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수필]지초(芝草)와 난초(蘭草)의 사귐(芝蘭之交)
[기념수필]지초(芝草)와 난초(蘭草)의 사귐(芝蘭之交)
  • 의사신문
  • 승인 2014.04.14 11: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상구 <대한의사협회 대의원회 부의장 · 이상구신경정신과의원장>
이상구 대한의사협회 대의원회 부의장

친구여! 54세 생일 축하…건강하게 내 곁에 있어주길

패기에 찬 필봉을 휘둘러 우리의 사랑을 받아왔던 의사신문이 창간 54주년을 맞아 이제는 인생에서 최고의 황금기인 중년기에 접어들었다. 이제는 원숙함을 보이면서 축적된 예지들이 모여 오피니언 리더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 나가고 있기에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의사신문 54년 동안 회원들과 동고동락 해온 우리들의 자존심이 깃들어 있는 친근한 벗 의사신문의 미래는 우리회원들에게 달려있다.

사랑하는 따뜻한 마음으로 우리의 벗을 대할 마음의 준비를 다시 해야 한다. 항시 우리 곁에 있으면서 우리들의 강력한 지지자가 되어 왔고, 앞으로도 계속 우리와 함께 거칠고 힘든 길을 걸어가야만 할 친구가 장년의 나이에 생일을 맞게 되었다. 친구여. 건강하고 무병장수하여 언제나 내가 필요한 시기에 나의 곁에 있어주기를 바란다.

춘삼월(春三月)이 오면 세상만물들이 변화를 시작한다.

겨우내 앙상했던 가로수들의 가지에는 봄이 왔음을 알리는 새싹이 돋아나고, 매섭게 차가왔던 겨울 바람대신 훈풍이 불어와 우리들의 얼굴을 어루만지면 잊어 버렸던 미소가 되살아나기 시작을 한다. 따스한 봄 햇살이 대지를 어루만지면, 기력을 잃고 있었던 우리들의 삶도 활력을 되찾기 시작을 한다. 그렇기에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결혼식장의 신부(新婦)의 얼굴이 유난히 돋보이는 계절이 또한 봄이다.

이렇게 봄은 축복받는 계절이기에 이때 자신의 생일(生日)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행운이라 할 수 있다. 이런 행운을 갖고 태어난 의사신문의 생일이 4월 15일이다. 봄을 시샘하는 꽃샘 추위도 완전히 사라지고, 봄의 정기(精氣)가 사방에 충만해 있는 이때는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 가장 좋은 때이다. 이런 봄의 정기를 타고난 의사신문이 고고한 울음을 세상에 터트린 지 어언 54년이 지났다.

어린 시절의 유아기를 무사히 보내고 청소년기, 청년기를 보내면서 패기에 찬 필봉을 휘둘러 우리의 사랑을 받아왔던 의사신문이 창간 54주년을 맞아 이제는 인생에서 최고의 황금기인 중년기에 접어들었다. 이제는 원숙함을 보이면서 축적된 예지들이 모여 오피니언 리더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 나가고 있기에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의사신문(醫師新聞).

이렇게 사랑 받고 있는 의사신문(醫師新聞)은 1960년 창간되었다. 처음에는 `서울 의사주보(醫師週報)'로 시작했으나 창간 4개월 후인 1960년 8월29일에 `의사신보'로 제호를 바꾸게 되었고, 여건이 맞지 않아 잠시 휴간 되었다가 같은 해 12월22일 이종규(李種圭) 씨를 발행인으로 하여 속간 준비를 한 후, 1961년 1월16일 제6호가 발간되면서 오늘의 `의사신문(醫師新聞)'이라는 제호를 갖게 되었다.

초기 창간시에 `일취월진(日就月進)'하는 의학을 연구 발표함으로써 회원 간의 지식을 개발하고, 선진 외국학계와의 지식교환으로 문화적 교류를 목적으로 한다는 취지문에서 보여 준 것처럼 주로 지식의 보고로서 학문의 교류에 주안을 두었던 것을 알 수가 있다.

초창기에는 재정난으로 한때 문을 닫아야 할 고비도 있어 회원들에게 1인당 900원씩 모금운동을 벌여 신문운영자금으로 쓰기도 했다.

창간 당시 타불로이드 판 4면으로 시작했으나 발전을 거듭하면서 24면으로 늘어났고 1962년부터 월요판 16면, 호외로 목요판 16면을 발행하던 중 1964년 10월1일자부터 문공부(文公部)의 정식인가를 받아 매주 월·목 주 2회간으로 발행했다.

그러나 근래 다시 열악한 재정 상태로 인한 적자 운영으로 주 1회씩 발간 중이며 규모도 많이 축소가 된 상황이어서 안타까운 마음을 금 할 수 없다.

그 동안 회원 간의 친목도모가 목표였기에 각종 체육대회와 취미모임을 주도 해왔고 `수필 릴레이 난'을 연재하여 의사 수필인들을 발굴했고, `유한의학상'을 1967년 처음 시작하여 한국의학 발전에 기여하는 의학계의 원로와 중진들을 후원하여 왔다.

또한 `객원논설위원제도'를 1994년 만들어 의료계 발전과 의권 신장을 위한 정론(正論)을 회원들에게 알림으로써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근래에는 각 구 소식들을 자세히 보도하고, 또한 집행부 상임이사들의 글을 연재함으로써 회원들의 큰 호응을 얻고 있다.

54년 동안 회원들과 동고동락(同居同樂) 해오면서 우리들의 친근한 벗이 된 의사신문(醫師新聞).

과거에는 회원들이 마음의 여유를 갖고 매주 배달되는 신문을 기다리면서 이번에는 어떤 기사가 실렸는지? 궁금해 하면서 신문을 펼치던 시절은 이제 찾기 어렵게 되었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상황에 신속히 대처하기 위해서는 주간으로 발행되는 신문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들은 이미 시간과의 싸움에서 기능을 발휘할 수 없게 되어 펼쳐 보지도 않고 쓰레기 통으로 직행하게 된 현실이 안타깝다.

그러나 현실은 냉정하다. 등을 돌리기 시작한 독자들의 관심을 다시 되돌릴 수 있는 묘책을 찾아야만 되는 것이 현재 필요하다. 그렇기 위해서는 편집인들과 발행인들의 새로운 발상이 필요한 시기이다. 구태(舊態)에 집착하여 매너리즘에 빠져 있다는 생각이 들면 과감히 새로운 변화를 시도 해야만 한다.

열악한 재정 상태와 외부요건들의 탓으로 돌리고만 있다면 노년(老年)을 준비하지 못하고 스스로 생명을 단축시킬 수밖에 없게 된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말이 있다.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야속하지만 이 상황을 다음 한 단계 도약을 위한 발판이라고 생각하고, 현재의 고통을 감수하고 노력한다면 결코 미래가 어둡지만은 않을 것이다. 또한 회원들의 변화도 필요한 시기이다. 아무리 유익한 기사를 실었더라도 독자들이 외면하고 무시한다면 그 결과는 자명할 것이다. 그렇기에 모두가 합심하여야만 한다.

우리들의 자존심이 깃들어 있는 친근한 벗. `의사신문'의 미래는 우리회원들에게 달려있다. 사랑하는 따뜻한 마음으로 우리의 벗을 대할 마음의 준비를 다시 해야 한다. 그렇기 위해서는 회원들이 의무적으로 납부하는 회비로서 발간되고 있는 `의사신문'의 앞날을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 답은 명확해 진다.

만성 영양실조에 걸리게 된 이유가 충분한 영양분을 섭취하지 못할 정도로 빈약한 식단으로 생활해 왔기 때문이고, 이렇게 된 이유가 다름 아닌 경제적인 궁핍에서 기인했다면 친근한 우리의 벗이 아사(餓死) 하도록 방치해서는 안 될 것이다.

금년에 우리는 `의약분업 반대 투쟁'을 한지 10년 만에 다시 `원격진료 반대'를 외치면서 파업을 했다. 다행히(?) 정부가 우리들의 이야기를 들으려 하는 태도를 보여 의정(醫政)합의를 하였으나 벌써부터 삐걱거리고 있어 향후 결과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게다가 과거의 파업 당시에는 혼연일체(渾然一體)가 되어 투쟁했으나 금번 투쟁을 하면서 사분오열(四分五裂) 되어 동력을 제대로 모으지 못하였다. 향후에도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그 결과가 어떠할지 우리는 쉽게 예측할 수 있다. 왜? 이렇게 분열된 양상을 보이게 되었을까? 다양한 원인이 있겠으나 간과하고 넘어가서는 안 될 이유가 한 가지 있다. 정서적으로 메마르고 삭막해진 우리의 마음이 타인을 배려하고 포용할 여유를 갖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회원들간의 친선을 도모하고 삭막한 우리의 정서에 단비를 뿌려 주는 `의사신문'.

지금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친구이다. 항시 우리 곁에 있으면서 우리들의 강력한 지지자가 되어 왔고, 앞으로도 계속 우리와 함께 거칠고 힘든 길을 걸어가야만 할 친구가 장년의 나이에 생일을 맞게 되었다. 친구여. 건강하고 무병장수(無病長壽)하여 언제나 내가 필요한 시기에 나의 곁에 있어주기를 바란다.

금년에도 생일 파티를 준비하고 초청해 주면 참석하여 오랜 세월 고생하여 생긴 이마의 주름살을 마주하고 담소를 나누고 싶다.

54세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이상구 <대한의사협회 대의원회 부의장 · 이상구신경정신과의원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