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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하르트 슈트라우스〈메타모르포젠〉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메타모르포젠〉
  • 의사신문
  • 승인 2014.06.23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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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이야기 〈270〉

■전쟁 폐허의 참담한 마음을 정제된 언어로 담아낸 얼음 속의 불꽃같은 작품

1945년 2월 13일부터 15일 사이 연합군의 3600여 대의 폭격기와 1300여 대의 대형 폭격기들이 폭탄을 쏟아 부었다. 뮌헨 오페라극장의 붕괴를 시작으로 드레스덴 젬퍼오퍼가 무너지고 베를린 린덴 오페라 등이 차례로 화마에 휩싸여 드레스덴을 순식간에 날려버린 폼페이 최후의 날이 되어버렸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나의 아름다운 드레스덴-바이마르-뮌헨, 모두가 끝났다”며 자신의 추억과 꿈이 서려 있는 도시들이 파괴되는 현실에 몹시 괴로워했다. 이 공습으로 인해 자신의 과거를 송두리째 잃어버리게 된 것이다. 제1차 세계대전도 겪은 그였지만 당시엔 참호전과 국지전을 중심으로 전쟁이 벌어진 반면 이렇게 도시 전체와 시민을 순식간에 날려버리는 참혹하고 무자비한 경우는 없었기에 그 슬픔의 강도는 더욱 컸다. 연합군이 감행한 이 대공습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이 작품을 작곡한 직접적인 동기가 되었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메타모르포젠(Metamorphosen)〉을 발표하면서 이 단어에 대해 아무런 언급이 없었지만 이는 괴테의 시 `동물의 정화, 식물의 정화'에서 인용한 것으로 탈바꿈, 변형, 변모, 변성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아마 하루아침에 잿더미가 된 드레스덴을 상징하기 위해 선택한 단어로 추측된다. 쇼스타코비치의 전쟁교향곡들과 같은 음악들이 표현주의 방식으로 직접 시대 반영을 그려냈다면 이 작품은 보다 개인적인 은밀함과 은유적인 간접성이 두드러지면서 그와는 대조를 이루고 있다.

결국 〈메타모르포젠〉은 단순히 자신의 도시가 폐허로 변한 변형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그 폐허 위에 미래를 위한 일말의 희망을 심고자 하는 새로운 변형을 염원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 까닭에 그로브 음악사전에는 이 곡에 대해 `슈트라우스 자신이 반세기 동안 이끌어 온 독일 음악문화에 대한 비가(悲歌)'라고 소개되어 있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천성적으로 유머러스하고 긍정적인 데다 복잡함을 넘어선 화려함과 단순함에 순수함까지 동시에 갖고 있던 작곡가이다. 처참하게 파괴된 조국과 전쟁에 대한 비참한 마음을 느린 템포의 악상으로 담아낸 이 곡을 들어보면 폐허가 된 독일을 바라보는 슈트라우스의 형언할 수 없이 쓸쓸하고 참담한 마음이 아름다운 현악으로 표현되면서 강렬한 설득력과 탐미주의를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아이러니가 있다.

이는 전쟁을 겪는 한 개인의 내적인 강렬함을 가장 정제된 형태와 압축된 언어로 담아낸 얼음 속의 불꽃과도 같은 작품인 것이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1945년 3월 이 작품을 작곡해 이듬해 1월 취리히에서 파울 자허의 지휘로 초연된 〈메타모르포젠, 23인의 현악기 독주자를 위한 습작〉(바이올린 10, 비올라 5, 첼로 5, 더블베이스 3)이라는 제목의 이 작품은 〈네 개의 마지막 노래〉와 〈오보에 협주곡〉, 〈클라리넷과 바순을 위한 협주곡〉과 더불어 그가 황혼기에 남긴 마지막 걸작 중 하나이다.

이 작품은 베토벤의 교향곡 제3번 〈영웅〉의 제2악장 장송행진곡으로부터 인용한 첼로와 더블베이스가 작품의 근간을 이루는 한편, 바그너의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에 등장하는 셋 잇단음 리듬이 빈번히 사용되고 있다. 이와 동시에 말러의 교향곡 중 느린 악장에서 찾아볼 수 있는 심원하고도 낭만적인 성격과도 유사하면서 23개의 악기가 모두 독립된 라인을 갖고 있는 그 특유의 자유로운 폴리포니적 성격과 자유로운 변주 양식을 연상시킨다.

비통하면서도 명상적인 주제에 가해지는 색다르고 끊임없는 유기적 변형을 담고 있는 이 음악은 정신적으로는 바그너이지만 가슴으로는 친구였던 말러를 회상하며 결국에는 모든 것을 베토벤에 귀결시키는 듯하다. 이렇게 수수께끼 같은 제목과 상징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이 작품은 전쟁의 상흔에 대한 일종의 정신적인 치유를 담고 있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어둡고 음습한 분위기로부터 아무도 알아챌 수 없는 사이에 벨벳과도 같은 부드럽고 찬연한 사운드로 정화시켜 나가고, 신중하게 선택된 음조를 통해 현혹적이고 현학적인 화성으로 이동하는 과정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만이 해낼 수 있는 독보적인 것이다.

■들을만한 음반: 빌헬름 푸르트벵글러(지휘),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DG, 1947); 루돌프 켐페(지휘), 드레스덴 쉬타스카펠레(EMI, 1964),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지휘),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DG, 1982)

오재원 <한양대구리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 이 클래식이야기 전편은 오재원 작 `필하모니아의 사계'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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