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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이라는 것<1>
평론이라는 것<1>
  • 의사신문
  • 승인 2009.07.16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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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기'라는 족보 붙으면 기계의 운명 바뀌어

필자는 한때 오디오에 빠져 산적이 있었다. 많은 오디오들을 사고 바꾸고 만들기도 했다. 그중에는 한때 명기라고 부르는 것들도 있었다. 명기라는 것은 참으로 이상한 것이다. 우선 명기라는 족보가 붙으면 기계의 운명이 바뀌어 버린다. 대부분의 기계와 마찬가지로 오디오들의 운명은 거의 대부분 버려지는 것이다. 앰프나 CDP는 전자기계로 폐기되거나 스피커처럼 생활쓰레기로 파기되는 것이 운명이다.

일반적인 기계들에는 가혹한 운명이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명기라는 족보가 붙어버리면 수명은 아주 길어진다. 그리고 기계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 호기심을 가진 사람들이 늘면 오랫동안 장터에서 소중하게 거래되기도 한다. 차량도 마찬가지지만 오디오는 종류와 범위가 더 다양하다. 평가의 잣대도 더 제멋대로 같다는 느낌을 지우기도 힘들다.

몇 주전부터인가 그동안 모았던 기계들은 정리하기 시작했다. 이유는 사놓고 듣지를 않는다는 것이고(제일 많이 음악을 듣는 기계는 여전히 PC에 물려있는 싸구려 Britz 스피커다) 그 다음은 장소를 너무 많이 먹는다는 것이고 그 다음의 이유는 DIY AUDIO에 집중하기 위해서다.

예전에 기계들을 다양하게 모았던 이유는 비교 평가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정작 모으기 시작한 이유는 누군가가 이 기계는 이러저러한 이유로 참 좋다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정말이지 누군가 그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내가 들어보고 구한 것보다는 인터넷의 평론을 참조한 것이 더 많았다. 오디오 잡지와 숍들이 고전하는 경우는 거래와 소개가 인터넷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덕분에 문들을 많이 닫고 말았다.

고생해서(사러 아주 멀리까지 간 적도 있고 무거운 스피커를 옮긴 적도 있다) 모았던 물건들을 체계적으로 처분해야 했기 때문에 거래는 하나씩 마지막으로 평가하고 버려야 했다. 그 중에 하나는 마샬전자의 M-124라는 스피커였는데 없애야 할 것인지를 놓고 한참 고민에 빠지기 시작했다. 명기 리스트에는 올라와 있지 않은 스피커지만 이 싸구려 스피커가 내는 소리는 정말 특이했다. 국악과 가요를 듣고 있자면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이상한 느낌을 내는 스피커였다. 고음은 약간 째째거리고 저음은 쿵쿵 울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고급스피커와는 거리가 먼 소리를 내는 스피커라고 평할 수 있었다.

그러나 무언가 특별한 점이 있다는 것은 분명했다. 이 스피커의 가격은 정말 싸다. 다만 구하기가 어렵고 상태가 좋은 것은 더 그렇다.

내치기는 싫었지만 다른 스피커를 들을 시간과 공간도 만들어야 했고 무엇보다 모든 스피커와 앰프를 다 들을 수도 없다. 정말이지 하루에 느긋하게 오디오를 켜놓고 1∼2시간 음악을 들을 여유는 큰 사치에 속한다. 애들이 있으면 큰 소리로 들을 수도 없다. 공부에 방해된다고 할 것이 분명하다.

M-124를 없앨 무렵에는 정말 기묘한 거래들을 많이 했다. 바로 전에는 MD-2200이라는 인켈의 파워앰프(저렴한 명기에 속하는 앰프)와 PRO-10이라는 스피커를 처분했다. 가격은 역시 착하지만 우리나라에서 만든 몇 안 되는 걸작들이다. 이들도 자리를 비켜주어야 했다. 보관하려면 못할 것도 없지만 다른 사람이 이 골동품을 들을 기회도 주어야 한다. 아무튼 M-124는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조여지는 소리를 낸다. 한국인의 정서에 맞추어 튜닝한 소리로 알려져 있었다.

이 스피커를 없애면서 그 진가를 아는 사람이 가져가기만을 바랬다. 무엇보다도 잘 듣지 않지만 이 이상한 기계의 좋은 주인을 찾아주고 싶었다. 이 스피커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꽤 있다.

가격은 거의 거저에 가까운 값으로 정했다. 설명은 일부러 약간 시큰둥하게 적었다. 그래야 아는 사람이 사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장터에 올리자마자 멀리 아산에서 누군가 사겠다고 바로 연락이 왔다. 그 스피커를 잘 아는 사람인 듯 했다. 유닛은 완벽하지만 통은 약간의 수리를 요하며 잘 아는 사람이 구매했으면 좋겠다고 하자 바로 다음날 올라오겠다는 것이다. 이 정도면 약간 열정이 지나친 편이다.

다음날이 되자 구매자는 아산에서 출발했다. 만나서 스피커를 보여주자 스피커의 콘지 재질에 대해 설명을 시작했다. 보통의 유저가 아닌 듯 했다. 이 작은 콘지는 세라믹이며 다른 기종 M-165는 파이오니어의 콘지를 사용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스피커는 정말 꽉 조여지는 소리로 튜닝했다는 것이다.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은 그 구매자는 유명한 오디오 평론가였던 김종룡 님이었다. 정말 의외였다.

안윤호〈송파 대광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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