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18 22:50 (목)
프란츠 슈베르트 〈음악적 순간〉 D.780 작품번호 94
프란츠 슈베르트 〈음악적 순간〉 D.780 작품번호 94
  • 의사신문
  • 승인 2013.11.11 09:1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클래식 이야기 〈243〉

슈베르트는 단지 곡들을 만들고 싶었기 때문에 만들었다. 그렇게 마음 가는 대로 음악을 만들었다. 평생 피아노 교육을 정식으로 받은 적이 없던 그가 100여 곡이 넘는 피아노 작품을 작곡한 것이다.

슈만은 슈베르트에 대해 “피아노를 피아노답게 다룰 줄 아는 사람”이라고 평하였다. 〈음악적 순간〉은 슈베르트 생전에는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해 그의 고향인 빈을 벗어나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20대에 작곡했던 곡들이 비로소 슈베르트가 세상을 떠나기 전 마지막 해인 1828년 봄, 2권의 형태로 완성되어 출판된 것이다.

1827년 말과 1828년 초 두 편의 즉흥곡집이 출판된 후 나온 〈음악적 순간〉 중에서 제3번과 제6번은 이미 크리스마스를 위한 앨범에서 각각 `러시아의 노래'라는 제목과 1823년 12월 `트루바두르의 탄식'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된 적이 있다. 나머지 곡들은 1827년 여름에 작곡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각기 다른 시기에 작곡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여섯 곡들이 마치 하나의 연가곡처럼 연속성을 갖고 있다는 점은 대단히 놀라울 뿐이다. 아마도 이 작품의 저변에 흐르는 청순하면서도 우아함이라는 요소들이 깔려 있기 때문에 가능할 것이다.

당시 출판업자 라이데스도르프가 처음 이 곡을 출판할 때 `Momens Musicals'라고 잘못 쓴 것을 오늘날 `Moments Musicaux'로 표기하여 우리말로 〈음악적 순간〉 또는 〈악흥의 순간〉으로 불리고 있는데 후자는 일본에서 번역한 제목을 그대로 따른 제목이다. 이 작품집은 슈베르트가 원래 그렇게 평이하게 엮도록 고안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 곡들을 엮어서 듣다보면 슈베르트의 `내면의 일기'라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진솔한 표현을 불과 20대의 나이에 완벽하게 구현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우리는 이 곡들을 통해 젊은 날의 슈베르트를 가장 폭넓고 조용하게 돌아볼 수 있다.

〈음악적 순간〉 모음집은 그의 〈즉흥곡〉보다 규모가 작으며 어려운 기교를 요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그 내면은 참으로 고귀하고 아름답기만 하다. 슈베르트는 이 단순한 형식 속에 엄청난 감정의 영역과 침잠으로 아름다움을 그려 넣고 있는 것이다. 더 나아가 관현악적인 색채효과의 실험과 같은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고 있으며 현대 피아노 못지않은 피아노만의 고유한 음색을 탐구한 모습이 엿보이고 있어 후대에 이르러 더 높이 평가받고 있다.

이처럼 자유롭고 간결한 형식 안에 감정이 극대화된 파노라마를 펼칠 수 있는 소품 모음곡은 슈베르트 이후 많은 낭만주의 작곡가들에게 영향을 끼치게 된다. 슈만의 〈노벨레테〉, 〈클라비어슈튀크〉, 멘델스존의 〈무언가〉, 브람스의 〈인터메조〉, 리스트의 〈빈의 야회〉 등을 비롯하여 라흐마니노프는 슈베르트와 동일한 제목의 작품을 작곡하기도 하였다.

△제1번 Moderato 알프스의 자연을 노래하듯 소박한 오스트리아 춤곡인 렌틀러 풍의 전원적, 가요적인 느낌이 강한 곡으로 색채와 흐름의 변화가 돋보인다. 팡파르 같은 첫 리듬의 유니슨이 단순하면서도 다채로운 느낌을 전달한다.

△제2번 Andantino 슈베르트는 기존 템포에서 살짝 벗어난 리듬을 통해 새로운 호흡을 조명하고자 했다. 시실리 풍의 장조와 단조 주제가 해설가와 성악가가 서로 정겹게 대화를 하듯 친근하면서도 애수를 자아내고 있다. 슬픔과 체념으로의 급격하고 비극적인 추락은 감동적이다.

△제3번 Allegretto Moderato `러시아 노래'. 가장 짧고 간결한 곡이다. 단조임에도 불구하고 특유의 흥겨움이 깔려 있다. 무곡 풍의 단순한 리듬과 함께 러시아 풍의 정취가 인상적이다.

△제4번 moderato 발랄한 리듬을 반주로 분산화음처럼 펼쳐지는 자유로운 움직임이 무궁동적인 느낌으로 마치 바흐의 전주곡을 듣는 듯한 분위기를 주고 있다. 그 후 싱커페이션 리듬을 연상케 폴카는 렌틀러에 뿌리를 두고 있다. 폴카와 바흐의 전주곡이 혼합되어 있다.

△제5번 Allegro vivace 빠른 행진곡 풍이지만 분노가 담긴 주제 선율이 강한 인상을 준다.

△제6번 Allegretto 행복하면서도 우울한 분위기가 여운을 남기고 있다. 슈만의 〈어린이 정경〉의 마지막 곡인 `시인은 말한다.'처럼 대답 없는 질문을 던지는 느낌과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의 마지막 곡인 `거리의 악사'처럼 인생의 마지막을 관조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들을만한 음반: 알프레드 브렌델(피아노)(Philips, 1988); 라두 루푸(피아노)(Decca, 1981); 빌헬름 캠프(피아노)(DG, 1967)

오재원 <한양대구리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 이 클래식이야기 전편은 오재원 작 `필하모니아의 사계'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