 갑작이 응축된 클라이맥스의 힘을 발산한다. 이어지는 우아한 리듬으로 깊은 감동을 느낀다.

△제6곡 Toccata. To the memory of Captain Joseph de Marliave 〈밤의 가스파르〉를 연상시키는 화려하고도 기교적인 작품이다. 18세기 프랑스 음악전통에 대한 경의보다는 리스트에 대한 존경을 담고 있다. 그 현란함 가운데에서 등장하는 비극적인 암시와 군대의 행진을 연상케 하는 진행은 이 작품이 전쟁에서 쓰러져간 전우에 대한 헌사를 담고 있음을 상기시킨다. 라벨 특유의 섬세함과 바로크 양식 특유의 구축력이 빚어낸 이 비르투오소적인 향연은 승리를 약속하는 듯한 폭발적이고도 진취적인 리듬의 코다를 마지막으로 막을 내린다.

■들을만한 음반: 에른스트 앙세르메(지휘), 스위스 로망드 오케스트라(Decca London, 1960); 장 마르티농(지휘), 프랑스 국립방송오케스트라(EMI, 1974); 샤를 뒤투아(지휘), 몬트리올 심포니 오케스트라(Decca, 1983); 상송 프랑수아(피아노)(EMI, 1966); 블라도 페를레무터(Nimbus, 1984)

오재원 <한양대구리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 이 클래식이야기 전편은 오재원 작 `필하모니아의 사계'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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