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트일산복지타운 조병국 원장
홀트일산복지타운 조병국 원장
  • 홍미현 기자
  • 승인 2014.04.14 11: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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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평생 소외 아동들 지켜온 6만 입양아의 어머니

조병국 원장
6만 입양아의 어머니라는 수식어가 붙은 그녀. 의사로서 약 60년(?)을 진료하고 의료봉사의 끊을 놓지 않고 있는 그녀. 삶 자체가 봉사인 그녀. 봉사를 감사와 행복이라고 말하는 그녀.

그녀는 홀트일산복지타운 조병국 원장이다. 조 원장은 올해로 83세다. 그녀를 마주한 첫 느낌은 한없이 이해하고 감싸줄 것 같은 인자하고 포근한 우리 내 외할머니 같았다.

인터뷰 요청에 “훌륭한 사람들도 많은데 날 인터뷰 해서 뭐하겠냐며 더 이상 일을 하지 말라는 주변의 말에 지금은 해 줄 말이 없다”며 쑥쓰러워 하던 그녀는 봉사와 함께한 지난 세월의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우선 그녀는 홀트아동복지회 설립자인 미국인 해리홀트씨에 대해 소개하며 한국전쟁 직후 한국아동들을 위한 시설 설립 및 아동들의 복지증진을 위한 다양한 사업에 대해 들려줬다.

조 원장은 홀트일산복지타운의 거실로 자리를 옮겨 약 60년간 `나눔'과 함께 긴 세월 시간 탐험속으로 안내했다.

조 원장은 자라면서 `베풀다' `도와주다'라는 의미를 몸소 느끼며 자랐다고 한다. 교사였던 부모님을 대신해 외할아버지 손에 자랐다는 그녀. 당시 외할아버지는 어려운 아이들을 거둬 함께 생활했고 이들과 한가족 처럼 함께 자랐다고 한다. 그러다 그녀가 `의사'의 길로 들어와 나눔을 실천할 수 있게 된 계기는 어린 동생들을 먼저 보내면서부터다. 몸이 약했던 두 동생이 열악한 의료 환경으로 의술의 도움을 받지 못한 채 떠나보내야 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아버지의 반대에도 의대에 진학을 했고 대학을 마치고 원하던 소아과 의사가 됐다. 의사가 되면 유아사망률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보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현실을 조 원장의 생각과 달랐다.

조 원장은 “인턴을 마치고 서울시립아동병원에서 근무를 하는데 하루에 10명 정도, 매년 370∼380여명에 이르는 4세 미만 아이들이 사망했다”며 “진료실에 앉아 매일 수십장의 사망진단서를 서명해야 했다”고 말했다. 그녀는 “이런 어린생명을 아무 도움도 주지 못한 채 보내야 할 때마다 내가 병을 고치는 의사가 맞나하는 회의감이 들었다”며 “사망대기소에서 시체를 처리하는 사람인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고 당시의 상황을 안타까워했다.


1974년 `홀트'기관과 인연 시작으로 보육시설 아동들 보살펴
소외이웃 봉사활동에 의사들의 관심·참여 더 많아지길 기대


조 원장은 죽어가는 생명들을 보며 소아과 의사를 선택한 것을 후회한 적도 있다고 전했다. 그녀는 열악한 환경에 있는 아이들이 죽어나가는 것만은 막아야겠다는 생각에 입양 기관에 문을 두드렸다.

사실 그녀는 “풍족한 국가에 아이들을 보내 음식이라도 마음껏 먹을 수 있게 해 주고 싶다는 생각이었다”고 설명했다. 또한, “부모가 있는 아이와 보육시설 아이들에게 똑같이 우유를 주는데 보육원 아이들은 체중이나 성장이 늦었다. 원인이 무엇일까 생각하다 `사랑' `보살핌'이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조 원장의 두드림에 대답이 온 곳은 `홀트'기관이었다. 이곳은 인턴 이후 6개월간 파견근무를 했던 곳이다. 이를 계기로 1974년부터 조 원장은 홀트부속의원과 연을 맺게 되면서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홀트부속의원에서 소아과 의사로서 아이들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아이들의 질환 정보 하나도 빼 놓지 않았다.

조 원장은 “아이에 대한 정확한 건강정보를 입양부모에게 일려줘야 치료를 제대로 받을 수 있겠다 싶어 기록하는 일에 매진했다”고 말했다.

조 원장은 “낮 시간엔 진료하고 밤에는 기록을 하는데 시간을 다 보낸 것 같다”며 “이때 무리한 탓에 오른쪽 어깨와 팔을 사용하지 못할 상태까지 갔었다”며 웃었다.

그러면서 조 원장은 당시를 회상하며 “일을 하다보면 시간 늦은지 모르고 일한 적이 많다. 하루는 12시가 넘어 집에 들어갔더니 남편이 보따리를 싸서 고아원으로 가라고 한 적”도 있었다며 남편과 가족들에게 미안한 맘이 컸다고 전했다.

조 원장은 “시설에 있는 아이들이 좋은 양부모를 만나고, 숨이 할딱할딱하던 애가 살아날 때면 너무 행복하다”고 말한다. 진료를 해줄 수 있을 때 행복한 모습을 찾았을 때가 내가 하는 일에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현재 조 원장은 2010년부터 말리홀트 홀트아동복지회 이사장과 함께 홀트일산복지타운 내 `말리의 집'에서 살고 있다. 2006년 골절상을 당한 후 이동에 어려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방 하나 내 달라'는 조 원장의 부탁을 말리홀트 이사장은 흔쾌히 수용했다.

조 원장은 홀트일산복지타운은 몸이 불편한 장애인들이 많다. 이들에게 밥 먹여주는 것부터 기저귀 가는 일, 목욕시키는 일, 방청소, 산택하기 등 우리에게 평범한 일상을 모두 가르쳐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그녀는 요즘 고민이 많다. 말리홀트 이사장 이후 이 시설을 이어갈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조 원장 이후 상주 의사도 구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녀는 “의료계는 물론 안과 정형외과, 이비인후과 등 많은 전문의들도 도움의 손길을 줬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녀는 봉사라는 말은 너무 거추장스럽다며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 뿐이라고 했다. 살아있는 동안은 이들과 함께 하고 싶다고 말했다.

홍미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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