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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스 브루흐 〈콜 니드라이(신의 날)〉 작품번호 47
막스 브루흐 〈콜 니드라이(신의 날)〉 작품번호 47
  • 의사신문
  • 승인 2014.01.03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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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이야기 〈248〉

`콜 니드라이'는 `신의 날'을 의미한다. 유대교회에서 유대 예배 의식에서는 오로지 낭송(chant)으로만 이루어지는데 `속죄의 날'인 `욤 키푸르(Yom Kippur)'에는 대제사장이 성전에 들어가서 일 년에 딱 한 번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수 있다.

그 예배 의식에서 부르던 아주 오래되고 특별한 히브리 성가로 〈콜 느드레(모든 서약들)〉라는 유대교의 옛 성가가 있다. 브루흐는 이 곡을 〈관현악과 하프가 함께하는 첼로를 위한 아다지오〉라는 일종의 환상곡 형식으로 재창조하였다. 유대인이 갖는 자기 민족을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받은 민족이라는 시온사상을 갖지 않고 높은 인격과 덕망으로 인간정신 가운데서 참회나 속죄가 가장 뛰어난 사상이라 여기며 선민의식의 신앙보다는 인류의 선의식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독일 쾰른에서 태어난 브루흐는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인 페르디난트 힐러에게 작곡을 배운 후 15세인 1852년 모차르트장학금을 받아서 쾰른대학에서 작곡을 공부하였다. 1891년 베를린 음악학교의 교수가 되었고 프랑스로부터 프랑스아카데미 회원으로 추대된 후 유럽 여러 지역에서 지휘자로 이름을 날렸다. 정작 유대인은 아니고 저명한 루터교 성직자의 손자였던 그는 평소 여러 나라의 민속 음악에 대해 깊은 애정을 갖고 있어 유대교의 풍습 등을 그린 곡들도 다수 작곡하였다.

브루흐는 스코틀랜드 환상곡과 3곡의 바이올린 협주곡 등 현악 작품들로 잘 알려져 있지만, 막상 그가 살았을 때엔 기악곡이 아닌 오라토리오나 합창음악 작곡가이자 뛰어난 지휘자로서 더 인정을 받았다. 감정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고자 하는 낭만주의 시대사조와 더불어 자신의 성격도 매우 낭만적이었던 그는 `음악은 꿀보다도 달다'라는 슬로건을 내세웠을 정도였다. 이러한 낭만적 성격을 가지고 있던 브루흐는 당시 5세 위인 브람스, 3세 위의 생상스나 2세 아래의 차이코프스키와 같은 음악가들의 격정적이고 열정에 찬 생애와는 달리 높은 인격과 덕망, 강인한 신앙심을 바탕으로 그만의 음악활동을 고집했다. 그는 독일 낭만주의 음악의 전통에 따라 바그너보다는 멘델스존과 브람스를 계승하고자 하였다.

나치 정권이 들어선 후 10여 년에 걸쳐 독일에서 공식적으로 음악연주가 금지된 작곡가가 바로 막스 브루흐였다. 그가 유대인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유대종교 음악과 관련된 곡을 작곡하였다는 이유로 그의 작품은 전면 금지되었던 것이다. 브루흐의 신앙심은 그의 어머니로부터 받은 전인교육과 더불어 그의 작품 대부분에서 온화하고 낭만적이면서도 경건한 미의식을 느끼게 하는 밑거름이 되고 있다.

이 작품은 신성하고 종교적인 정열이 넘쳐흐르며, 동양적 애수가 깃들어 있으면서 쓸쓸한 선율에는 유대적인 정서가 짙게 담겨있고, 긴장된 리듬과 풍부하게 흐르는 선율 등 낭만정신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서정적인 곡이다. 아마도 이 곡을 작곡한 1881년은 당시 43세였던 브루흐가 소프라노 투체크와 결혼하기 전년도에 작곡한 것으로 여겨지는데, 간신히 노총각을 면하게 되는 그때의 사랑의 감정이 신앙의 깊은 정서에 스몄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제1부 Adagio ma non Troppo 종교적 정열이 담긴 조용하고 비통한 선율로 시작되어 이윽고 유연하고 장엄한 선율이 나타나는데, 첼로의 명상적 음색과 꼭 들어맞으면서 그 장엄한 첼로 독주의 선율은 선지자의 목소리와 같기도 하다.

△제2부 Un poco piu Animato 조금 격한 장조로 분위기가 바뀌어 거룩하게 변화된 후렴구로 시작되면서 장조로 바뀌는데 하프의 아르페지오 반주에 실려 첼로가 밝고 강한 느낌의 선율을 낸다. 관현악 반주 속에서 골똘히 생각하는 듯 독주자가 낭만적인 정서와 풍부한 음향의 선율을 만들어 내면서 변주형식으로 펼친 다음 홀연히 곡은 막을 내린다. 브루흐는 이 곡에서 흐느끼는 듯한 낮은 선율이 두드러지도록 오케스트라와의 조화를 절묘하게 표현하고 있다.

■들을만한 음반: 피에르 푸르니에(첼로), 장 마르티농(지휘), 라무뢰 오케스트라(DG, 1960); 파블로 카잘스(첼로), 랜던 로널드(지휘),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EMI, 1936); 자크 뒤 프레(첼로), 다니엘 바렌보임(지휘), 이스라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EMI, 1962); 야노슈 스타커(첼로), 안탈 도라티(지휘),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Mercury, 1962); 미샤 마이스키(첼로), 세미온 비쇼프(지휘), 파리 오케스트라(DG, 1993)

오재원 <한양대구리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 이 클래식이야기 전편은 오재원 작 `필하모니아의 사계'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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