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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 등반시 산소 부족으로 폐·뇌부종 발생 위험
고산 등반시 산소 부족으로 폐·뇌부종 발생 위험
  • 의사신문
  • 승인 2013.10.14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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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일 <서울시의사산악회 명예회장>

의사신문-서울시의사산악회 공동기획
`의사 산악인들이 들려주는 건강한 산행의 모든 것' 〈9〉

이재일 서울시의사산악회 명예회장
■등산과 고산병

사회가 점점 더 복잡해지고 불안해질 수록 사람은 본능적으로 안전한 곳으로 피하려고 한다.

그러나 안전한 곳으로의 대피만이 모든 것의 해결책일 수는 없다. 안전한 곳에 안주하려고만 하다가는 매사가 단조롭고 삶의 묘미가 떨어질 수 있을 것이다.

가끔은 안전한 곳에서 나와 불확실한 곳으로 과감히 도전하기도 한다. 그러한 모험이 있기에 인류의 역사는 발전하는 것 같다.

등산과 자유여행은 어쩌면 내겐 불확실한 것으로 향하는 모험이며 규제된 일상으로 부터의 자유였다.

요즘 산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다. 특히 중년 이후 주말이면 나름대로 취미활동을 하고 있지만, 그 중 등산만큼 대중화된 것은 없는 것 같다. 건강과 삶의 활력소를 찾기 위해 산을 오르고, 그 중 일부는 욕심을 내어 외국 고산원정을 다녀오기도 한다. 더 높은 곳에서 새로운 경험을 해보고 싶어하는 욕구가 사람들을 더욱 높고 위험한 곳으로 이끄는 것 같다.

아마도 산악인이라면 누구나 알프스와 히말라야 산맥의 그 웅장하고 장엄한 풍경에 대한 동경심을 가슴에 품고 있을 것이다. 멀리서 보는 것만으로 만족하면 큰 문제가 없으나 욕심이 생겨 고도 3000m 이상 올라가면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그 중 인체에 오는 변화를 이해하지 못하여 당황하고 공포를 느껴 중도에 포기하는 안타까운 모습들을 가끔 보게 된다.

서울시의사산악회에서도 해발 3000m∼6000m 정도의 고산을 여러차례 등산하며 고산병에 대한 경험을 축적하였고, 이에 대해 나름대로 근거와 대처 방법을 터득할 수 있게 되었다.

병도 알아야 고친다고, 고산에 오르려면 고산에서 일어나는 신체변화를 잘 알고 이해해야 한다. 고산병은 체력이 약하거나 여성, 노인이거나 간에 특별히 어떤 사람에게 더 많이 발생하지는 않는다. 즉 인종, 나이, 체력 등과 무관하게 발생된다고 한다.

첫째, 고도가 높아지면 일반적인 상황에서 1000m 올라갈 때, 대기온도가 0.5℃에서 1.0℃씩 낮아지고, 바람이 초속 1m 불 때 마다, 체감 온도도 대략 1.6℃씩 떨어진다.

예를 들어, 속초의 날씨가 10℃일 때 대청봉에 시속 5m의 바람이 분다면 체감 온도는 1700×0.65=11.5℃ 바람 5m/sec×1.6℃=8℃, 합하여 체감 온도는 10℃-18.5℃=-8.5℃가 된다. 몹시 추워지게 된다.

그래서 항상 저체온증이 문제가 되며, 특히 날씨가 급격히 악화되어 비바람이 불거나 하면 체감 온도는 급격히 영하로 떨어진다.

따라서 보온 방수 방풍이 잘 되는 옷이 반드시 필요하며, 특히 방수가 완벽한 상하의를 준비해야 하고, 모자나 장갑도 춥다고 느끼면 즉시 착용하는 것이 좋다.

둘째, 건조한 기후와 빠른 호흡으로 수분이 배출되고 저산소증에 적응하기 위해 신장에서는 소변을 더 많이 배출하는 이뇨작용이 일어나서 탈수현상이 심해질 수 있다. 게다가 고산에서는 판단력이 흐려질 수 있으므로 의도적으로 충분한 물을 자주 섭취해야 한다.

셋째, 산소부족에 의한 저산소증과 빠른 호흡에 의한 저탄산혈증의 문제다. 일반적으로 고도가 1000m 올라갈 때 마다 공기 밀도는 10%씩 떨어진다고 한다.

그래서 4000m 이상 되면 산소가 해수면의 60%밖에 안 되어 산소부족이 온다. 따라서 산소를 충분히 공급받기 위해 신체는 호흡과 맥박이 빠르게 된다. 호흡이 빨라지면 이산화탄소는 오히려 과다 배출되어 저탄산혈증이 발생하게 된다.

즉, 호흡성 알칼리혈증이 나타난다. 이 때문에 머리가 멍하고 점점 심해지는 두통이 나타나거나 때론 구토증세와 더불어 식욕감퇴가 오기도 하며 어지럼증, 정신 혼돈, 경련 등이 나타날 수 있다. 가장 흔하게 나타나는 두통은 조금 휴식을 취하거나 두통약 한두 알 정도로 없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증상이 악화되면 폐부종이나 뇌부종이 발생하기도 한다.

넷째, 폐부종이 오게 되면 그 원인은 역시 저산소증으로 인해 폐동맥과 폐정맥의 수축이 일어나 폐동맥 고혈압이 일어나고 모세혈관에서는 액체가 빠져 나와 폐 조직에 고여 폐부종이 나타난다. 이 때문에 폐 조직에서의 산소교환이 더욱 어려워져 호흡곤란이 발생하는데 단순히 숨이 차는 정도를 넘어 입술이나 손 끝이 새파랗게 변하는 청색증이 나타나고 기침이 심해져서 각혈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이때는 즉시 하산하여 800∼900m 정도의 고도를 낮추면 사라진다.

다섯째, 뇌에서도 같은 현상이 일어나 뇌 부종이 생긴다. 초기엔 두통, 구토, 어지럼증, 무기력증 같은 술에 취한 것 같은 증상을 보인다. 그러다 뇌부종이 심해지면 사고가 흐려지고, 균형 감각을 잃어버리고 때로는 마비나 혼수상태와 같은 중증이 나타날 수 있으므로 매우 조심할 필요가 있다.

최근 몇몇 유능한 고산 등산가들이 8000m 이상 고봉을 다 등정 하고 나서 하산하던 중 추락하여 유명을 달리한 안타까운 사고가 일어났는데 이 또한 뇌부종에 의한 균형감각의 저하와 판단력 상실 때문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해본다.

몇 년 전, 킬리만자로 (5800m)를 등산하는데 산 정상 바로 밑에 극심한 두통과 어지럼증으로 두 명의 대원이 탈진되어 무척 고생을 한 적도 있고, 또 어떤 대원은 바위가 사슴처럼 보이는 착각을 일으키기도 했고,

또 한 대원은 5000m 키보산장에서 꼭 죽을 것 같다는 극도의 공포심을 느껴 우리가 정상을 향해 등산을 시작하는 사이 아무도 모르게 혼자 빠져 나와 현지 가이드와 함께 3700m 고지에 있는 호롬보산장으로 내려가버렸다. (나중에 키보산장에서 한참 동안 그를 찾는 소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또한 등산 도중 일부는 엉뚱한 말을 하기도 하고, 평상시보다 예민해지고 신경질적으로 변하는 것을 보았다.

보통 상비약으로는 아세트아미노펜 제제의 두통약이 고소증세인 두통을 없애는데 제일 적합하며, 가끔 일반인들이 다이아목스라는 이뇨제를 갖고 가서 미리 복용하는 경우가 있는데, 실제로 이러한 약을 복용하면 밤새 소변을 보느라 컨디션이 더 나빠지고 손발에 저린 증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이 약은 폐부종이나 뇌부종이 일어난 경우에 쓸 수 있으며, 비아그라 같은 혈관확장제가 폐동맥을 확장시켜 폐부종에 도움이 되며, 덱사메타손 같은 주사제는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고산병은 급하게 높이 올라갈 때 문제가 되므로 되도록 천천히 걷고, 물은 수시로 많이 마시며, 하루에 고도를 1000m이상 높이지 말고, 될 수 있으면 고소 적응을 위해 그 곳에서 하루나 이틀 머물면서 올라간다면 누구나 큰 문제없이 대자연 속에 빠져드는 모험을 즐길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공포감은 그 자체가 큰 병이지만 무지와 그에 따르는 두려움은 우리가 극복해야 할 대상인 것이다.

이재일 <서울시의사산악회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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