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로메오 이야기<4>
알파로메오 이야기<4>
  • 의사신문
  • 승인 2009.07.09 10:2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980년대까지 '최고의 자동차'란 찬사 받아

메로시는 알파 설립 이후 곧바로 24HP라는 양산차를 생산했지만 회사는 재정난에 빠지고 말았다. 이런 알파를 1915년 이탈리아의 실업가 출신 엔지니어인 니콜라 로메오(Nicola Romeo)가 인수하게 된다. 하지만 당시는 세계 1차대전이 한창이어서 알파로메오는 승용차가 아닌 군수물자인 트럭과 엔진 등을 생산했다.

1차대전이 끝나고 로메오는 회사 이름을 `니콜라로메오 자동차'로 바꾸었다. 그러나 알파시절에 사용하던 엠블럼은 그대로 사용했기 때문에 회사 이름이 아닌 `알파로메오'로 불리기 시작했다.

그 후에는 레이싱 업계에서 신화적인 레이서들을 배출한 메이커로 변신했다. 탁월한 엔지니어들이 포진해서 정말 좋은 차를, 시대를 뛰어넘은 차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페라리의 설립자 엔초 페라리도 1920년대까지 알파로메오의 드라이버로 뛰었고 그 이후에도 여러 명의 전설적인 레이서들을 배출했다.

그러나 1920년대 후반에 시작된 경제 공황의 그늘을 피해가지는 못했다. 결국 알파로메오는 경영진과 종업원이 반반씩 지분을 보유하는 국민기업 형태로 운영하게 된다. 여기에 세계 2차대전이 터지면서 알파로메오는 다시 군수물자를 생산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알파로메오의 공장들은 자연스레 연합군의 폭격 목표가 됐고 알파로메오는 심한 타격을 받았다.

전쟁이 끝난 이후 어려움을 겪던 알파로메오는 1950∼1960년대를 거치면서 재도약을 시작한다. 1946년형 모델을 계승한 6C 2500S가 시작이었다. 전성기가 시작된 것이다. 기술 혁신은 여러 번 이뤄졌다. 1950년에는 최초의 모노코크 방식의 세단 1900을 선보였다. 1954년 발표된 쥴리에타〈사진〉로 독특한 디자인과 작고 빠른 차라는 알파로메오의 이미지를 구축했다. 줄리에타의 다름은 줄리아였다. 1950∼1960년대의 알파로메오 차량들은 피닌파리나와 베르토네가 디자인을 맡았다. 이 때문에 알파로메오의 당시 차량들을 보면 누가 디자인을 했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리에타와 줄리아는 4도어 세단도 있지만, 줄리에타 스프린트, 줄리아 스프린트 등 2도어 쿠페는 수집가들이 좋아하는 모델로 아직도 도로에서 달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시기 알파로메오 중에서 가장 매력적인 차는 1960년에 등장한 줄리에타 스프린트 자가토였다. 줄리에타 SZ의 엔진 배기량은 1.3ℓ로 아주 작지만 DOHC 헤드로 100마력을 냈다. 에어로 다이내믹 스타일이 일품이었고 가벼운 차체와 기어비 차가 작은 5단 트랜스미션을 쓴, 최고 시속 200km의 소형 스포츠카였다. 당시로는 완벽한 수퍼카였다(비슷한 모델이 영화 `졸업'에 더스틴 호프만이 타고 나오는 작은 오픈카다).

1970년대 초에도 알파는 계속 성장했다. 이탈리아 남부의 새 공장에서 1972년 내놓은 저렴한 전륜구동 알파수드(Alfasud)도 성공적이었고 그 뒤의 알페따(Alfetta), Alfa 6, GTV6 등이 출시됐다. 알페따와 쥴리에따를 대치한 Alfa 90과 Alfa 75가 나온다. 그 이후의 알파로메오는 전륜구동으로 변했다.



독특한 디자인과 고성능으로 1970∼1980년대까지 최고의 자동차란 찬사를 받은 알파로메오였지만 계속되는 재정난은 고민거리였다. 이런 가운데 1980년대 중반 알파로메오는 다시 재정위기를 겪게 된다. 인수합병 시장에서 알파로메오는 자동차 업체의 비상한 관심이 이어졌다. BMW에 이어 포드가 인수전에 참여했을 만큼 인수전은 뜨거웠다. 결국 이 인수전에서는 피아트가 주인이 되었다.

인수전이 뜨거웠던 이유는 성능이 너무 좋았던 알파로메오의 전설과 기술적 DNA를 인수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몇 십년의 화려한 역사적 배경과 기술문화까지 한꺼번에 살 수 있다. 더군다나 아직까지도 알파의 디자인 DNA는 개성을 잃지 않았다. BMW처럼 큰 차를 만들지도 않는다.

평론가들과 매니아들은 이런 역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 옛날의 차들이 지금도 유럽이나 미국의 도로를 달리면서 기억을 일깨우기 때문에 더 기억이 지워지지 않는다. F1의 제왕 슈마허가 생산된 지 수 십년 지난 줄리에타를 타고 다니는 것은 알파로메오의 DNA에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안윤호〈송파 대광의원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