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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스 라벨 〈라 발스〉
모리스 라벨 〈라 발스〉
  • 의사신문
  • 승인 2014.09.01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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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이야기 〈279〉

■화려한 왈츠의 이면에 감춰진 암울한 세기말적 광기 분출

평소 빈의 요한 슈트라우스를 흠모하였던 라벨은 마침 1905년 디아길레프가 이끄는 러시아 발레단 `발레뤼스'의 위촉을 받아 발레음악에 착수하게 된다. 그는 슈트라우스에 대한 경의를 표하고자 빈의 궁정무도회를 소재로 한 화려하고 우아한 빈 왈츠의 영광을 찬양한 작품을 계획하게 된다.

그 발상이 더 구체화되어 10년 후 1914년에는 〈빈〉이라는 교향시를 작곡할 계획까지 세웠으며, 같은 해에는 `안무가 담긴 시'라고 불리는 발레곡 〈라 발스〉를 발표하였다.하지만 디아길레프는 이 작품에 대해 “걸작이지만 발레음악이 아니라 발레 장면을 그린 삽화여서 발레로 무대에 상연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며 안무를 거부했다.

실망감을 금치 못한 라벨은 나중에 디아길레프를 만난 자리에서 악수를 거절했고 두 번 다시 그를 만나지 않았다. 1920년 12월 라벨은 이 작품을 관현악곡만으로 파리 라무뢰 연주회에서 초연하게 된다. 그 후 이 작품이 발레로 상연된 것은 1929년 루빈스타인 발레단의 니진스키 안무로 파리 오페라 극장에 〈볼레로〉와 함께 올랐다. 훗날 관현악곡 〈라 발스〉를 두 대의 피아노 또는 피아노 독주를 위해 작곡자 자신이 직접 편곡하여 1920년 빈에서 알프레드 가셀라와 함께 두 대의 피아노 버전으로 초연하였다.

1919년 제1차 세계대전 발발은 라벨에게는 매우 큰 충격이었다. 세상에 대한 혐오, 고독, 우수의 심연 속으로 빠져들면서 그의 얼굴에서는 미소가 사라지게 된다. 이런 시기에 〈라 발스〉가 완성된다. 이 곡에서 빈 왈츠의 리듬은 처음엔 안개가 낀 것처럼 희미하게 보이다가 나중엔 용솟음치듯 폭발한다. 왈츠의 이면에 감춰진 암울한 세기말적 광기가 전면에 분출한다.

안개와 번개가 교차하면서 다채로운 음색이 빚어내는 우아함으로 라벨 특유의 세련된 우수의 매력을 분출한다. 빈 전통 왈츠에 화려함을 가미하여 자신의 개성으로 채색한 작품이었다. 그는 자신이 쓴 `자전소묘'에서 “〈우아하고 감상적인 왈츠〉는 슈베르트의 왈츠를 따르려 했던 것이고, 〈라 발스〉는 요한 슈트라우스의 왈츠를 따르려고 했던 것이었다.”라고 토로하였다.

라벨은 악보 첫 페이지에 발레의 시나리오를 이렇게 적어 두었다. `소용돌이치는 구름 틈새로 춤추는 남녀들이 보인다. 구름이 조금씩 흩어지면 큰 홀에서 빙빙 돌면서 춤추는 사람들이 나타난다. 무대는 점점 밝아지고 샹들리에 빛이 포르티시모로 작열한다. 1855년경의 오스트리아 황제의 궁전이다.' 상징주의 소설가 에드가 앨런 포의 〈붉은 죽음의 가면〉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가장 기괴하고 화려한 가면무도회… 그 방탕하고 화려한 연회가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이 때문에 일부 학자는 이 작품과 연관성을 지적하기도 한다. 한편 작곡가 카셀라는 이 곡을 `왈츠의 탄생', `왈츠', `왈츠의 예찬'의 세 단계로 나누고 있다.

전반적으로 〈우아하고 감상적인 왈츠〉의 주제가 서로 관련성이 있는 독립된 7개의 왈츠와 그것을 회상하면서 마무리하는 에필로그의 왈츠로 이루어져 마치 하나의 교향시를 이룬다고 언급했다. 도입부는 낮고 거친 베이스 맥박과 같은 울림으로 시작하여 점점 쾌활해지며 여러 에피소드들을 거치면서 진행한다. 다시 전형적인 왈츠 리듬을 거쳐 파괴적이고 난폭하게 발전한다. 어둡고 극적인 이야기를 `관현악의 마법사'답게 속도와 타이밍을 조절하며 매력적으로 그려낸다.

서주: 단편적인 음형들로 정돈되면서 2개의 주제가 기본 악상을 형성하게 된다. △제1에피소드: `저음 선율을 앞세워 제1주제가 등장하면서 이어 현악기의 제2주제가 나타나 점점 상승하였다가 끝을 맺는다. △제2에피소드: 제1주제를 중심으로 전개하며 발전된다. △제3에피소드: 리듬감을 살리기 위해 금관-타악기가 집중적으로 등장한다. △제4에피소드: 전반의 주제는 새로운 선율을 도입해 다음 에피소드로 연결한다.

△제5에피소드: 앙상블 전체가 강하게 악센트를 주면서 곡의 리듬을 한껏 살린다. △제6에피소드: 제4에피소드를 변형시켜서 강하게 진행되었다가 다시 가라앉는다. △제7에피소드: 제6에피소드에 대응하는 악상으로 시작하여 강하게 이어지다가 연결악구가 호른을 중심으로 진행하게 된다. 재현부(에필로그): 여러 에피소드 주제들을 회상하면서 작은북과 심벌즈가 등장하고 첼로와 베이스 클라리넷, 비올라와 클라리넷, 제2바이올린 순으로 점점 악기들이 가세하면서 곡의 최고조에 다다른 후 막을 내리게 된다.

■들을만한 음반: 에른스트 앙세르메(지휘) 스위스 로망드 오케스트라(Decca, 1963); 앙드레 클뤼탕스(지휘), 파리음악원 오케스트라(EMI, 1961); 샤를 뮌쉬(지휘), 보스턴 심포니오케스트라(RCA, 1962); 장 마르티농(지휘), 파리 오케스트라(EMI, 1974)

오재원 <한양대구리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 이 클래식이야기 전편은 오재원 작 `필하모니아의 사계'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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