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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코피에프 피아노소나타 7번 Bb장조 작품번호 83
프로코피에프 피아노소나타 7번 Bb장조 작품번호 83
  • 의사신문
  • 승인 2014.05.07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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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이야기 〈263〉

■고삐 풀린 원초적 리듬과 야성미로 미친 듯 전쟁의 폐해를 묘사

프로코피에프는 모스크바 교외인 니콜리나고라에서 1953년 3월 5일 생애를 마쳤으나 그의 죽음은 아무에게도 알려지지 않았다. 공교롭게도 그날은 바로 구소련의 독재자 스탈린이 죽은 날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 시대를 풍미한 러시아의 위대한 작곡가 프로코피에프는 아무도 찾지 않는 시골집에서 쓸쓸히 죽음을 맞이해야만 했다.

스탈린의 독재로 인하여 당시 러시아는 정치적, 경제적 뿐 아니라 예술적으로도 많은 고통과 시련을 격어야만 했다. 하지만 이런 시련이 역설적으로 많은 작가, 작곡가 등 예술가들에겐 거대한 영감의 원천이 되기도 하였다. 솔제니친, 쇼스타코비치 등과 함께 프로코피에프도 예외는 아니었다.

1917년 레닌의 주도아래 볼셰비키 혁명이 발발했을 때 지주출신계급인 프로코피에프에게도 암울한 그늘이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그는 더 이상 러시아에는 음악이 존재하지 않겠다고 생각하고 이듬해 일본을 거쳐 미국으로 망명하게 된다. 그러나 러시아에 대한 향수를 이기지 못하고 1937년 조국으로 다시 귀국한다. 운이 나쁘게도 이때는 권력의 통제가 문화의 모든 분야에서 강화되던 시기였다.

1932년 소비에트 작곡가동맹이 발족하고 1936년 쇼스타코비치는 〈므첸스크의 멕베드 부인〉을 둘러싼 온갖 비난을 받고 있었다. 이 작품에 대해서는 형식주의라 하여 맹렬한 비난을 한다. 형식주의란 `리듬이나 음색, 화성 등 음악의 여러 요소를 사용한 인공적인 음악 등의 예술'로 이러한 예술이 사회적인 내용을 희생시킨다고 여겼다. 이로 인해 많은 러시아 음악가들은 그들의 자유와 러시아의 과거를 수호하기 위하여 소련의 미래를 부정하고 망명의 길을 택했으나 프로코피에프는 정반대의 길을 택했던 것이다.

그는 자신의 자유를 희생하고 소련이 공인하는 작곡가가 되었고 그 지위에 따른 모든 득실을 받아들이게 된다. 그 해 프로코피에프는 혁명 20주년 기념을 위한 칸타타로 역사적인 인물 `알렉산드르 네프스키'를 위해 음악을 썼다. 이 작품에서는 구소련 미학의 요구에 맞게 민중적이고 서사적인 부분과 작곡자의 서방시대의 양식이 모두 인용하였다. 1938년 `반민주주의 형식주의'이라며 당의 비판을 받은 그는 스탈린주의 음악을 쓰도록 강요를 받기 시작했다.

그 이듬해 스탈린 탄생 60주년을 기념하여 칸타타를 작곡하고, 일명 `전쟁 소나타'로 불리는 피아노소나타 제6번, 제7번, 제8번을 작곡하게 된다. 이중 소나타 제7번과 제8번은 각각 스탈린상 2등과 1등을 수상하였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작품들은 전쟁의 폐해와 스탈린 치하의 참상을 묘사한 작품으로 그의 작품 중 창작의 정점을 형성하는 기념비적 작품들이 된다. 피아노소나타 제6번은 1940년 작곡가 자신에 의해, 제7번은 1943년 스비아토슬라브 리히터에 의해, 제8번은 에밀 길렐스에 의해 1944년 초연되었다.

그의 교향곡 제5번과 조성이 같은 피아노소나타 제7번과 제8번은 모두 잠재된 잔혹성을 극대화하고 있다. 특히 제7번 제2악장은 슈만의 가곡집 〈리더크라이스〉 중 〈애수〉의 첫 소절을 인용한 멜로디로 시작한다. `나는 때로 기쁜 듯이 노래하기도 하지. 조용히 울며 내 마음을 놓아주는 대신 나이팅게일이 울고 봄바람이 불어, 무덤으로부터 그들의 노랫소리가 들려오겠지. 듣는 모두들 기뻐할 테지만, 그 깊은 슬픔은 누구도 알지 못해.'라며 아이헨도르프의 시는 프로코피에프의 메시지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피아노소나타 제7번은 프로코피에프의 타고난 예술적인 미적 감각과 함께 내면의 환상과 야성미가 자유로운 음악적 기법과 블랙유머가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고 있는 피아노음악의 걸작이다.

△제1악장 Allegro inquieto 처음부터 소용돌이치며 내닫기 시작하면서 무미건조하고 강철같은 프로코피에프의 특성이 제대로 나타난다. 마지막에 긴장이 누그러지면서 이전과 대조적으로 서정적이며 느린 선율이 발전부를 거쳐 다시 긴장은 절정에 달한다. 이러한 뚜렷한 대조가 그가 품고 있는 진짜 그의 모습이다. △제2악장 Andante Caloroso 마치 슈만의 가곡처럼 표현이 넘치는 선율로 정열적으로 노래하고 있다. 점점 선율이 두터워지고 긴장도 더해가면서 마지막엔 칸타빌레로 긴장도 풀린다. △제3악장 Precipitato 타악기 스타일로 강인하게 시작하면서 고삐 풀린 원초적 리듬과 에너지로 미친 듯 종말을 향해 거침없이 달려간다.

■들을만한 음반: 마우리치오 폴리니(피아노)(DG, 1971); 에밀 길레스(피아노)(Melodiya, 1961); 블라디미르 아쉬케나지(피아노)(Decca, 1968)

오재원 <한양대구리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 이 클래식이야기 전편은 오재원 작 `필하모니아의 사계'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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