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Ⅰ : '의료 한국'의 위기, 탈출구는 없나 - ③ 의료위기의 또다른 짐, 의료윤리
특집 Ⅰ : '의료 한국'의 위기, 탈출구는 없나 - ③ 의료위기의 또다른 짐, 의료윤리
  • 의사신문
  • 승인 2013.12.02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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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진 <의사평론가>

이명진 의사평론가
`정의로운 의료' 방해하는 제도 개혁에 앞장서야

■위기에 몰린 30, 40대 의사들

2000년도 이후 대한민국 의사들은 한정된 의료자원과 정의롭지 못한 의료정책들로 애를 태워왔다. 대한민국에서 의사로서 살아가면서 느끼는 감정을 표현하라면 분노와 답답함 그리고 자신의 면허를 잘 지켜 낼 수 있을지에 대한 불안감일 것이다. 왜 이런 부정적인 감정에 쌓이게 되었는지 분명히 이유가 있을 것 같다.

50대 이상의 중년 의사들이 누려왔던 황금시대는 이미 지나갔고 힘든 가시밭길만 남았다는 생각이 든다. 어둡고 험난한 길이 의사들의 앞에 놓여 있는 느낌이다. 왜 이렇게 어려운 처지가 되었는지 마음이 답답하다. 의사들은 잘못된 의료제도 때문에 의사들이 비윤리적인 행위를 하도록 내몰렸다고 항변한다. 우리를 좀 이해 해 달라고 소리쳐 보아도 돌아오는 것은 싸늘한 시선뿐이었다.

도대체 대한민국 의사들에게는 희망은 없는 것일까? 안타까운 사실은 1977년 도입된 의료보험과 의사의 대량 배출에 따른 부작용을 젊은 의사들, 특히 30∼40대 의사들과 이후의 배출될 의사들이 모두 짊어져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들이 의사로서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너무나 많은 장애물들이 놓여 있기에 희망보다는 생존해야 한다는 절박함과 분노가 쌓이고 있다. 윤리적인 진료를 하고 싶어도 제도가 가로 막고 있는 형국이다. 이러한 위기의 원인을 알아야 대처가 가능하다.

■한국의료의 위기 - 원인을 보면 해답이 보인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의료상황의 위기와 의사들에 대한 따돌림은 이유가 있었다. 사회가 요구하고 있는 수준의 전문직업성(professionalism)을 의사들이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나타나는 증상이다.

먼저 이런 현상의 원인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알 수 있다. 120년 전 의료선교사들을 통해 현대 의학이 들어왔다. 당시 의료선교사들은 대부분 목사들이었기에 전문직이 갖추어야 할 기본 소양을 어느 정도 지니고 있었다. 이타심, 책임감, 정직함, 봉사정신과 종교적 자비심 등의 소양으로 전문직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해 낼 수 있었다.

하지만 일본의 식민통치와 함께 일본의 의학체계가 우리나라를 지배하게 된다. 당시 일본은 명치유신 때 의료에 관하여서는 독일에서 현대의술과 지식을 배워 온다. 그런데 이들은 전문 의학 지식과 술기는 배워왔지만 정작 의사로서 반드시 갖추어야 할 소양인 전문직업성에 대해서는 배워 오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런 일본 의료시스템이 우리나라에 그대로 전해지게 되었다.

대한민국 의사들은 전문직업성에 대해 들어 보지도 생각지도 못하며 의학을 공부해 왔다. 전문직업성에 대한 교육의 부재는 의학교육의 큰 빈 공간으로 남았다. 일제강점기의 악영향이 의사들에게 큰 짐으로 남겨진 것이다. 사회가 발전하면서 사회는 의사에게 더 높은 전문직업성을 요구하게 되고, 이에 따라주지 못하는 의사들을 법과 규칙으로 다스리려고 한다. 이런 현상에 대한 원인을 몰랐던 의사들은 마음속에 답답함과 분노만 가득 차게 되는 현상이 발생하게 되었다.

두 번째로 국가의 지나친 개입(정의롭지 못한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인적 구성 문제, 저수가 제도, 불합리한 심사규정 )이 의사들의 의료윤리 수준을 저하시키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감당하기 힘든 법과 틀을 만들어 놓고 의사들의 일방적인 희생과 봉사만 요구하는 것은 지극히 불합리하다.

기성의사들은 국가의 개입이 적었던 시절 불합리한 의료제도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 했다. 그저 순응하고 따라가도 넉넉한 경제적 수준을 유지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사의 수가 많아지고 규제가 많아지자 젊은 의사들에게는 무거운 고통과 부담으로 남았다. 국민들은 지금의 어려운 의료 환경을 잘 알지 못한다. 단지 경제적으로 안정된 생활을 누리던 기성의사들의 모습만 머릿속에 남아있는 것이다.

■어디부터 시작할 것인가? 방법은 있다

위기의 한국의료 해결은 앞서 살펴본 원인에 따라 솔루션을 찾아서 풀어 가면 된다. 먼저 의사 내부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순서다. 그래야 사회의 신뢰를 받을 수 있고 제도 개혁을 요구할 때 선명한 힘이 생긴다. 사회가 바라는 전문직업성을 바로 세우고 의료가 정의롭게 이루어지도록 전문직으로 갖추어야 할 덕목과 소양을 담은 구체적인 윤리지침 등을 마련해야 한다.

선진국처럼 의사들이 갖추어야 할 소양과 덕목 등을 정리한 가이드라인(GMP, Good Medical Practice)을 우리나라 실정에 맞도록 만들어야 한다. 일명 KGMP(Korean Good Medical Practice )가 만들어지고, KGMP가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 되도록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한다.


보험재정 안정화 없이 희생만 강요해 의료윤리 수준 저하
의사단체, 건정심 개혁요구·자율규제 강화 등 역할 재정립


두 번째로 의사협회의 역할을 재정립해야 한다. 의사협회가 이익단체의 역할과 회원들에 대한 징계업무를 함께 한다는 것 자체가 어색하고 부담스러운 일이다. 회원들을 징계하면서 회원들의 단합을 유도하기란 하늘의 별따기 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의사협회는 의사들의 이익을 추구하는 권익단체(Trade Union)의 성격으로만 활동을 하고, 회원징계와 전문직업성 관리에 관한 사안들은 별도의 면허관리기구를 만들어 관리하도록 의사단체가 주도하여 면허관리기구를 만들 필요가 있다.

미국의사협회, 영국의사협회, 캐나다의사협회에서는 회원들에 대한 징계를 하지 않는다. 이들은 협회 내에 윤리위원회를 두고 있지만 이들의 역할은 의사윤리강령의 업그레이드 작업, 진찰실 가이드라인 작성 등 의사들의 행동강령과 역할 규정작업등을 주로 하고 징계업무는 면허관리기구에서 담당하고 있다.

세 번째로 동료평가(Peer review)제도의 도입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전문직은 전문직에 속한 사람이 아니면 전문직의 잘못이나 비윤리적 행위를 찾아내기 힘든 속성이 있다. 동료평가를 통해 전문지식이나 술기, 전문직업성 중에서 부족한 부분을 알려주고, 고도의 전문가적 수준을 잘 유지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처벌만으로는 전문직업성을 유지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동료평가의 대상은 개원의, 대학교수, 연구직 등 직역별 개인평가와 의과대학평가로 나누어 진행되어야 한다. 현재 시행되고 있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의평원)의 평가에 대한 권위를 정부가 조속히 인정해야 한다. 의평원의 평가에서 부적격 판단을 받으면 국가고시자격을 주지 않거나 신입생 인원 축소, 폐교 등을 명령할 수 있도록 법적 구속력을 부여해야 한다.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서남의대와 관동의대 문제들은 의평원의 전문가동료평가를 거부하고 외면한 결과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자율규제(self-regulation)가 제 역할을 하도록 해야 한다. 자율적인 회원징계가 객관적이고 투명하고, 공정하게 이루어지도록 절차적 정당성을 갖춘 징계규정을 만들어야 한다. 징계의 종류와 목적, 명확한 징계기준, 공정한 절차, 행정력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 먼저 명확한 징계기준과 처벌수위가 정해져야 할 것이다. 현재 의료법이나 대한의사협회 정관과 중앙윤리위원회 규정에 의해 정해진 징계 기준은 상당히 추상적이다. 외국의 경우 명확한 기준을 매우 구체적으로 정해 놓고 있다.

들쑥날쑥한 징계는 권위를 가지지 못 하기 때문이다. 징계 절차에 관한 사항도 매우 구체적이고 공정하게 만들어져야 한다. 징계사안이 있을 때 정확한 조사를 통한 사실(fact)를 파악하고 반드시 청문 절차를 통해 징계대상자에게 스스로 변호할 기회를 보장해주어야 한다. 윤리위원은 의사회 내에 다른 직책을 겸직하지 못 하도록 하고 임기 등을 보장하여 철저하게 독립성과 권위를 인정해 주어야 한다. 징계의 종류도 징계의 목적에 맞도록 다양하게 갖추어져야 한다.

외부적으로는 정의로운 의료를 방해하는 제도의 개혁을 요구해야 한다. 대표적인 것이 부족한 보험재정 문제와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의 정의롭지 못한 인적 구성 문제, 불합리한 심사규정 등이다.

근본적으로 안정된 보험 재정의 확보 없이는 정의로운 의료가 실현 될 수가 없다. 재정안정화를 위해 재정중립이라는 틀을 고수하려는 저수가정책과 관리의료를 통한 진료억제 정책은 한계에 다 달았다. 정부가 나서서 문제 해결을 하도록 요구해야 한다. 그동안 의사들에게만 너무나 무거운 도덕적 짐을 지우고 규제해 왔는데, 이제는 정부가 책임을 나누어 져야 할 때가 왔다. 의사들도 수가인상에 목을 매기보다는 국민들을 위한 양적 보장성뿐 아니라 질적 보장성 확보를 위해 보험재정의 정부지원금을 늘리라고 주장해야 한다.

다음으로 건정심의 정의롭지 못한 인적구성을 개혁해야 한다. 인적구성이 정의롭게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절차적인 행위를 거친 것이라면 정의로운 계약이라고 볼 수 없다. 공정한 인적구성과 절차적 정의를 지킨 계약결과에 대해서는 그 결과가 만족스럽든 불만스럽든지 간에 받아들이는 것이 정의로운 행위이다. 구조적인 모순을 안고 있는 제도 하에서 만들어진 결과를 강요하거나 결과를 받아들이라고 겁박하는 것은 민주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폭력이다. 이제는 대한민국에서 정의로운 의료가 이루어지도록 정의롭지 못한 건정심 구성 같은 모순된 제도는 고치고, 안정된 보험재정 확보를 위해 정부가 움직이도록 지속적으로 설득하고 요구해야 한다.

위기의 한국의사들, 힘들지만 힘을 내어 개혁을 주도할 때가 왔다. 내부적으로 전문직업성 향상을 위한 윤리지침을 마련하고 의사협회의 정체성도 재확립해야 한다. 외부적으로는 정의로운 의료를 저해하는 제도개선에 목소리를 높여가야 할 것이다. 위기는 기회다.

이명진 <의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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