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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대병원 고영초 교수
건국대병원 고영초 교수
  • 홍미현 기자
  • 승인 2014.04.14 11: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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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 중독성 강한 인생의 원동력이자 휴식처

고영초 교수
'봉사'의 사전적 의미는 “국가나 사회 또는 남을 위해 자신을 돌보지 아니하고 힘을 바쳐 애 쓴다”고 되어 있다. 하지만 갈수록 각박해 지는 사회에서 봉사란 말처럼 쉽지 않다. 그러나 아직 사회 숨은 곳곳에는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따뜻한 손길을 건네는 이들이 많다.

사람들은 아직은 살만한 세상이라고들 말하는 것 같다.

의사신문은 건국대병원 신경외과 고영초 교수를 만나 그가 실천하고 있는 `봉사'에 대해 들어봤다. 인터뷰를 위해 만난 고영초 교수의 첫 인상은 봉사를 위해 준비된 타고난 성품과 인품을 가진 사람이었다.

매일 오전 6시 하루를 시작한다는 고영초 교수. 365일 하루하루가 소중하지만 그에게 매주 수요일은 조금 더 특별하다. 병원 진료를 마치면 의료봉사를 가기 때문이다. 고 교수는 “매주 수요일은 더욱 설레고 가슴이 벅찬 하루”라고 말한다.

고 교수는 매주 수요일 약 7∼8시간이 걸리는 대수술을 마치고 피곤할 듯도 하지만 콧노래를 부르며 봉사 장소로 이동한다.

그는 매주 수요일 무의촌 이웃을 위한 전진상의원, 쪽방촌 이웃을 위한 요셉의원, 외국인 노동자를 위한 라파엘 클리닉에서 의료봉사를 실천하고 있다.

지난 4월 3일 고영초 교수는 전진상의원으로 향했다. 대기실에는 약 30여명의 환자들이 진료를 받기 위해 대기하고 있었다. 진료는 오후 7시30분부터지만 7시가 조금 못된 시간 대기실은 벌써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이 시각 고영초 교수는 6시30분까지 전진상의원에 도착해 상주해 있는 의료진 및 봉사자들과 함께 저녁을 먹으며 그날의 하루 일과를 이야기 하며 진료를 준비한다.

그를 마주할 수 있었던 시간은 오후 7시 30분. 오늘은 산부인과와 안과 진료실에서 환자 맞을 준비를 마쳤다. 외투를 걸을 시간도 없이 진료 테이블 옆 의자에 살포시 반을 접어 둔 채 첫 환자를 맞이한다.

고 교수는 “신경외과 진료실은 없어요. 오늘은 산부인과 진료실에서 진료를 보내요”라며 낮은 톤의 은은한 목소리가 딱딱한 진료실을 부드럽게 만든다. 그는 “신경외과 환자는 적으면 5명 많으면 10명 정도를 보기 때문에 진료공간이 따로 마련되어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매주 수요일 병원진료 후 전진상의원·요셉의원 등서 의료봉사
“정년퇴임 후에도 의료봉사 할수 있어 축복받은 직업이라 생각”


그를 찾아온 첫 환자는 고 교수와 약 25년을 함께한 환자다. 그들은 환자 나이 20대 초반 무렵 만나 지금까지 긴 인연을 맺고 있다. 고 교수는 성직자와 같은 잔잔한 목소리로 “잘지냈어?”라며 진료를 시작한다.

그러면서 그는 하루에 경련이 몇 번이나 일어나는지, 잠은 잘 자는지, 약을 꼭 챙겨 먹는 지 등 환자의 상태를 꼼꼼히 체크한다. 오히려 고 교수의 다양한 질문에 환자가 웃으며 “저도 전문가 다 됐어요”라고 말하며 고 교수의 걱정을 한 시름 놓게 한다.

이 환자는 동두천으로 이사를 가고 나서도 2주에 한번씩 고영초 교수를 찾아오고 있다. 환자는 고 교수를 만나 너무 감사하다고 말한다. 이어 또 다른 환자가 찾아왔다. 이 환자도 고영초 교수와 인연이 깊다. 고 교수는 “뇌수술을 5번 한 환자”라고 소개하며 “`럭키'한 사람”이라고 했다.

고 교수에 따르면 이 환자는 뇌의 물이 차서 세 번이나 수술을 받은 환자였다. 마침 전진상의원에 진료가 있던 날 혼수상태로 실려 왔다 건국대병원으로 급하게 데려가 응급수술을 한 환자였다.

환자는 “나는 행운인 것 같아요. 고 교수님 덕분에 새 삶도 받고 건강도 되찾아 여행도 다니고 운동도 하며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후 고 교수의 진료실을 찾은 환자는 8명이었다. 전진상의원 호스피스 병동에 있는 환자, 척추질환 환자, 머리의 통증을 호소하는 환자 등 많은 환자들이 고 교수의 진료실의 문을 두드렸다. 이런 고 교수의 진료는 오후 9시에 끝이 났다.

고단하지 않냐는 질문에 고 교수는 “눈이 뻑뻑하고 피곤한 감은 있지만 힘들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봉사현장에서 의료진 및 봉사자들과 저녁을 먹으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피로와 스트레스가 날아간다”고 했다.

고 교수는 “봉사는 나에게 인생의 원동력인 것 같다”며 “중독성이 강한 일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 또한 “내게 찾아오는 환자는 예수가 마치 내게 찾아온 것 같아 예수를 대하는 마음으로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런 그가 봉사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의사'의 길로 접어들면서라 할 수 있다. 신부가 꿈이었던 고 교수는 중·고등학교를 신부가 되기 위한 가톨릭계 학교에 다녔다.

어느 날 고 교수의 특수학교와 일반 고등학교의 커리큘럼이 다르다는 것을 알고 고등학교 2학년 때 편입을 결심하고 일반고로 편입해 1년간 공부해 의대에 들어갔다.

고 교수는 하나님을 버리고 의사를 선택한 길을 보답을 하기 위해 `의료봉사'를 하기로 결심, 서울의대 가톨릭 학생회가 운영하는 봉사활동에 참여하면서 봉사와 인연을 맺게 됐다.

고 교수는 “의사는 정년퇴임 이후에도 의료봉사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축복받은 직업이라 생각한다”며 “10년, 20년 뒤에도 몸만 허락해 준다면 봉사를 계속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홍미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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