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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벨리우스 교향시집〈네 개의 전설〉중〈투오넬라의 백조〉작품번호 22-3
시벨리우스 교향시집〈네 개의 전설〉중〈투오넬라의 백조〉작품번호 22-3
  • 의사신문
  • 승인 2014.04.29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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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이야기 〈262〉

■황천에서 도도히 헤엄치는 생사 초월 백조의 우아한 자태

작가 엘리아스 뢴로트는 의학을 전공했지만 청년시절부터 설화문학에 흥미가 있어 핀란드전역을 여행하면서 이교시대부터 그리스도시대에 걸쳐 전해오는 전설이나 설화 등을 집대성하여 한 편의 서사시로 이를 재창조하였다. 그는 1831년 〈칸텔레〉를 발표한 후 1835년 〈칼레발라〉라는 제목으로 출판하였고 그 결정판은 1849년 완성되어 핀란드문학 최초의 금자탑이 되었다.

〈칼레발라〉에 등장하는 인물은 사랑에 빠진 청년 레민케이넨, 음유시인 베이네뫼이넨, 대장장이 일마리넨 등 3명으로, 이들이 사는 칼레발라와 반대편 포욜라간의 대립을 그리고 있다. 여기에 갖가지 전설적 인물이 등장하면서 고대 일상생활을 구체적이고 서정적으로 읊고 있다. 풍부한 모음으로 새긴 시구는 간결하고 힘차며, 고상한 가락도 이 작품의 특징이다.

시벨리우스는 28세 때 〈칼레발라〉를 접하고 많은 영감을 받게 되면서 〈칼레발라〉에서 따온 교향시집 〈칼레발라로부터의 4개의 전설〉을 작곡하게 된다. `칼레발라'란 `칼레바의 나라'라는 의미이다. 서사시 〈칼레발라〉에 나오는 영웅 레민카이넨의 이야기를 다룬 교향시집으로 〈레민카이넨과 소녀〉, 〈투오넬라의 레민카이넨〉, 〈레민카이넨의 귀향〉로 구성되었다. 그 중 제2곡과 제3곡은 저승의 강 `투오넬라'를 그린 작품이다.

〈투오넬라의 백조〉는 핀란드신화에 나오는 황천세계 `투오넬라'를 무대로 벌어지는 슬픔과 사랑의 이야기이다. 황천세계에 가려면 9개의 바다와 1개의 강을 건너야만 닿을 수 있는데 그곳의 물은 매우 검푸르고 물살이 빨라 무섭게 소용돌이를 친다. 그 검푸른 죽음의 바다 위에 희고 큰 투오넬라의 백조가 유유히 헤엄치면서 구슬프게 노래한다. 영웅 레민카이넨은 사랑하는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기 위해 투오넬라의 백조를 잡아야했지만 백조를 잡으려다가 물에 빠져 거의 목숨을 잃게 되었다. 그 후 어머니의 극진한 사랑으로 다시 살아난 레민카이넨은 무사히 고향집으로 돌아오게 된다는 내용이다.

시벨리우스는 40대에 식도암에 걸려 죽음의 문턱까지 간 적이 있었다. 이 시기를 극적으로 이겨낸 후 91세까지 장수하게 되는데 이때 그만이 가지고 있던 죽음과의 교류가 있었던 것 같다. 시벨리우스는 이 무렵 생사를 넘나드는 생사의 초월성과 그 적막한 투오넬라의 세계를 교향곡 제4번을 통해서도 들려주었는데 아마도 이처럼 평화롭고도 신비감을 느낄 수 있는 음악도 없을 것이다. 투오넬라에서 헤엄치는 백조는 여느 백조와는 다르다. 그것은 `black swan'으로 영원을 여유 있게 헤엄치는 백조, 생사를 초탈한 정적의 존재를 상징하고 있다.

시벨리우스 음악이 주는 강렬한 힘은 무엇보다도 불가능하게 보이는 표현을 가능케 한 불굴의 정신력에 있으며 북국인만이 가질 수 있는 강인함에 있다. 시벨리우스는 북국의 극한 겨울추위가 느껴질 만큼 완벽한 표현력을 구사한 오케스트라의 달인이었다. 교향시 〈핀란디아〉, 교향곡 제1번, 등은 극도의 자기실험, 깊은 자아의 침잠 속에서 건져 올린 드높은 예술적 성과였다. 시벨리우스를 대표하는 작품들은 역시 교향곡 7편을 중심으로 여러 편의 교향시들이다. 강렬하면서도 엄격함으로 절제되어 있는 내면을 노래함에 있어서 신비롭기 만하다. 시벨리우스 후기 작품들은 더 이상 이 세상의 음악이 아니다. 그것은 내세의 음악, 천상의 희열을 노래하고 있고 저승에서 도도히 헤엄치는 백조의 초월적인 우아함으로 가득 차 있다.

음울한 저현악기 파트와 함께 서늘한 선율의 바이올린 서주에 이어 잉글리시 혼의 쓸쓸한 선율이 검은 바다 위 투오넬라의 백조의 우아한 모습을 그리고 있다. 투오넬라의 백조는 죽음을 상징하고 있다. 시종 침통하며 어둡고 신비롭지만 자세히 듣고 있으면 이처럼 편안한 음악도 없다. 영혼의 구제를 위한 통절한 호소를 나타내는 현의 주제가 나오는 후반부는 시벨리우스다운 선율을 보여준다. 어둡고 슬픈 북국 특유의 음색 속에 고요한 리듬, 애절한 현의 선율은 저 먼 곳으로 사라져가는 아련한 세계로 듣는 이를 인도하고 있다.

■들을만한 음반: 네미 예르비(지휘), 예테보리 심포니 오케스트라(BIS, 1985);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지휘),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DG, 1965); 말콤 사전트(지휘),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EMI, 1965)

오재원 <한양대구리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 이 클래식이야기 전편은 오재원 작 `필하모니아의 사계'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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