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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의사산악회, 지리산 반야봉을 다녀와서
서울시의사산악회, 지리산 반야봉을 다녀와서
  • 의사신문
  • 승인 2014.08.01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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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영석 <연세우리내과의원>

구영석 원장
힘든 하산길, 마음에 여유 가지니 자연과 동화

■산행일자: 2014년 7월 13일 (비, 흐린뒤 갬).
■산행지: 전라남도 구례군 반야봉(1732m)
■산행코스: 성삼재휴게소(1102m)-노고단대피소-노고단고개-임걸령-노루목-반야봉-삼도봉-화개재-뱀사골-반선마을

이번 주, 두 아이의 시험이 다 끝나고 나도 긴장감이 풀어지면서 몸에 많은 피로가 몰려왔다. 또한 이번 토요일은 처남네 집들이 가는 날이다. 긴긴 공부와 지방의 한 국립대에서 몇 년 간의 연구교수 생활을 거쳐서 이번 학기부터 길병원에서 정교수로 자리를 잡은 것이다. 인천 송도에 있는 집은 이제 막 개발되어 큰 아파트와 건물들이 막 들어서거나 지금도 공사가 한창이었고 아파트 단지에 숲과 개구리 울음소리가 인상적이었다.

다음 날 새벽 일찍 일어나서 지리산 산행을 다녀와야 하는 터라 약간의 긴장과 설렘이 있었다. 처남 집에서 저녁을 먹고 주변에 산책을 다녀 온 후에 차 한 잔 마시고 출발했는데도 집에 오니 자정이 다되어 있었다.

오전 4시30분. 아침 기상. 늘 하던 습관대로 일어나자마자 아침을 먹고 배낭을 메고 집을 나섰다. 근처 편의점과 깁밥집에서 물이랑 음료수를 사서 출발 장소로 택시를 탔다.

서울시의사산악회의 훈련 산행에 참가 하는 것은 이번이 두 번째이다. 지난 소백산 산행 때는 사실 인사성도 별로 없고 먼저 말 거는 주변머리가 없어 산에서 혼자 걷게 될 것 같아서 삼진제약 이진성씨에게 부탁해서 같이 갔는데 오늘은 혼자 걸을 것 같다. 그런데 내 병원 맞은편에 있는 박상혁 원장님이 타는 게 아닌가? 역시 연재성 회장님이 마당발이어서 산에 오시게 된 것 같다.

박상혁 선생님도 지치도록 열심히 일만 하고 사셨으니 나처럼 이젠 뭔가 그리운가보다. 지리산까지는 거리가 멀어서 오늘은 오전 6시에 버스 출발. 자다 깨다 반복하다 보니 차는 어느새 굽이굽이 산길을 오르고 있다. 가랑비가 내리고 있다. 생각보다 도로에 차가 없었던지 오늘 산행의 시작점인 성삼재에 좀 일찍 도착하게 될 것 같다.

지리산 성삼재는 지리산 능선의 서쪽 끝에 있는 고개로 1102m이다. 옛날 삼국시대 마한때 성씨가 다른 세명의 장군이 지켰던 고개라 하여 성삼재라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즉 정령치, 팔랑치, 황령치의 서북능선으로 이어지는 시작 지점인 것이다. 고갯마루에는 주차장과 휴게소, 전망대가 있었다. 성삼재를 기점으로 하여 동쪽으로 노고단-임걸령-삼도봉-토끼봉-명선봉-형제봉-촛대봉-연하봉-제석봉-천왕봉의 지리산 주봉우리들이 연결되어 있다.

우비를 입기에는 너무 더워서 땀으로 젖을 것 같고, 그냥 오르기도 애매하게 비가 내려 어쩔까 망설이고 있는데 조해석 등반대장님이 그냥 오르는 게 좋겠다고 하신다. 산에 다녀올 때마다 까맣게 그을어서 외래 환자분들이 살짝 놀리고는 하는데 땡볕보다는 차라리 잘된 일이다 싶었다. 빗줄기가 더 굵어지지 않기만 바랬다. 초보가 장대비를 맞으며 산을 타는 것은 아직 부담스러운 일이니까. 30분쯤 가볍게 걷기 시작하니 노고단 대피소 푯말이 바로 나타난다. 오늘은 피곤해서 선두 그룹을 쫓아가지 말고 중간쯤에서 따라갈 생각이었는데 걷다보니 앞의 일행과 함께 가고 있었다. 걸음 속도도 임의로 조절하기는 어려운 일인가 보다.

노고단 대피소에서 가볍게 휴식을 취하고는 다시 출발하여 좌측으로 난 돌길을 따라 올라가니 노고단고개에 도착하였다. 노고단 정상은 이미 와 본 분들도 많았고 다시 되돌아와야 한다는 점, 구름덮인 날씨 때문에 산 아래쪽으로 아무것도 볼 수가 없어서, 몇 분들은 노고단을 가보고 싶어 하셨지만 오늘은 그냥 임걸령으로 향했다.

나는 노고단과는 두 번의 인연이 있다. 1995년 공중보건의 근무를 하던 보은군 탄부면 마을 청년회랑 같이 화엄사에서 노고단까지 네 시간 산행을 한 적이 있었는데, 산행 중에 꽉 막힌 산세에 전혀 풍경을 볼 수 없어서 너무 답답하고 지루했던 기억이 한번이고, 1996년에 2박3일로 지리산 종주를 했을 때가 그 다음이다. 지리산 종주 시작 날, 작은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고는 장지까지 다녀오는 나를 기다려 주느라 일행이 노고단에서 첫날밤을 보내게 되었고 나는 밤늦게 구례에 도착해서 노고단으로 넘어가는 트럭을 얻어 타고 밤길을 더듬어 산장을 찾아 갔던 기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덕분에 그 다음날 걸어가야 할 코스가 너무 늘어난 셈이라 무척 고생했었다. 그러고 보니 지리산 산행은 한 번도 수월했던 적이 없었구나. 오늘은 좀 조심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날은 조금씩 맑아지고 오솔길을 걷는 듯한 능선 길은 조금씩 긴장감을 누그러뜨렸다. 나를 제외한 일행은 버스 타고 오다가 휴게소에서 아침 식사를 하지만 난 그냥 습관적으로 일어나면 아침을 먹기 때문에 11시 좀 넘어서는 시장기가 돌고 좀 지쳤다.

임걸령에서 간단하게 식사를 하던 다른 등산객들이 우리 모습을 보고는 아래 계단으로 내려가면 물맛이 좋은 샘이 있다고 알려주셔서 샘물도 마시고 비상식으로 가져온 견과류를 먹으니 몸이 좀 나아지는 것 같았다.

임걸령은 노고단에서 반야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의 중간 지점에 있는 고개로 높이 1320m이며, 옛날에 임걸년이라는 의적이 은거하던 곳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꼬르륵 거리는 배를 달래가며 노루목에 도착하였다.

신나는 점심시간. 한해 한해 지날수록 더 쉽게 배가 고파지고 또 금방 배가 불러지고 이런 식으로 나이 든다는 걸 실감하게 되는 걸까? 간단하게 싸가지고 온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피로도 풀고 허기가 가라앉으니 기분도 좋아졌다. 이제 반야봉을 올라야지. 반야봉의 지명 유래는, 지리산에서 불도를 닦고 있던 반야가 지리산의 산신이면서 여신인 마고할미와 결혼하여 천왕봉에서 살았다는 전설에서 유래 되었다는 설과 어떤 영험한 스님이 뱀사골에 있는 이무기를 불도와 합장으로 쳐부수고 절의 안녕을 가져 왔다는 의미에서 반야심경에서 이름을 따 반야봉이라고 지었다는 설이 있다.

마고할미와 관련된 전설에 따르면 천신의 딸인 마고할미는 지리산에서 불도를 닦고 있던 반야를 만나서 결혼한 뒤 천왕봉에서 살았다. 슬하에 여덟 명의 딸을 두었는데 그 뒤 반야가 더 많은 깨달음을 얻기 위하여 처와 딸들을 뒤로 하고 반야봉으로 들어갔다. 마고할미는 백발이 되도록 남편이 돌아오지 않자 남편 반야를 기다리며 나무껍질을 벗겨서 남편의 옷을 지었다. 그리고 딸들을 한명씩 전국 8도로 내려 보내고 홀로 남편을 기다리다 나중에 지쳐 남편의 옷을 갈기갈기 찢어버린 뒤에 숨을 거두었다.

후에 사람들은 반야가 불도를 닦던 봉우리를 반야봉으로 불렀으며 그의 딸들은 팔도 무당의 시조가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 후 반야봉 주변에 안개와 구름이 자주 끼는 것은 하늘이 저승에서나마 반야와 마고할미가 서로 상봉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 전한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노루목에서 반야봉까지는 계속 가파르게 올랐다. 봉우리에서 내려다보는 아래는 운무에 가려서 시야가 썩 좋지는 않았다. 그러나 돌이켜보니 오늘 지리산 산행의 시작은 이제부터가 시작이 아니었나 싶다.

총 길이 23Km에서 하산길이 13km로 그중 8∼9km는 내려오는 경사가 급해서 고생했던 것 같다. 전라남도(구례), 전라북도(남원), 경상남도(하동)의 삼도와 접한다하여 붙여진 삼도봉을 거쳐서 하산 길의 시작인 화개재에 도착을 하였다. 옛날 영호남의 상인들이 물물교환을 하던 장소라는데, 이 높은 곳까지 올라와서 물건을 교환하였다는 것이 잘 이해가 되지는 않았다. 다리도 많이 아프고 지쳤지만 하산길이니 금방 내려가는 줄 알았다. 그러나 길은 여전이 가파르게 내리막이였고 몸도 마음도 지쳐갔다. 생각해보니 하산 길을 이렇게 길게 내려와 본적이 없었다.

사실 질주본능에 충실하여 올라가기를 힘썼고 내리막길은 그렇게 길지 않았던 거다. 마음을 고쳐먹기로 했다.

빨리 내려가려 하지도 말고 어서 끝나기를 바라지도 말고 주위 경치를 보려고 애썼다. 그렇게 마음을 고쳐먹으니 계곡이 비로소 눈에 들어왔다. 간장소는 검푸른 물의 빛깔이 인상적이었는데 안내판을 보니 소금짐이 이 소에 빠져서 간장이 되었다거나, 이 소의 물을 마시면 간장까지 시원해 진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라하니 원래 이곳을 지나칠 때 즈음이면 소금짐을 버리고 가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나보다 생각하니 조금 위로가 되었다. 큰 뱀이 목욕을 하다가 허물을 벗고 용이 되어 승천하다가 떨어진 자리라는 용소대 등, 뱀사골 계곡은 물도 풍부하고 경치가 빼어났다.

계곡으로 내려가기 좋은 곳에서 고근아 선생님과 전명숙 선생님, 최무성 원장님이 족욕을 하고 계시다가 지나는 우리팀을 불러 양종욱 원장님, 공준택 원장님과 같이 바위에 앉아서 시원하게 족욕을 하고 나니 온몸에 기운이 솟고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이전에는 산에 왜 오르냐고 하면 내려다보고 싶어서 오른다고 했을 텐데 오늘은 올랐을 때의 쾌감보다는 내려오면서 내 자신 체력의 한계를 느끼던 순간과 이렇게 발 담그면서 온몸이 얼얼해질 정도로 차가워지며 발이 아파지던 그 느낌을 꼽을 것 같다.

성삼재에서 반야봉을 거쳐 뱀사골 계곡으로 내려온 이번 지리산 산행은 반야봉을 오르는 동안까지는 지리산의 높고 깊은 맛을 몰랐지만 그 긴 하산 길을 통해서 내가 경쟁하려고 하면 한없이 어렵지만, 보고 느끼고 동화되려고 하면 그 끝을 알 수 없는 자연의 힘을 느끼게 해주는 산행이었다. 다음에는 좀 더 여유롭게 계곡길을 느끼며 걸어보고 싶다.

구영석 <연세우리내과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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