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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드비히 반 베토벤 현악 4중주 14번 C#단조〈대푸가〉작품번호. 131
루드비히 반 베토벤 현악 4중주 14번 C#단조〈대푸가〉작품번호. 131
  • 의사신문
  • 승인 2014.03.17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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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이야기 〈257〉

1825년 청각을 완전히 상실한 베토벤은 10곡의 바이올린소나타, 32곡의 피아노소나타 등을 비롯한 거의 모든 장르의 창작을 마무리하고, 생의 마지막 역작 〈합창 교향곡〉과 〈장엄 미사곡〉의 마무리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1810년에 `중기 4중주'의 마지막 곡인 제11번 F단조 작품 95, 〈세리오소〉를 완성한 베토벤은 그 후 10년 이상 현악 4중주를 멀리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갈리친 후작으로부터 현악 4중주곡을 위촉받게 된다. 이를 계기로 그가 다시 4중주로 돌아온 것은 나이 50을 훌쩍 넘긴 시점이었다.

베토벤은 1825년에서 1826년 사이 생의 마지막 `고백과 정리의 세계'에 몰두하게 되면서 세 곡의 현악 4중주에서 악장 수를 하나씩 늘려가게 된다. 즉, 첫 곡인 제13번 작품 130은 다섯 개 악장, 두 번째 곡인 제15번 작품 132는 여섯 개의 악장으로, 세 번째 곡인 제14번 작품 131에서는 한 발 더 나아가 쉼 없이 계속 연주되는 일곱 개 악장이라는 극단적인 구성을 선보이게 되었다.

베토벤은 애초 현악 4중주 13번 작품 130의 마지막 악장으로 이 곡을 작곡하려 하였지만, 이 곡을 별도로 떼어내 사망하기 1년 전 다시 작곡을 시작하여 독립된 곡으로 만들어 〈대푸가〉를 완성한 것이다. 그 결과 작품 127, 130, 132, 133, 135 등 다섯 곡의 새로운 현악 4중주곡과 〈대푸가〉가 빛을 보게 된다. 이 6곡이 바로 베토벤의 `후기 4중주'로서, 그의 예술세계를 총결산했을 뿐 아니라 실내악 장르에서 `지고와 심연의 경지'에 도달한 최고의 걸작들로 추앙되어 왔다.

평소 베토벤은 바흐를 존경하여 푸가 형식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런 배경으로 종종 자신의 작품에 푸가 형식을 사용하곤 하였는데 그 중에서도 현악 4중주 〈대푸가〉는 형식적으로 규모가 가장 크고 특색이 강한 작품으로, 고난도의 테크닉과 함께 엄격하고 내성적인 성격, 풍한 표현력을 가진 작품으로 말년의 베토벤의 위상을 잘 보여주고 있는 걸작이다. 이 작품은 갈라친 후작이 아니고 슈투터하임 남작에게 헌정했으며, 베토벤이 자신의 후기 4중주곡들 가운데 가장 좋아했던 곡이자 슈베르트가 임종 전에 듣기를 원했던 곡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 곡은 베토벤 사후 오랫동안 음악가들로부터 외면되어 왔다. 평론가 루이 슈포어는 이 작품을 `이유를 알 수 없는 돌이킬 수 없는 공포'라고 평했고, 작곡가 후고 볼프 역시 베토벤 후기 현악 4중주들에 대해 `마치 중국어를 듣는 것처럼 알아들을 수 없는 작품'이라고 악평을 하였다.

그러나 20세기에 접어들면서 베토벤의 후기 작품들이 재평가되기 시작하였고, 작곡가 이골 스트라빈스키는 이 작품을 일컬어 `절대적으로 현대적인 악곡이며 영원히 현대적인 곡'이라고 극찬하였다. 지휘자 펠릭스 바인가르트너는 이곡을 현악 앙상블 버전을 작곡하였고 작곡가 알프레트 슈니트케는 그의 현악 4중주에 이 곡을 중요한 주제로 다루었다.

서주 후 각각 다른 3개의 선율이 제시된다. 이 3개의 선율이 〈대푸가〉를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동기가 된다. 주제 선율은 현악 4중주 제15번 도입 주제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짧은 도입부를 거쳐 유니슨으로 첫 번째 선율이 등장하고 이어 두 번째 선율이 빠른 선율로 나타나고, 세 번째 선율이 부드럽게 전개된다. 주제와 함께 대위법에 의한 선율이 밀도 높게 전개되면서 충실한 푸가를 선보인다. 이어 두 번째 푸가가 독립적인 느린 악장으로 자리를 차지하고 세 번째 푸가는 빠르고 힘찬 선율로 시작하는 정교한 환상곡풍으로 전개된다. 코다는 첫 번째 푸가와 세 번째 푸가 선율이 섞여 전개된다.

이처럼 자연스럽게 서로 연결된 일곱 개의 악장은 강력하게 일체화된 구조를 보여주면서 동시에 여섯 개의 상이한 주조성, 서른한 번의 박자 변경, 복잡다단한 텍스처, 악장 내에서도 다양하게 푸가, 레치타티보, 변주, 스케르초, 아리아, 소나타 형식 등으로 변화한다. 이러한 점에서 바흐의 푸가와는 다른 양식을 보여주면서 간혹 예상을 깨고 준비 없이 갑자기 중단되기도 한다. 즉 베토벤은 여기서 극단적인 단절과 해체를 통해서 정반대편의 응집력과 통합성으로 회귀하는 궁극의 경지에 도달하고 있는 것이다.

■들을만한 음반: 알반 베르크 현악4중주단(EMI, 1989); 부다페스트 현악4중주단(CBS, 1961); 스메타나 현악4중주단(supraphon, 1982); 바릴리 현악4중주단(Westminster, 1952)

오재원 <한양대구리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 이 클래식이야기 전편은 오재원 작 `필하모니아의 사계'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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