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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르토크 피아노협주곡 제3번 E장조, 작품번호 127
버르토크 피아노협주곡 제3번 E장조, 작품번호 127
  • 의사신문
  • 승인 2014.04.21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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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이야기 〈261〉

■자연의 소리가 듬뿍 담긴 버르토크의 마지막 `백조의 노래'

이 작품은 버르토크의 `백조의 노래'이다. 백혈병을 앓고 있어 의사의 안정을 취하라는 권고를 어기고 인생의 마지막 한 달 동안에 작곡되었다. “그렇지만 나는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 영원히”라는 말을 남길 정도로 버르토크의 고향에 대한 애절한 그리움은 작곡 당시 그의 모습에 일련의 동정심을 느끼게 한다.

이러한 허망함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버르토크는 1945년 그의 아내 디타 파츠토리를 위한 자신의 영혼이 담긴 곡을 만들어 내기 위해 마지막 생명을 불태운다. 아내를 위해 작곡하여 그 사랑이 묻어나면서 어떻게 하면 듣는 이로 하여금 기쁨을 느낄 수 있을까 하는 많은 고심의 흔적이 보이는 그의 용의주도한 면모가 드러나는 독특한 곡이다.

일반적인 조성을 갖춘 구성과 어두운 색깔의 절제된 선율에 복합적인 리듬이 가미되는 한편, 자연의 소리가 듬뿍 담겨진 곡으로 인위적인 느낌이 덜하고 상쾌함이 가득 찬 새의 지저귐, 찬란한 태양 아래의 들판이 드넓은 전원과 함께 가득 펼쳐지고 있다. 여기에 조국 헝가리를 떠나 미국으로 망명 온 후 배타적인 미국의 정서와 함께 삶을 파먹고 있는 백혈병과의 투쟁, 그리고 아내에 대한 사랑 등이 절절히 녹아 있다. 이러한 종교적이면서 전원적인 분위기에 더해 전반적으로 베토벤과 바흐의 느낌이 충만하다. 버르토크 자신의 유일한 신앙인 자연의 거룩함과 성스러움이 담겨져 있어 그의 초기 작품과는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

버르토크는 사실 작곡을 자신의 가장 주력 분야로 생각했고 피아노 연주는 그저 생계수단으로만 생각했다. 낭만적이고 자의적이며 감정의 기복을 중시하는 버르토크의 피아노 솜씨는 그의 다른 장르에 비하면 약했지만 당대 최고 피아니스트 중 한 명으로 명성을 날렸다. 1905년 안톤 루빈스타인 콩쿠르에 참가한 버르토크는 빌헬름 바크하우스에게 1위를 넘겨주고 2등을 차지하였지만 낭만주의 버르토크와 모던니스트 바크하우스는 서로의 연주를 높이 평가하였다.

그의 피아노협주곡들은 다른 작품들보다 시대적, 음악적으로 중요성을 띠고 있다. 1926년 작곡된 피아노협주곡 제1번은 그가 수년 동안의 침묵을 거친 뒤 맞이하게 될 새로운 창작 시기에 대한 일종의 전주곡과도 같은 것으로 여러 측면에서 새로운 양식을 예견하고 있다. 당시 음악 경향에 대한 분석과 앞으로의 방향에 대한 진지한 고찰을 했으며, 특히 바로크 초기 작곡가들에 대한 연구를 통해 옛것으로부터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 곡은 1927년 버르토크의 피아노연주와 푸르트벵글러의 지휘로 초연되었다. 피아노협주곡 제2번을 작곡한 것은 1930년 10월이었다.

훗날 그는 이 작품의 작곡 경위와 자신의 견해에 대한 글을 남겼다. “나는 협주곡 제2번을 협주곡 제1번의 단점을 상쇄할 목적으로 작곡하리라 결심했다. 나는 오케스트라를 보다 쉽게 다루어 주제들을 한층 흥겹게 만들고자 했다. 나는 이러한 목적으로 인해 대부분의 주제들을 훨씬 더 대중적이고 쉽게 만들었다” 그는 이 작품에서 자연스런 리듬의 향연과 정교한 앙상블을 통한 구조의 현대적인 이미지 창출, 여기에 연주자 자신의 독창적인 감수성이 어우러져 전혀 새로운 상상력의 세계를 구현하고 있다.

1945년 봄 작곡하기 시작한 피아노협주곡 제3번은 아내가 초연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백혈병으로 인해 자신은 독주자로서 연주가 더 이상 어려워져 아내의 독주로 초연할 수 있도록 해주고 싶었으나 그의 제자인 죄르지 산도르의 독주와 유진 오먼디의 지휘로 1946년 2월 초연됐다.

버르토크는 아쉽게도 이 작품의 마지막 17마디의 오케스트레이션만을 미처 완성하지 못한 채 10월 세상을 떠나게 되고, 그 마지막 마디들은 제자이자 친구인 티보르 셸리가 완성하게 된다. 사실 버르토크는 이 작품의 표현 및 템포 기호에 대해 최종적인 점검을 하지 못했다. 자신의 머릿속의 음악을 악보에 옮겨낼 수는 있었지만 이에 살아있는 표정까지를 입히지는 못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협주곡 제3번은 버르토크의 피아노협주곡 가운데 가장 자주 연주되는 명곡으로 사랑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20세기를 대표하는 피아노협주곡 가운데 하나로 존경받고 있다.

■들을만한 음반: 게자 안다(피아노), 페린크 프리차이(지휘), 베를린 방송심포니 오케스트라(DG, 1960); 마르타 아르게리히(피아노), 샤를 뒤투아(지휘), 몬트리올 심포니 오케스트라(EMI, 1997); 블라디미르 아쉬케나지(피아노), 게오르그 솔티(지휘),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Decca, 1979)

오재원 <한양대구리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 이 클래식이야기 전편은 오재원 작 `필하모니아의 사계'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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