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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弔辭]고 박만용 선생님을 기리며
[弔辭]고 박만용 선생님을 기리며
  • 의사신문
  • 승인 2013.10.14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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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호 <전 서울시의사회 감사>

내가 고인을 처음 만난 것은 25년 전 오산컨트리클럽 연습 퍼팅 중이었습니다.

“김 선생! 퍼팅 자세의 기본은 눈과 볼이 직선이 돼야 해!” 하시며 내 자세를 교정해 주었는데 그 때 나는 서울시의사회 주관 회원친선대회에 참가한 일반 회원이었고, 고인은 경기 심사위원장 직책으로 100여명 참가자 경기를 진행시키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런데 고인을 마지막으로 본 것도 금년 서울시의사회 골프 대회 때, 노익장인 고인과 나는 한 팀으로 엮여져 시구하며 라운딩 하도록 짜여진 운명이었습니다. 팅 그라운드에 들어서기 전, “이건 선물 일세! 요즘 골퍼들은 자기들 위주로 골프를 치는데 신사 게임일수록 규칙을 지켜야 하네.”하며 내민 것은 `골프 룰북'. 지금도 나의 골프백 속에 소중히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파노라마 특별 카메라를 갖고 오셔서 스윙시 순간 동작 10장을 찍어 그 모션을 분석하여 “드라이버 치는 폼은 괜찮은데 아이온은 몸이 좌우로 따라 가네…” 등 일일이 자필로 교정할 점을 자세히 적어 동반자들에게 우편으로 보내 주셨고 그 덕분에 저는 싱글 골퍼로 돌아 왔습니다.

고인의 골프사랑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습니다. 의사신문에 연재한 `골프 교실'은 실전형 의학적 분석 교본이었고, 실제로 고인은 한양CC 클럽 챔피온을 두 차례나 거머쥐고, 세계 시니어 골프 대회 한국 대표을 인솔해 우승한 한국 의사 대표 골퍼였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젊었을 때 요추디스크 수술, 위암으로 위절제술을 받은 핸디캡을 갖고서 이룬 점입니다. 한 때 최경주를 후원하여 대승시키기도 하였고 최근에는 몇 차례 `에이지슈터'를 치셨다 하였습니다.

고인은 매사에 집념이 강하셨습니다. 1997년도부터 고인이 종로구의사회장 연임으로 각구의사회장협의회장을 맡으실 때 송파구의사회장인 저는 간사로 보좌하면서 우리는 한배를 탔습니다. 1999년 정부 주도 의약분업 시행 전, 의협집행부가 복지부에게 시행 일정에 동의해 주었다며 의협회장 퇴진 운동과 의쟁투 중앙 상임위원으로 의약분업반대 시위에서도 서울의 각구 회원들 동참하도록 선봉에 서 이끄셨습니다.

그 때 한국에서의 의약분업은 의사의 희생을 전제로 하는 모형으로, 경제적 뒷받침과 국민 의식 수준의 한계점을 들어 일본식 임의분업 및 단계별 안착을 해야 한다는 고인의 명확한 이론은 지금 되돌아 봐도 의료계를 내다 본 혜안이었습니다.

고인은 리더십을 겸비하고 강직하셨습니다. 97회를 이끄시며 그 당시 주역들을 매달 만나며 노심초사 의료계의 앞날을 걱정하셨고 의협에 아직 몸 담고 있는 저에게도 원칙적 대응으로 정부와 협의하도록 당부하며, 불편부당한 피해 사안에는 조목조목 대안을 제시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고인은 개원의로도 정력적이었습니다. 산부인과 전문의로 미래의 한계점을 예감하고 원래 천부적 수기를 이용, 미용성형을 사사받아 일본 미용성형 학회 원로와도 소통하며 팔순의 노구에도 미세 성형 의술을 유감없이 발휘하셨습니다. 고인은 매사에 인자하셨습니다. 열띤 토론에서도 언제나 당신의 주장을 내세우시지 않고 충분히 경청한 후 “이런 생각도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며 토론자를 존중해 주었고, 자문을 구하러 찾아온 누구에게나 먼저 카페에서 술을 사시며 부담없이 조언을 해 주셨습니다.

원래 목소리 톤이 낮게 조용조용 말씀하셨는데 최근 후두암 수술후 목쉰 소리는 97회 회장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습니다. 단편적이나마 내가 본 고인의 발자취와 삶의 흔적이 결코 범접하기 어려웠지만 누구보다 자상하고 따뜻하였고 평온하신 분이였기에 후학들에게 귀감이 되셨습니다.

요즘처럼 삭막한 의료계에 열정적인 의사로서 존경할 수 있는 동도의 선배가 계셨음은 오랫동안 우리의 가슴에 남아 기억될 것입니다. 또한 저로서는 지근거리에서 모시며 고인의 출중한 인덕을 겪었던 행운아였음을 두고두고 자랑스럽게 여길 것입니다. 부디 하늘나라에서 즐기시던 골프를 치시며 평안히 계시옵소서.

97회 김인호 호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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