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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두아르도 랄로 〈스페인 교향곡〉 D단조 작품번호 21
에두아르도 랄로 〈스페인 교향곡〉 D단조 작품번호 21
  • 의사신문
  • 승인 2013.10.14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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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이야기 〈239〉

〈스페인 교향곡〉은 종종 교향곡으로 혼동하지만 실제 교향곡 형식을 갖춘 작품은 아니고 모두 5악장으로 이루어진 바이올린 협주곡이다. 엄밀히 말해 이 작품은 여러 춤곡들을 모아놓은 모음곡 형식의 바이올린 협주곡이다. 랄로는 바이올린 협주곡을 총 네 편 썼는데 제1번을 제외한 나머지 세 곡에는 모두 표제를 붙였다. 제2번은 〈스페인 교향곡〉이고, 제3번은 〈노르웨이 환상곡〉, 제4번은 〈러시아 협주곡〉이란 표제를 붙여 그의 이국적 정서를 반영하였다.

이 작품에서는 전 악장에 걸쳐 `하바네라'와 `세기디아' 등 스페인 음악의 향기가 작품 곳곳에 배어있다. 이 곡은 독주 바이올린의 초인적인 현란한 기교가 강조될 뿐 아니라 오케스트라 음색에 있어서도 특이한 점이 번뜩인다. 트라이앵글과 작은북, 하프 등 일반 협주곡에서는 드물게 나타나는 악기들이 편성되어 화려한 색채를 더한다.

또한 현악주자들이 휘파람소리와 같은 효과를 불러일으키는 하모닉스 주법까지 구사하는 등 특수한 연주기법이 사용되면서 관습에서 벗어난 악기 주법이 나타나 흥미를 더한다. 이런 점 때문에 이 곡은 지나치게 화려한 외양에 치중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차이코프스키도 이 곡을 가리켜 “지극히 유쾌하고 신선한 곡이지만 진지한 것 같지는 않다.”고 평했다. 그러나 짧은 중간 악장들을 장식하는 랄로의 매혹적인 선율에는 화려한 외양 뒤에 숨은 애수 띤 향수와 진지한 감성을 느낄 수 있다.

랄로는 프랑스 릴에서 스페인계 명문 군인집안의 아들로 태어났다. 소년시절 바이올린과 첼로 레슨을 조금 받을 수 있었지만 음악가를 향한 열망을 포기할 수 없어 홀로 파리로 건너가 파리음악원에서 바이올리니스트인 프랑수아 아브넥에게 바이올린을 배웠다. 틈틈이 작곡도 하여 1847년에는 로마 대상에서 2위를 차지하며 음악가로 인정받게 된다. 1855년부터는 아르맹고 사중주단에서 비올라와 제2바이올린니스트로서 연주활동도 활발히 했다. 결혼 후 작곡에 전념하면서 현악연주자로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바이올린협주곡〉, 〈첼로협주곡〉을 작곡해 현악기에 대한 탁월한 감각을 보여줬다. 50세에는 스페인 출신의 바이올리니스트인 파블로 사라사테를 위해 〈스페인교향곡〉을 작곡하여 1875년 2월 파리에서 사라사테의 독주로 초연하게 된다.

△제1악장 Allegro non troppo 전 5악장 중에서 제일 규모가 크고 화려하며 힘찬 정열이 넘쳐 흐르고 있다. 주제 선율이 `하바네라'를 연상시키고 있어 스페인적인 느낌을 준다. `하바네라'는 쿠바에서 유래된 것으로 추정되는 춤곡으로 19세기 후반 스페인에서 크게 유행하였다. 제2주제에서는 탱고의 바탕이 되기도 하는 리듬이 나온다. 오케스트라가 하바네라 리듬을 연주하는 가운데, 독주바이올린이 관능적인 스페인풍의 선율을 선보이며 이국적인 느낌을 자아낸다.

△제2악장 Scherzando(Allegro molto) 해학적이면서도 변덕스런 느낌의 악장이다. 랄로는 좀 더 자유분방하게 그의 매혹적인 악상을 펼치면서 자신의 개성을 더 잘 드러내고 있다. 악장의 도입부에서 마치 기타 소리와 같은 음향을 들려주는 현악기의 피치카토 리듬 위에서 가볍게 날아오르는 솔로 바이올린 선율은 스페인 남부에서 유행한 `세기디아'와 매우 유사하다.

△제3악장 Intermezzo Allegretto non troppo 이 악장은 초연 당시 연주가 생략된 후 한동안 연주회에서 생략되곤 하였다. 러시아 바이올린의 대부 레오폴트 아우어도 “이 악장은 다른 악장들에 비해 연주효과가 적다”고 말한 이후 이 관습은 더 굳어졌다. 급격한 음역 변화와 관능적인 표현이 나타난 매혹적인 3악장을 생략한 것은 매우 아쉬운 일이었다. 하지만 바이올리니스트 예후디 메뉴인이 복원해 연주한 이후 오늘날에는 전 5악장을 모두 연주하게 되었다.

△제4악장 Andante 서주에 저음역 악기들이 묵직하고 인상적으로 나타난다. 이어 솔로 바이올린이 조용하고 진지한 스페인 민요풍의 주제를 노래하는 우수에 가득 찬 서정적인 악장이다.

△제5악장 Rondo(Allegro) 스페인 민요풍의 주제로 이국적인 정취를 풍부하게 느낄 수 있는 악장이다. 바이올린의 재빠른 움직임과 날렵한 기교가 강조된 화려한 선율과 함께 고음의 목관악기들과 하프의 하모닉스가 반복된다. 이어 바순이 반복음형을 연주하면서 그 음형은 점차 오케스트라로 번져갔다가 다시 작아지고 아름다운 선율의 경쾌하고 발랄한 주제를 솔로바이올린이 연주하며 끝나는데 전 악장을 통해 솔로 바이올린의 현란한 기교가 자유롭게 펼쳐진다.

■들을만한 음반: 아르투르 그뤼미오(바이올린), 마누엘 로장탈(지휘), 콩세르 라무뢰 오케스트라(Philips, 1963); 이차크 펄만(바이올린), 다니엘 바렌보임(지휘), 파리 오케스트라(DG, 1980);정경화(바이올린), 샤를 뒤투와(지휘), 몬트리올 심포니 오케스트라(Decca, 1980); 다비드 오이스트라흐(바이올린), 장 마르티농(지휘),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EMI, 1954)

오재원 <한양대 구리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 이 클래식이야기 전편은 오재원 작 `필하모니아의 사계'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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