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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구 공보이사 칼럼]와류(渦流)
[각구 공보이사 칼럼]와류(渦流)
  • 의사신문
  • 승인 2014.09.15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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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규 <동작구의사회 공보이사>

이영규 동작구의사회 공보이사
얼마 전 오랜만에 극장가를 찾아 인기 절정의 `명량'을 보았다. 이미 익숙한 내용이라 새로울 것은 없겠지만 세월호로 무거웠던 마음을 조금은 위로 받고 싶었다. 입구의 포스터를 보며 큰 기대 없이 자존심 상한 한국의 이미지를 세탁해보고자 편안한 마음으로 관람했다.

128분 동안 김한민 감독이 만든 배를 타고 울돌목 앞바다에서 왜선과 직접 싸우기도 하고 소용돌이(와류;渦流) 속에서 침몰 직전인 대장선을 백성과 함께 민선을 타고 힘을 쓰며 구하는 카타르시스를 경험했다. 이렇게 몰입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해야 할 일이 많은 지금의 환경 속에서 무기력한 내 모습을 탈피하고 싶어서였는지 모른다. 감독이 인터뷰에서 말했듯이 위기에 처한 나라를 자기희생, 솔선수범, 좌절된 상황을 승리로 역전시킨 `힘'의 영웅을 기다리는 마음이다.

요즘 개원가의 화두는 현 의료 환경 속에서의 어떻게 생존할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로 가슴이 답답하다. 과거 선배님들처럼 미술이나 음악 혹은 여행 이야기로 여유로운 삶의 모습이면 좋겠지만 모두 생존의 문제로 벙어리 냉가슴을 앓고 있어 누구에게도 여유를 찾기는 힘들어 보인다.

의료계는 2000년 8월 1일 시행된 의약 분업 이후 의사들은 기존의 자존심을 내려놓고 뼈를 깎는 아픔으로 진료실을 지켜왔다. 단지 경제적인 문제만은 아니다. 정부의 여반장 같은 정책에 끌려가고 언론에서 매도되기 일 수였다. 수차례 바뀐 수뇌부는 회원 간의 갈등만 고조 시키고 늘어나는 회원 수는 서로 제 살 깎기 하고 있으니 지금의 상황이야말로 의선(醫船)이 와류에 휩쓸려 곧 침몰 할 것만 같은 느낌이다.

와류란 흐르는 유체가 마찰에 의해 유속에 방해가 될 때 나타나는 소용돌이 현상으로 자유 와류(free-vortex)와 강제 와류(forced-vortex)가 있다. 자유 와류는 자연 현상에 의해 생기는 기류나 해류에서 볼 수 있고 강제 와류는 외부의 압력에 의해 생기는 것이다. 오늘날의 의선(醫船)이 마주한 와류는 정부의 개입에 의해 생긴 강제 와류이다. 이런 강제 와류에서 빠져 나오기란 우리의 힘만으론 어렵다. 포기하고 끌려가던가, 아니면 원인 제공의 힘을 멈추게 해야만 한다.

`명량'의 인상적인 장면이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다. 이순신 장군이 승선한 대장선이 와류에 휩쓸려 침몰 직전의 위기에 처하였다. 그 모습을 육지에서 지켜보던 백성들이 민선을 끌고 와 자기의 배 보다 수십 배나 더 큰 대장선을 구한다. 장군은 이런 백성의 도움을 천행이라 하셨다.

지금 우리의 경우도 비슷하다. 우리의 의선을 구해줄 후원자를 만들어야한다. 의료계가 합심해서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빠져 나오기에는 너무 힘들고 어렵다. 대장선을 구하던 민선은 없을까? 환자와 의료계 식구들이 우선 생각난다. 장군이 백성을 감동시켰듯이 그들을 감동시켜야 된다. 힘들겠지만 의료행정을 담당하는 부서와 대화하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의사가 환자를 감동시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처럼 생존을 위협받고 있는 어려운 환경에서 희생을 요구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이젠 어느 정도 환자들도 느끼고 동정하고 있다. 외국과 비교도 안 되는 저렴한 진료비, 앞서가는 의료 시설, 친절한 서비스 정신, 새로운 정보의 네트워크 등. 환자들 스스로가 자기를 진료해 주고 있는 지금의 병·의원이 없어지면 절대 안 된다고 생각하게끔 만들어야한다. 우려스러운 것은 비 의료행위나 과잉 진료로 환자의 신뢰를 잃어버릴까 걱정이다. 어떤 행위이든 환자를 위한 것이라면 감동 할 것이다. 물론 의료관계자들도 공감할 것이라 믿는다. 쉬운 것은 없다.

더욱이 소용돌이에 휩쓸린 배를 건져 내는 일이니 천행이 아니면 어려울 것이다. 그래도 희망적인 것은 어려운 가운데에도 한국 의료 수준은 세계의 환자가 몰려 올 정도로 발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늘도 묵묵히 진료실을 지키는 우리 선생님들에게 천행의 소식이 들려오길 기대한다.

이영규 <동작구의사회 공보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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